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대담]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입력 2016-05-15 20:58:06

"독불장군이 살아남겠나? 인류가 살아 남기 위해선 함께 가야"

사진=이성근 객원기자
사진=이성근 객원기자

최재천 원장은 과학자이면서 인문학자다. 열대 정글에서 동물의 삶을 관찰하고, 강단에서 과학과 인문학의 결합을 설파한다.

우리는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그는 진화론자로서, 또한 사회현상과 문화와 제도를 설명하는 사회생물학자로서 놀라운 식견을 보여준다. 인문학과 과학, 그리고 예술을 넘나드는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통섭'(consilience) 학자로서 사회에 값진 충격을 준다.

최 원장은 남성 우월적 제도와 문화의 사회생물학적 모순을 지적하는 여성운동가이다. 성장 중심의 정책을 염려하는 생태론자, 자유롭고 경계 없는 교육을 주장하는 사회개혁가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던진 '충격'에 비해 그의 모습은 아주 평온하다. 늘 푸근한 차림새에 밝게 웃는 얼굴이다. 국립생태원 원장으로 있으면서도 문과 졸업생들을 위한 '자신감 충전 프로젝트'(무동학교 교장)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 미시간대, 서울대 교수를 거쳐 지금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등 30여 권의 저술과 번역서를 냈다.

'다시 태어나도 지금처럼 살겠다'는 그를 매일신문 서울지사(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김병준: 재미있는 말씀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일반 독자들을 생각할 때 어디서부터 어떻게 물어야 할지 모르겠다. 생소한 부분도 있을 것 같고.

최재천: 물어주시면 그대로 따라가겠다.

김병준: 생물학적으로 보았을 때 남성우위의 사회를 일종의 모순이라 말씀하신 것 같은데 제대로 이해를 한 건가?

최재천: 맞다. 자연계에서는 대체로 암컷의 힘이 강하다. 번식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암컷이 수컷을 선택한다. 수컷이 아름다운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다. 암컷에게 매력적으로 보여야만 선택을 받을 수 있다.

김병준: 예외 없이 그런가?

최재천: 일정한 영역 안에서 수컷 중 가장 센 알파 수컷이 암컷을 여럿 거느리는 일부다처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건 오히려 소수이다. 대부분은 암컷이 수컷을 선택한다.

김병준: 인간은 어느 종족 할 것 없이 남성우위의 문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 같은데.

최재천: 인간이 존재한지 25만 년 정도가 되는데 지난 1만 년 정도만 그런 것 같다. 나머지 세월은 다른 영장류와 마찬가지로 여성이 우위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김병준: 무엇이 지난 1만 년을 그렇게 만들었나?

최재천: 농경시대의 도래다. 수렵시대만 해도 남성의 생산능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루 종일 들판을 헤매다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돌아오곤 했을 것이다. 그러다 농경시대가 오면서 남성의 생산능력이 커지게 되었다. 힘으로 농사를 짓고 수확을 하고, 그리고는 곳간을 지배하게 되었을 것이다.

김병준: 그런데 이게 지금 변한다는 말 아니냐?

최재천: 지금은 근육으로 생산하는 시대가 아니다. 여성도 돈을 번다. 변할 수밖에 없다. 여성이 남성보다 경제적인 면에서 더 우월해야 여성우위의 사회가 오는 게 아니다. 여성이 경제적으로 독립할 정도만 되면 많은 게 달라진다. 남성이 그만큼 덜 필요하기 때문이다. 남성이 결혼이라도 하려면 여성에게 잘 보여야 한다.

김병준: 늘 말씀하시는 것처럼 화장도 해야 하고?

최재천: 그렇다. 예뻐져야 한다.

김병준: 결혼제도가 무너지는 것 아닌가? 유럽 같은 경우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혼외출산이 50% 안팎에 이른다. 우리는 여전히 1~2% 정도이다. 하지만 추세선의 끝이 고개를 바짝 들고 있다.

최재천: 완전히 무너질 것 같지는 않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속절없이 사랑에 빠지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식을 기르는데도 다른 동물보다 손이 많이 간다. 여성 혼자 키우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결혼의 구속력이 크게 떨어질 것이다. 여러 차례 결혼하고, 여러 차례 헤어지고 그럴 것이다. 결혼도 이혼도, 또 재혼도 많아진다는 말이다.

