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책의 새論 새評] 새누리 주식회사

입력 2016-05-25 19:46:42

전원책 칼럼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제2회 백만원고료 한국문학 신인상. 전 경희대 법대 겸임교수. 전 자유경제원 원장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제2회 백만원고료 한국문학 신인상. 전 경희대 법대 겸임교수. 전 자유경제원 원장

대주주 김무성·최경환·긴급회동

단일성 집단지도체제 도입 합의

14년 만에 당내 민주주의 또 후퇴

외부인사 모셔봐야 혁신되겠나

백 년 전 독일 정치학자 로베르트 미헬스는 정당 내부에서 벌어지는 반민주적 과두 지배 행태를 비판한 과두제(寡頭制)의 철칙을 내놓았다. 20세기 초엽 사회주의 정당들이 대중정당으로 나아가면서 '사회주의 혁명을 실현한다'는 목적은 사라진 채 결국 몇몇 과두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조직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이 철칙은 사회민주당의 전신인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을 겨냥한 것이었지만, 그 뒤로 후진적 민주정의 정당들에 대한 비판으로 쓰인다. 곧 정당이 대중정당으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몇몇 보스들의 이익을 위해 작동한다는 것이다.

우리 정당들의 근원적인 문제점도 여기에 있다. 말하자면, 정당이 마피아 같은 폭력조직과 흡사한 구조를 가진 셈이다. 조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정당은 물리적 폭력에 의존하지 않는 것뿐이다. 오히려 조폭보다 못한 것이 그 나름의 정의감이나 미덕인 의리조차 없는 조직인 것이다. 그러니 정당의 핵(核)인 강령과 정강정책은 그저 장식이다. 단언컨대 소속 의원 중에 정강정책을 제대로 알고 있는 이는 극소수다. 하긴 이념이나 정책으로 결집한 게 아니라, 오직 벼슬을 얻기 위해 투신한 것이니 강령이나 정강정책 따위가 무슨 대수이겠는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도 자신의 영화(榮華)만 보장된다면 그만인, 참으로 저열한 집단이다. 결코 정당이라 부를 수 없는 이런 유사정당(類似政黨)에 우리는 너무 익숙해져 있다.

그래선지 이제 언론조차도 반민주적 표현을 별 고민 없이 쓴다. '대주주'(大株主)라는 말이 그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대주주는 문재인이요, 국민의당의 대주주는 안철수라는 식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은 사실상 친문(親文) 단일대오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고, 국민의당이 처음부터 안철수 대망론으로 시작한 건 천하가 아는 일이다. 그래도 정당이 주식회사가 아닐진대 대주주라는 표현은 참으로 그 구성원들에게 모멸감을 안겨주는 말이다. 말이 국회의원이지 대주주 눈치나 보고 그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는 졸개라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게 어찌 야당만이랴. 새누리당은 주식회사로 치면 대주주끼리 치고받기 바빠 부실경영으로 망해가는 한계기업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총선에서 일패도지(一敗塗地)하여 달포 넘게 지리멸렬해 있던 대주주들이 다시 설치기 시작했다. 원래 사주(社主) 쪽이었던 친박계가 밀어붙인 정진석 원내대표는 처음부터 씨알이 안 먹혔다. 말이 화합 목적이었지 비박 일색인 비대위는 출범도 하기 전에 비토당했다. 원외(院外) 원내대표라는 한계 때문인지 정의화 국회의장이 퇴임하면서 직권상정한 국회법 개정안에 비박계의 반란으로 꼼짝 못 하고 당했다. 그러다 느닷없이 정 원내대표와 김무성 최경환 세 사람이 당의 지도부를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로 합의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게 무슨 소린가? 말하자면 대주주인 김무성과 최경환이 그동안 봉숭아학당이라고 조롱받던 최고회의의 권한을 당 대표에게 몰아주는, 사실상 단일 대표체제로 바꾸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2002년 봄 대선을 앞두고 당내 민주주의를 위해 총재제를 합의제로 바꿔야 한다고 난리를 피운 끝에 집단지도체제가 된 지 14년 만에 새누리당은 다시 '기록적' 후퇴를 하고 있다. 그동안 신속하고 명쾌한 의사결정이 필요한데도 최고회의가 번번이 계파의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부작용이 있었다는 게 명분이다. 시끄러운 분란을 피하려면 차라리 두 대주주가 내세운 일인이 모든 걸 전단(專斷)하는 게 낫다는 꾀다. 모처럼 두 사람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쯤 되면 김무성 최경환 두 사람이 그동안 은인자중한 것은 그저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데서 나온 눈가림이었던 게 된다. 그런데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당내 민주주의를 위해서 당 대표니 하는 과두들의 자리나 사무총장 같은 행동대장의 자리를 없애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당의 의사를 독점하는 길을 터주는 게 말이 되는가? 이러면서 외부인사를 불러 당의 혁신을 맡긴다고 한다. 그 '용역'(用役)이 무슨 배짱으로 혁신할 수 있겠는가? 혁신은 두 대주주의 권력을 빼앗는 일인데, 그리고 두 대주주가 번연히 눈을 뜨고 있는데 말이다. 지켜보는 내 얼굴이 다 뜨겁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