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건 당일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우발적으로 죽였다." 대구 건설업체 대표 살인사건 피의자 진술 중 일부다. 피해자인 대표와 피의자인 전무는 한 건설사에서 15년 동안 동료이자 친구로 지냈고, 이후 동업으로 업체를 꾸려온 친밀한 사이였다. 피의자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도대체 무엇이, 어떤 상황이 피의자를 화나게 하여 '형제' '친구' 같은 사람을 대상으로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는지 궁금하다. 그가 화를 잘 다스려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갖게 된다.
#2 전직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에게 사정 칼날을 들이대며 '특수통 검사'로 이름을 날린 홍만표 변호사. 검찰 조직을 떠난 지 5년도 안 돼 자신의 친정이자 후배 검사들로부터 수사를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한 해 수임료로만 90억원을 벌 정도로 돈이 될만한 사건을 싹쓸이해 '서초동 블랙홀'로 불렸다. 거액의 불법 수임과 탈세 문제가 그의 발목을 옭아맸다. '거악(巨惡) 척결'이란 검사 재직 시의 마음가짐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었다면 자신이 '거악'이 되는 운명의 수레바퀴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돈에 대한 탐욕(貪慾)을 제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두 사람이 저지른 일과 처지는 사뭇 다르지만 관통하는 코드(code) 하나가 있다. 화를 참지 못하고, 욕심을 다스리지 못한 탓에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화'욕심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견디는 힘이 약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선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화를 참지 못해 일어나는 불길, 욕심을 다스리지 못해 크게 번지는 불길이다. 살인 등 강력사건에 보복운전과 같은 화로 말미암은 범죄가 급증하고, 욕심을 다스리지 못해 애써 쌓아온 명성을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화'욕심을 제어하고 다스리는 힘, 마음 근육(筋肉)이 약한 게 근본 이유라 할 수 있다.
'은근과 끈기'라는 수식어에서 알 수 있듯 우리 민족은 견디는 힘이 대단했다. 배고픔도 견뎠고, 억울해도 잘 삭였다. 혹독한 시련도 극복했다. "참을 인(忍)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니었다.
돈의 유혹도 잘 이겨냈다. 벼슬 높은 것보다 재물 욕심 없이 곧고 깨끗한 관리인 청백리(淸白吏)를 더 높이 칭송했다. 아무리 추워도 곁불은 쬐지 않는 자존심으로 욕심을 물리쳤다.
그랬던 미덕이 깡그리 사라졌다. '욱하는 대한민국'이라 할 정도로 화를 폭발시키는 세상이 됐다. 화를 참으면 오히려 바보가 되는 것이 세태이다.
아무런 죄의식 없이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을 탐하고 갖는 짓도 다반사다.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라는 비뚤어진 생각을 갖고 마구 먹었다가, 법망에 걸려들면 "나만 먹은 것도 아닌데, 재수 없다!"고 내뱉는 자(者)들이 부지기수다. 오죽하면 '김영란법'까지 만들어졌을까?
화나게 하는 일, 돈의 유혹과 같은 외부 요인으로부터 스스로 견디는 힘, 마음 근육을 단련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 다른 사람은 물론 나를 지키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마음 근육 단련하기는 어려서부터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조언이다. 자녀가 지식을 갖도록 하는 것 못지않게 견디는 힘, 마음 근육 단련 교육을 부모가 실천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버지, 어머니가 욕먹을까 봐, 집안이 손가락질 받을까 봐 화가 나도 참고, 나쁜 짓을 안 했던 것이 우리의 미풍양속이었다. 어려서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과 같은 유교 교육을 조금이나마 접했던 덕분이다. 부모와 자녀, 국가와 국민, 남편과 부인, 어른과 젊은이, 친구 사이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게 유교의 본체 중 하나다. 나 혼자서 사는 세상이 아닌, 다른 이들과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를 가르친 것이다.
경쟁 위주 교육이 낳은 폐해가 부메랑이 되어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요즘. 사랑하는 자녀를 무릎 꿇리고 오륜(五倫)을 가르치며 인내심을 길러주고 마음 근육을 단련시킨 선조의 지혜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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