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의 병상일기
2016년 2월 1일 어머님께서 발병하셨다.
이른 아침 사랑채에 거주하시는 아주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저씨 몇 시 되어서 집으로 오십니까?"
9시경 되면 집에 도착할 것이라고 답했더니 일찍 오시면 좋겠다고 하셨다. 왜 그러냐고 여쭈니까 할머니께서 많이 위독하시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동료에게 양해를 구하여 다른 날보다 일찍 퇴근을 했다. 집으로 가는 내내 신경이 쓰였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면서 가는데 어찌 그렇게도 먼지. 30분이면 도착하는 길이 이렇게도 멀기만 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도착하니 사랑채 아주머니께서 어머니 곁에서 간호하시면서 발병 원인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 어머니께서는 아들이 왔는데도 말씀을 하지 못하고 걷지도 못하신다. 나는 조용히 병원으로 모시고 갈 준비를 했다. 가까이 있는 종제에게 전화하여 어머님이 많이 위독하시니 급히 와달라고 했다. 종제는 아무 말 없이 곧장 와서 어머니를 모시고 동대병원 응급실로 갔다. 오전 9시경 응급실에 도착하니 의사와 간호사들이 일사불란하게 건강상태를 정밀하게 진찰했다. MRI 판독 결과 입원이 결정된 시간이 오후 7시. 응급실에서 14시간 동안을 지켜보니 2월의 혹한 때문인지 대부분 노인들이 구급차에 실려 왔다. 아침 일찍 들에 나가신 할아버지, 그리고 홀몸노인들의 생활상이 적나라하게 나타났다. 자신들의 건강을 생각하지 않고 소홀하게 활동하시다가 갑작스러운 일교차 때문에 심근경색으로 병원에 실려 온 것이다.
긴 시간을 응급실에서 보니 노인들 대부분이 자녀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외로이 쓸쓸하게 생활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다 결국 막판에는 자녀들에게 짐을 지워주고 마는 것이다.
저녁 늦게 8시쯤 입원실이 확정되어 6층 6311호가 배정되었다. 8인실이며 대부분 80세 이상의 할머니들이 병실을 채웠다. 어머니가 걷지도 못하고 병상에 누워 계시는 것을 곁에서 바라보니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짐을 지워 드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에 누워 계시는 어머님의 육신을 내려다보니 어찌 그렇게도 쇠약하신지,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고 가르침을 받았다. 이제는 기력이 쇠하고 연로하신 어머니를 내가 보살펴 드려야 한다. '능갈기력'(能竭其力)의 정신으로 부모님을 봉양하면서 생활해 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하룻밤을 어머님 곁에서 보냈다.
2월 2일 이른 아침 출근을 위해서 병원 출입구를 나선 시간은 오전 6시다. 형산강 제방 둑을 걸으면서 92세의 어머니를 능갈기력의 심정으로 모실 것을 다짐했다. 오전 7시 40분 통근버스로 출근했다. 그렇다고 근무를 소홀히, 경솔히 할 수도 없고 주변 사람들에게 게으른 모습을 보일 수도 없다. 주어진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면서 병원에 계시는 어머니도 마음 편안하게 해드려 하루빨리 쾌차하여 퇴원하시기를 바랐다. 병원에서 보내는 마음도 기쁘지는 않다. 바쁜 공무 중에서도 시숙모의 병간호를 해주시는 종수씨의 고마움을 잊지 않을 것이다.
병원에서 설날을 맞이했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서 어머니 곁에서 하루를 보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손자 손부, 증손자의 재롱을 피우는 모습을 누워서 보는 증조모가 즐거워보였다. 장손자가 금년에 서울시청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였다고 하니 어머니께서도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고 하면서 환한 얼굴을 보이셨다.
15일째 날. 어머니의 몸이 가렵다고 하셔서 머리를 감겨 드리고 목욕을 시켜 드리니 정말 좋아하셨다. 손톱과 발톱도 깎아 드렸다. 지금까지 어머니의 머리 감기와 목욕을 한 번도 도와드리지 못했다. 늦게나마 아들의 도리를 조금이나마 해드리는 것이 효의 실천이라고 생각했다.
물질이 풍요로울수록 인간성이 상실된다고 한다. 눈에서 보이지 않으면 정도 멀어지고, 가까이 있지 않으면 모든 것이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지성여신'(至誠如神)이란 말의 뜻대로 어머니의 여생을 편안히 모시며 나의 삶을 살아가기를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다짐했다. 오늘도 나는 백거이의 '자오야제'(慈烏夜啼) 시를 읽는다.
慈烏失其母(자오실기모) 효성스러운 까마귀 그 어미 잃고
啞啞吐哀音(아아토애음) 까악까악 슬픈 울음을 토하네.
2016년 3월 8일 병상의 생활을 접고 퇴원을 하셨다. 한 달이나 집을 비운 셈이다. 그동안 사용하지 않은 큰방으로 모시고 이부자리를 펴드렸다. 나도 한 시름을 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외출을 했다. 일상생활에서 별로 느끼지 못한 것을 이번 병상 생활에서 보고 체험을 했다.
퇴원한다는 말에 어머니께서 보이신 환한 모습에 나도 한량없이 즐겁고 기쁘기도 했다. 나도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기쁘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한지도 모르겠다. 지루한 병상생활을 접고 집에서 요양한 지도 40일, 곁에서 돌봐 드리고 함께 생활하니 하루가 다르게 회복되어 가신다. 사람의 자식으로서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길러주시고 가르쳐주신 부모님의 은덕을 조금이나마 갚고자 살아생전에 반포의 정신으로 능갈기력을 다하고 싶다.
풍요로움과 자유를 만끽하면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유분방함 속에 경제적 궁핍으로 인간성 상실을 초래할까 두려워진다. 부모님을 지극정성으로 봉양하지 못하고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시대가 변하여도 어머니의 사랑이 변하지 않는 것은 자애로움 때문인가 보다. 자식이 장성하여도 아침에 나가서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문에 기대어 바라보고, 자식이 저녁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마을 문에 기대어 본다는 말이 있다. 오늘날 의학의 발달과 문명의 편리함으로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었지만, 행복은 가족의 화목으로 안락한 생활을 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가족이 돌보지 않으므로 노인들은 편리한 수용시설을 이용하도록 우리 사회의 복지정책이 잘 되어 있지만, 가족이 돌보는 것만 같지 않다는 것을 이번에야 알았다. 환자의 건강 회복이 가장 빠른 것은 가족들이 함께 모여 오순도순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안위를 걱정해주는 것이다. 이것의 우리 선조들의 생활방법이었다.
추사 선생의 가족 찬사 글이 떠오른다.
'大烹高會'(대팽고회)
大烹豆腐苽薑菜(대팽두부고강채) 좋은 반찬은 바로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요
高會夫妻兒女孫(고회부처아녀손)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 딸 손자의 화기애애한 모임이다.
此爲村夫子第一樂上樂(차위촌부자제일락상락) 이는 촌사람의 제일가는 즐거움 중의 즐거움
雖腰間斗大黃金印(수요간두대황금인) 비록 허리에 말만큼 큰 황금 도장을 차고
食前方丈侍妾數百(식전방장시첩수백) 음식을 사방 열자 되는 상자에 차려놓고 수백 명의 여인이 시중을 들어도
能享有此味者畿人(능향유차미자기인) 능히 이런 맛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2016년 5월 3일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아들이 쓰다.
김영익(경주시 사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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