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문물 받아들이고 숨겨둔 '칼' 빼든 일본…『일본 100년』

입력 2016-06-03 19:12:11

일본 100년/이윤섭 지음/아이필드 펴냄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문호를 개방한 1854년부터 패전과 주권회복을 거쳐 '1955년 체제'에 이르기까지 100년 동안의 일본을 들여다보는 책이다. 역사적 사건, 제도, 인물, 전쟁 등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일본 근현대 100년사라고 할 수 있다.

1854년 문호개방 이후 일본은 빠른 속도로 서양 문물을 수용하며 체제개혁을 단행했다. 도쿠가와 막부를 끝내고, 천왕중심의 근대국가로 거듭났으며, 서양제국주의를 모방해 부국강병과 대외침략 정책을 펼쳤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승리해 조선을 합병하고, 만주 남부를 지배했다.

1931년에는 만주를 침략했고, 1937년에는 중일전쟁, 1941년에는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 그야말로 침략전쟁의 연속이었다. 일본은 1945년 미국에 패하면서 미군 점령하에 민주적 개혁을 단행하고, 전시체제에서 벗어났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전쟁 특수로 고도성장의 기반을 닦았고, 1952년에는 미국 점령에서 벗어나 주권을 회복했다. 이후 지속적인 고도성장으로 1960년대 후반에는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되어 국제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1990년대 이후 일본 경제는 장기침체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세계적인 경제강국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지은이는 '우리나라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일본, 그것도 근현대사에서 우리나라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일본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근현대 격동기 일본에서 일어난 사건 혹은 일본과 국제 사회 간에 발생한 일들을 하나씩 키워드를 중심으로 쉽게 설명한다.

정치 역사적 사건뿐만 아니라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들도 소개한다. 요시다 쇼인처럼 잘 알려진 사람도 있고, 일본 막부 말기와 메이지 유신 초기 영어통역 및 교사로 활동했던 나카하마 만지로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도 소개한다.

만지로는 집안이 가난해 서당에 다니지 못했고, 글을 몰랐다. 출어했다가 조난한 이후 미국 포경선에 구조되어 미국으로 가 영어를 배웠다. 영어, 수학, 측량기술, 항해술, 조선기술을 배운 그는 미국 포경선 선원으로 일하다가 귀국했다. 이후 1853년 7월 미국 페리 함대가 나타나 개항을 요구할 때, 도쿠가와 막부의 통역관에 임명됐다. 모국어를 읽고 쓸 줄 몰랐던 사람이 자국의 운명이 걸린 통역을 맡는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일본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 일본인들의 피나는 노력도 중요했다. 운도 좋았다. 서양 열강이 중국을 시간차로 번갈아가며 공격하거나 합동 공세를 펼쳐 중국이 붕괴 직전 상태에 이르자 일본도 나섰다. 일본은 중국의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이미 지친 중국에 일본의 주먹은 매서웠다.

일본은 또 먼 나라 영국의 하위 파트너가 되어 러시아에 대들었다. 만주와 러시아 이권에 도전했던 것이다.

당시 일본은 산업화 수준이 아직 낮은 단계에 있으면서도 근대화의 열망은 높아 유럽 열강의 하위 파트너로 인기가 있었다. 1류 열강들은 일본과 합작함으로써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고, 표적인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중국을 침략하는 데는 최적의 동맹자였다.

1차 세계대전까지 일본은 열강들의 떡고물을 잘 받아먹었다. 연합국의 파트너로 참여해 중국에서 독일의 이권을 넘겨받기도 했다. 그런데 1차 대전을 계기로 국력이 급성장한 미국이 일본의 길을 가로막는 위치에 서게 됐다. 미국은 일본과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어울릴 수 있는 국가가 아니었다. 게다가 일본은 종래의 '하위' 역할에 만족하지 못하는 단계에 도달해 스스로 주류가 되고자 했다. 결국 일본은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고 패전했다.

일본의 근현대사에 대한 한국인의 적대감은 대단하다. 그러나 일본의 근현대사를 잘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 책은 근현대사에서 일본이 걸어온 길을 세세하게, 재미있게, 쉽게 보여준다.

저자 이윤섭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동아시아 국제관계사 속에서 한국사를 바라보는 작업을 해왔다. '다시 읽는 삼국사' '역동적 고려사' '세계 속 한국근대사' '객관적 20세기 전반 기사' 등을 썼다.

363쪽, 1만 5천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