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주의 야생화 이야기] 달콤하고 겸손한 꽃송이를 가지고 있는 등나무

입력 2016-05-18 18:22:03

강대택 님의 '등나무노래'라는 시가 있다. '소꿉동무 너와 내가 맞잡은 손이 악수가 되고 포옹이 되고 이젠 한 몸이 되어 하늘 향해 뻗어 올라 푸른 지붕 엮고 자주색 꽃등 밝히니 참 좋다'라는 시처럼 한평생 부둥켜안고 서로 의지하며 아름답고 향기로운 보라색 포도송이꽃을 피우고 있으며, 낮은 자세로 임하는 등나무의 겸손함이 나는 무척이나 좋다.

우리 동네 아파트 앞쪽에 쉼터가 하나 있다. 아니 어느 교정 쉼터에나 있는 나무가 있다. 그 쉼터에 5월 초가 되면 벌들이 윙윙거리며 날아다닌다. 부지런히 꿀을 좇아 움직인다. 감미로운 향기와 꿀을 가지고 있어 벌들이 좋아한다.

연자주 또는 연보라색이며,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꽃을 처음 보는 사람은 포도로 믿을 만큼 비슷하게 생겼다.

사실 나는 어릴 적 처음 등나무꽃을 보고 포도송이가 열린 줄 알았다. 포도송이처럼 아래를 향해 피고 있는 꽃송이가 바로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등나무'이다.

등나무꽃 향기는 코끝이 진동할 정도로 강하며, 아카시아 향기와 비슷하다. 따스한 봄날 오후 등나무꽃 향기를 맡으며, 수많은 이야기를 속삭였던 추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학창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등나무꽃 향기는 진한 그리움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일이 까다롭게 얽혀 풀기 어려울 때 쓰는 '갈등'(葛藤)이라는 말에서 '갈'(葛)은 칡넝쿨을, '등'(藤)은 등나무를 뜻한다. 등나무는 줄기가 오른쪽으로, 칡은 왼쪽으로 감고 올라가는 성질이 있어서 이들이 만나면 서로 먼저 기어 올라가며 복잡하게 얽히게 됨을 뜻해서 생긴 단어로, 일이나 사정이 서로 복잡하게 뒤얽혀 화합하지 못함을 비유한다.

등나무 줄기는 모양이 좋고, 탄력이 있어 지팡이를 만들어 임금님께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등나무는 '사랑의 나무' 전설을 가지고 있다. 신라시대 때 어느 처녀와 총각이 사랑하던 중 전쟁이 난다. 전쟁터에 나간 그 총각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처녀는 힘들어하다 연못에 몸을 던졌다. 나중에 죽지 않고 돌아온 총각은 처녀의 소식을 듣고 역시 비통해하며 연못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그 후 이들의 사랑이 연못가에 한 그루의 팽나무와 이를 감싸 안은 등나무로 생겨났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등나무 꽃을 베개 속에 넣거나 삶아 먹으면 부부 금실이 좋아진다 하여 이 나무를 찾는 사람도 있다. 또한 중국에서는 등나무 향을 많이 쓰는데, '이것을 피우면 향기도 좋고 다른 향과 조화를 잘 이룰 뿐 아니라 연기가 곧바로 하늘로 올라가 그 연기를 타고 신이 내려온다'는 전설을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민간요법으로 등나무 뿌리를 이뇨제나 부스럼 치료약으로 쓰고 있다.

비록 혼자서는 살 수 없고 다른 나무들을 휘감아서 괴롭히는 달갑지 않은 점도 있지만 아름다운 꽃과 향기, 짙은 그늘을 만들어주는 등나무는 삶의 쉼터이다.

등나무꽃이 피는 5월, 이 아름다운 향과 모습을 마음껏 부둥켜안고 취해보기를 바란다. 모르고 지나쳐 버린 행복을 등나무 쉼터에서 다시 맛보며,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등나무꽃송이의 기운을 받아 멋지고 행복한 한 주가 되길 바란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우리 앞에 있다. 가자 행복을 찾으러….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