[세풍] 출향인, 귀한 자산이다

입력 2016-06-06 20:24:28

"아니, 이 장관은 뭘 할라꼬 골치 아픈 일 맡아서 애먹고 그러노?" "내 고향 일이니까 하는 거지 뭐."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서울지사장 근무 때 대구경북 출향인 저녁 모임에서 들은 대화다. 대구에서 올라온 이상희 전 대구시장을 맞은 다른 회원들의 인사였다. 이 전 시장은 2012년 대구대 이사장에 선출될 당시 80세였다. 학내 문제를 겪던 대학이라 일이 만만찮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 고향 일이니까"라는 그의 대답과 특유의 웃음을 머금은 주름진 표정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의 고향은 경북 성주다. 고향과 경북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그러나 대구시장을 한 탓인지 대구 사랑도 만만찮음을 느꼈다. 여러 차례 만난 인연과 고향에 대한 관심을 지켜본 까닭에 본사가 2014년 6월 13일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구경북 당선인 간담회를 개최할 때 특강 인사로 회사에 건의하기도 했다. 그는 나이를 잊은 채 지금도 특강 등으로 후배 공직자 등에게 고향사랑을 감추지 않는 일로 유명하다.

이런 서두는 대구경북 출신 출향인 특히 서울경기 수도권에 집중 몰린 고향 사람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다. 500만~7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이들 출향인은 대구경북 밖의 또 하나의 대구경북으로, 든든한 예비군 같은 귀한 자산과 다름없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들의 가치를 제대로 모르거나 알고자 하지 않을 뿐이다. 오히려 외면하기까지 한다. 과거 일부 '고향 까마귀들'이 고향을 지렛대 삼아 개인적인 부귀영화를 누린 데 대한 반감 때문이다.

어쨌든 이들 출향인은 다양한 이유로 대구경북을 벗어나 이주(移住)한 사람들이다. 나라 밖으로 떠나는 것만이 이주는 아니다. 보다 나은 내일과 삶을 위해 청운의 꿈을 안고 자발적이든, 어쩔 수 없는 이유로든 고향을 탈출한 셈이다. 그 탈출 행렬은 아직 진행 중이다. 젊은이와 기업체, 대학 등이 수도권에 새 둥지를 틀려고 줄지어 대구경북을 떠난 이유는 변함없다. 막을 수도 없고 그만두게 할 방법도 없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들 가운데는 이 전 시장처럼 낯선 곳에서의 이주에 성공하고 고향 떠날 때 꾼 꿈을 이루어 이제는 고향을 되돌아볼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적잖다는 점이다. 이광수의 1917년 신문 연재소설 '무정'(無情)에 나오는 남녀 주인공들이 일본과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며 공부를 마친 뒤 고국에 돌아와 일제 치하의 핍박받는 조선사람을 구하는 일꾼이 되겠다는 당찬 포부와 각오를 다진 것처럼 말이다.

말하자면 고향을 위해 기꺼이 곁을 내줄 뜻을 가진 출향인이다. 이들 마음은, 태어난 강을 떠나 수만 리 북태평양에서 지내다 다시 알을 낳으려 되돌아오는 연어의 모천회귀(母川回歸)와 다르지 않다.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제가 살던 언덕을 향한다는 수구초심이나, 어떤 말은 북풍에 기대고 어느 새는 남쪽 가지에 집을 짓는 거나, 탈향(脫鄕)한 출향인들이 고향을 그리는 입향(入鄕)과 귀향의 마음도 같은 셈이다.

마음은 입향과 귀향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다양한 출향인 모임이 생기는 까닭이다. 서울 사례가 그렇다. 출향인 전체를 아우르는 재경대구경북시도민회, 대구경북 출신 전직 장관급 모임인 대경회, 대구출신 인사 중심인 달구벌희망포럼, 정부 부처 공직자 모임인 낙동회, 지역별 시'군 향우회, 졸업 학교별 동창회, 다양한 취미 모임인 동호회 등 숱한 모임이 그것이다. 다른 지역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모습이다.

이제 고향 까마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바꿔야 한다. 마침 20대 국회 임기가 지난달 30일 시작했다. 특히 대구에서 벌어진 4'13 선거 변화로 대구경북은 전기를 맞고 있다. 대구가 배출한 의원 12명은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무소속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31년 만에 대구 여야 의원이 진정으로 선의의 경쟁을 벌일 때다. 여기에 고향을 위해 기꺼이 곁을 내줄 출향인까지 모은다면 지역 발전과 변화에는 금상첨화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예비군인 출향인의 뿌리를 고향으로 뻗게 함은 우리 기반을 더욱 다지는 일이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