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생선'이라는 별명을 붙여줘 영광이었어. 고맙게 생각해.
근데 최근 '국민 생선'이라는 애칭이 무색해질 정도로 찬밥 신세가 돼 너무 힘들어.
왜냐고? 환경부 발표 때문이야. 집에서 문과 창문을 닫고 주방에서 나를 구울 때 미세먼지(PM2.5) 농도가 2천290㎍/㎥가 발생한다는 조사결과를 봤어.
미세먼지 주의보 기준인 90㎍/㎥의 25배 이상의 수치라 나도 믿을 수가 없었거든.
나 성질 급한 것 잘 알 거야. 그물에 잡히는 순간 바로 죽어버리는 성미잖아. 적에게 생포되느니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게 우리 가문의 전통이야.
40년 이상 고등어구이 집을 운영해온 부산 중구 광복로 뒤편 '고갈비' 골목을 찾아가 확인해봤어.
부산 광복동 고갈비 골목
수십 년간 고등어를 구워왔으니 미세먼지에 대해 잘 알 것 아니겠어.
이곳은 1960년대부터 인근 자갈치시장에서 헐값에 사 온 고등어를 구운 고갈비를 팔아 호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대학생, 청년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었어.
전성기에 13개 점포가 있어 저녁때면 우리를 굽는 연기가 자욱했지만, 지금은 '할매집', '남마담' 2곳밖에 안 남았어.
참고로 고갈비는 고등어를 반으로 쪼개 소금을 뿌린 채 놔뒀다가 연탄불에 구운 거야. 고등어 등뼈를 쥐고 살을 발라 먹을 수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어.
고등어인 내가 봐도 참 맛있게 구워내거든.
암튼 고갈비 골목의 산증인인 '할매집' 한순돌(90) 할머니는 "여는(여기는) 고등어 구울 때 가게 밖에서 굽는다. 미세먼진가 뭔가 나와도 먹는 사람은 아무 지장이 없지. 나도 지금까지 40년을 고등어를 구웠는데 뭔 소리야"라고 말했어.
전통의 고갈비 집인 '남마담'을 1974년에 인수한 조한규(73)씨도 "고등어 구울 때 미세먼지가 많다는 언론보도를 유심히 봤다"며 "연기가 잘 안 빠지는 가정집에서나 그렇지, 환풍이 잘 되는 가게 밖에서 구우면 별문제가 없다"고 했어.
오히려 연기 때문에 고등어구이를 집에서 해먹기 힘든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는 게 조씨 아저씨의 말이었어.
고등어를 구울 때 미세먼지가 상당량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야. 레인지 후드를 켜거나 환기를 시키면 미세먼지를 들이마시는 것을 대부분 막을 수 있어. 마스크를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야. 미세먼지가 두려워서 고등어를 먹지 않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꼴이겠지.
미세먼지는 물론 예년보다 고등어 어획량이 절반 정도 수준으로 줄어 어민들은 울상이야.
고등어 크기는 작아져 중간급 이상 고등어의 도매가격은 지난해보다 6.2% 올랐어.
이런 틈새를 최근에는 노르웨이산 고등어들이 차지해버렸어. 노르웨이산 고등어는 2012년부터 수입 고등어 시장 점유율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했고 지난해에는 점유율이 23%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정도였어.
국내 고등어들의 분발이 필요하지만 배워야 할 부분도 있어.
노르웨이는 10여 년간 축적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9∼10월에 3년 이상 된 고등어만 수확해. 마구잡이식 어획은 철저하게 법으로 규제해 불법 조업은 즉각 적발하고 어획량을 제한하고 있지. 수년째 최상의 고등어 품질을 유지하는 비법이야.
그에 비해 우리나라 대형선망업계는 나름대로 자원보호를 위해 10년 전부터 매년 4월 말부터 한 달간 자율적으로 휴어기를 가지고 있지만 갈수록 어획량이 줄어들고 있어 큰일이야.
고등어 어획량이 감소한 원인으로는 무차별 남획으로 인한 자원고갈과 기후변화로 고등어 어장이 이동했다는 두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미세먼지 때문에 고등어 소비가 당분간 위축되긴 할 것 같아. 하지만 위기가 곧 기회라고 하잖아.
이번 일을 계기로 고등어 소비를 위축시키는 원인인 비린내나 미세먼지를 없애고 번거로운 손질을 간편하게 하는 연구도 더욱 활발히 이뤄지길 바라.
'국민 생선'인 고등어를 버리지 말았으면 좋겠어. 그러기엔 '바다의 보리'라고 불릴 정도로 다이어트나 동맥경화, 뇌졸중 예방에도 좋은 EPA, DHA 같은 불포화지방산 등 영양이 풍부하니까 말이야.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