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영국 음악저작권협회가 지난 75년간 가장 많이 연주된 음악을 조사해 발표했다. 대다수 팬은 비틀스를 떠올렸으나 예상은 빗나갔다. 전 세계 팝송 팬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불린 곡은 '어 화이터 세이드 오브 페일'이라는 노래였다.
이 곡은 1967년 게리 브루커 등 영국 청년 5명이 결성한 록 밴드 '프로컬 하럼'(Procol Harum)의 데뷔 싱글 음반에 실린 작품이다. 난해한 가사와 노래 제목도 유명세를 보탰다. 노랫말에 나오듯 '(처음에는 유령 같던 그녀 얼굴이) turned a whiter shade of pale'을 연결해 해석하면 타이틀을 이해하기가 조금 낫다.
밴드 이름도 어려워 의미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드물다. 매니저가 기르던 고양이 이름인 프로쿨 하룬을 바꾼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한편 '모든 것을 넘어'(beyond these things)라는 뜻의 라틴어라는 견해도 있는데 정확한 라틴어 번역은 '프로컬 히스'(Procul his)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밴드의 괴상한 취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두 번째 앨범에는 마치 암호문 같은 'In Held 'Twas in I'라는 곡이 나온다. 이는 5부작으로 된 이 작품의 각 단락 첫 단어를 합친 것으로 의미 없는 단어의 조합이다. 이런 기법을 '어크로스틱'(Acrostic)이라고 하는데 문장 각 행의 첫 글자를 조합해 다른 문장으로 바꾸는 암호문이다.
서양사에서 대표적인 어크로스틱은 '익투스'다. 익투스(ΙΧΘΥΣ)는 물고기라는 뜻의 그리스어이지만 '예수스 크리스토스 데오스 휘오스 소테리아스'의 첫 철자를 연결한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 아들, 구세주'라는 뜻이다. 초기 기독교도들이 로마의 박해를 피해 은밀히 공유한 암호이자 상징이었다.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이승만 시 공모전에서 입선한 '우남찬가'가 어크로스틱을 활용한 모욕시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결국 고소전으로 비화했다. 각 행의 첫 글자를 모아 읽으면 '민족반역자' '국민버린도망자' 등 이승만을 비판한 시가 된다. 명예훼손, 사기 혐의 등으로 피소된 지은이 장민호 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문학 기법을 활용한 것일 뿐"이라며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맞서고 있다.
정면에서 비판하지 않은 응모자도 문제가 있지만 이를 사전에 걸러내지 못하고 법정으로 몰아가는 자유경제원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떻든 본질을 교묘히 감추는 글쓰기 기법에 대한 관심을 높인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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