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 받아 먹는 동심…누구 입이 더 클까
여름날에는 유독 비가 많이 내린다. 소낙비 장대비 장맛비가 내린다. 그중에 모내기 철에 내리는 비를 못비라 한다. 못비가 내리면 어른들은 논에 물을 대랴 모를 심으랴 정신없이 바쁘다. 아이들도 덩달아 바쁘다. 동네 악동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뛰쳐나온다. 도랑물이 콸콸 내려간다. 물장난하기에 딱 좋다.
남자아이들은 고무신을 벗어서 배를 띄우고 누구 게 빨리 가나 시합도 하고, 일부러 흙탕물을 일으키며 엎어지고 자빠지며 천방지축 뛰논다. 여자아이들은 반들반들한 돌멩이를 주워서 누렇게 때가 낀 고무신을 뽀얗게 닦는다. 옷이 젖거나 말거나 아랑곳없다. 하여 가뜩이나 바쁜 엄마에게 빨래를 한 뭉치 안겨주고는 지청구를 듣기 일쑤였다. 그게 아이의 마음이다. 동심.
인생의 어느 어름에서 동심을 잃어버렸다. 동심이란 낱말조차 잊어버렸다. 언제였는지, 무엇에 이끌려서인지 모르게 우리는 '동심'이란 견줄 데 없이 고운 보물을 놓쳐버렸다. 언젠가 '내게 아이가 남아 있을까'란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아이의 마음을 잃은 자신을 성찰한 글이다. 그 글에서 나는 동요 '이슬비'를 인용했다. '나는 나는 갈 테야/ 연못으로 갈 테야/ 동그라미 그리러 연못으로 갈 테야/ 나는 나는 갈 테야/ 꽃밭으로 갈 테야/ 꽃봉오리 만지러 꽃밭으로 갈 테야'
노래는 생각났지만 제목이 기억나지 않았다. 이 친구 저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제목을 알아냈다. 나는 그 노래를 몇 날 며칠 불렀다. 내가 가고 싶은 시간과 장소가 꼭 그랬다. 단발머리, 검정 치마에 하얀 저고리를 입고 연못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동그라미를 그리며 떨어지는 이슬비를 바라보고 싶었다. 아이의 시간과 아이의 마음이 그리웠다. 그러다가 그 시간 그 마음 또한 온전히 놓아버렸다.
자동차 앞 유리에 부딪히는 빗줄기를 향해 아이들이 입을 한껏 벌리고 있다. 누가 더 많이 받아먹나 내기라도 하는 모양이다. 저 아이들의 즐거운 시간이 오래갔으면 좋겠다. 비가 조금만 더 내렸으면 좋겠다.
1983년 小史
▷대도 조세형 탈주=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대도(大盜)로 이름을 떨치던 조세형이 1982년 경찰에 검거된 뒤 1983년 4월 14일 구치감에서 탈주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KBS TV 이산가족 찾기=한국방송공사가 1983년 6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138일에 걸쳐 453시간 45분 동안 생방송으로 이산가족 찾기 특별 프로그램을 진행해 1만189명의 이산가족이 상봉했다.
▷북, 아웅산 테러=1983년 10월 9일 전두환 대통령의 서남아 대양주 6개국 공식 순방 첫 방문국인 버마(현 미얀마)의 아웅산 묘소에서 북한공작원이 폭발테러를 자행했다. 대통령 공식 수행원과 보도진 17명이 죽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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