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과의 술자리. 오랜만에 가진 스무 살 젊은이들과의 대화였다. 요즘 젊은이들은 어떤 얘기를 나눌까, 무엇이 고민이며, 흥밋거리는 뭘까 무척이나 궁금했다.
친구들 얘기, 이성과의 연애, 영화, 스포츠 등 다양한 얘깃거리가 술안주로 돌았다. 그러다 취업 얘기가 나오면서 분위기는 사뭇 진지해졌다. 전문대학 2학년으로, 졸업을 앞두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취업 걱정이 절박한 모양이었다.
여러 친구들의 미래 진로에 대해 듣기만 하던 A가 입을 열었다. "나는 졸업하면 건물주가 되는 게 목표야. 지금도 건물주가 되기 위한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공부하고 있어." 그의 말에 놀라움이 밀려왔다. 건물주가 되는 것이 목표라는 얘기가 뜬금없다고 생각했기 때문.
하지만 건물주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는 말에 다들 '궁금해 못살겠다'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A는 얘기보따리를 더는 풀지 않았다. 술기운을 빌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볼 요량이었지만 그것마저 실패했다. 절대 A는 자신의 보물을 공개하지 않았다.
우스갯소리로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인터넷상에 회자하고 있지만, 자신의 꿈을 건물주로 확고하게 정하고 준비하는 사람은 처음인지라 A를 만났다는 자체만으로도 재미가 있었다. A를 보면서 얼마 전 대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인 후배 B의 넋두리가 생각났다.
6학년 담임인 B가 하루는 26명의 제자들에게 자신의 장래희망을 쓰고, 이유가 뭔지에 대한 작문 숙제를 냈다고 했다. 다음 날 과제물을 받은 B는 유독 한 학생의 과제물에 눈이 꽂혔단다. 그 학생의 장래희망은 '건물주'였다. "엄마, 아빠가 시내에서 장사를 하는데, 매일 집으로 돌아오면 건물주가 이 세상에서 최고라고 해요. 엄마, 아빠가 최고라고 말하는 건물주가 되고 싶어요."
초등학생과 대학생의 꿈이 건물주라는 대답에서 어떤 생각이 드나? 세상 참 많이도 변했다.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됐을까. 입으로는 욕을 하면서도, 사실 우리 모두는 건물주를 부러워한다. 얼마 전 국토교통부에서 재미있는 통계자료가 나왔다. 지난해 상업용 부동산의 투자수익률이 5~7%대에 달한다고 한다. 정기예금(지난해 평균 1.72%)보다 서너 배는 더 높다.
감이 잘 오지 않는다면 고용노동부가 낸 자료를 보자. 노동의 대가인 최저임금은 지난 10년 동안 3천원에서 6천원으로 2배 오른 반면, 서울 강남의 가로수길 빌딩 매매가는 3.3㎡당 2천만원에서 2억원으로 10배 급등했다. KB금융연구소에서 발간한 '부자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큰손'들의 재산 절반(52.4%)은 부동산이라고 한다. 이 중에서도 상가, 아파트, 오피스텔과 같은 투자용 부동산 비중이 3분의 2나 된다. 우리나라 부자들이 부동산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는 수치다.
이러니 초등학생이건, 대학생이건 건물주가 되고 싶은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머릿속엔 '좀 더 생산적인 직업군이 대접받는 시대가 돼야지 이 나라 장래가 밝을 텐데'라는 씁쓸함과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작금의 상황에서 조물주보다 더 탐나는 명함인 건물주가 나도 부럽다'는 생각이 교차하는 현실에 소주만 한 잔 입에 털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