김병준: 설명을 해주셨듯이 생물학적 지식, 특히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진화론을 기초로 사회현상이나 사회변화를 연구하는 사회생물학(Social Biology)을 하신다.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사회적 압박으로 공부하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최재천: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내가 학생이었던 시절만 해도 사회생물학 공부를 한다는 말을 잘 하지 못했다. 누가 행패라도 부리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였다.

김병준: 세계적인 학자이자 은사이신 하버드대학의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 교수도 물세례를 받는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다.

최재천: 그렇다. 밖에서는 물론 같은 학과의 동료 교수도 강한 비판을 했다.

김병준: 사실 대학원 시절에 윌슨 교수의 '곤충사회'(Insect Society)를 읽은 적이 있다.

최재천: 아, 그 책을? 윌슨 교수의 첫 저술이자 최고의 책이다. 는 '책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는 서평을 싣기도 했다. 자연계와 사회현상을 포괄해서 볼 수 있는 큰 그림에 구체적인 내용에 이르기까지 정말 멋진 책이다.

김병준: 솔직히 끝까지 읽지는 못했다. 내 생물학적 상식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웃음) 하지만 충격적이었다. 인간을 생존욕구와 번식욕구만을 가진 DNA의 결집체로 보는 것도 놀라웠고, 인간이 만든 문화와 제도 등을 모두 이러한 DNA의 작용으로 보는 것도 놀라웠다. 일부 논평자들은 신(神)도 영생의 욕구를 가진 DNA가 만들어 낸 허상이라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을 했다. 이러고도 기독교 교회로부터 무사할까 걱정이 되었다.

최재천: 비판은 오히려 진보진영으로부터 더 강하게 왔다. 모든 걸 DNA의 작용으로 환원해서 설명하면,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정당화된다는 비판이었다. 말하자면 보수적이라는 거다.

김병준: 정말 그런가?

최재천: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진보적이다. 그래서 매력을 느끼며 공부했고, 또 하고 있다. 일례로 나는 교육에 대해 일일이 다 가르쳐줄 것이 아니라 스스로 터득하게 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 어미 새는 나는 것을 보여줄 뿐 날개를 이렇게 저어라, 저렇게 저어라 새끼를 쪼아대지 않는다. 이런 게 다 생물학적 상식과 지식으로부터 나오는 것 아니겠나.

김병준: 호주제 폐지 논쟁이 붙었을 때 헌법재판소에 호주제가 사회생물학적으로 모순이라는 의견서를 내셨다. 당시 재판부는 물론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사회생물학이 얼마나 진보적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아니겠나.

최재천: 그 일이 있은 뒤 외국에서 열리는 사회생물학 학회에 갔는데 코넬대 교수가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줄곧 여성운동가들로부터 보수적이라고 공격받는데 최 교수는 그들과 손잡고 호주제 폐지운동을 했다. 그래서 상도 받았다. 우리가 공부하는 것이 이런 것이다. 최 교수가 멋있게 해냈다." 모든 참석자가 내게 기립박수를 보내주었다.

김병준: 말이 나온 김에 한 번 물어보자. 정말 우리의 생각이나 의지가 모두 DNA의 작용인가? DNA로부터 떨어진, 나름의 독립된 생각이나 의지를 가질 수는 없나?

최재천: 지구 상에 존재하는 생물을 놓고, DNA 영향을 많이 받는 순서대로 줄을 세우면 인간은 제일 끝에 설 것이다. 어떤 박테리아가 제일 앞에 설 것이고….

김병준: 독자적인 생각이나 의지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최재천: 그렇지는 않다. 내가 쓴 책 의 '유전자 장' 이론에서 말했듯이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DNA 손바닥 안에 있다.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기는 하겠지만 DNA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김병준: 모든 것이 DNA 손바닥 안에 있고, 그 DNA는 적자생존의 환경 속에서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움직인다? 어찌 좀 살벌한 느낌이다. 모두 이기적이고 투쟁적일 것 같기도 하고.

최재천: 그렇지 않다. 독불장군이 살아남겠나?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같이 가야 한다.

김병준: 같이 진화하고 발전한다는 뜻의 공진화(co-evolution)가 그런 말 아닌가?

최재천: 그렇다. 서로 경쟁하는 항공사도 노선을 공유하고 승객의 마일리지를 서로 인정해 주는 코드셰어(code share)를 한다. 생물의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공진화를 따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진화 자체가 공진화이다.

김병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세상을 정말 큰 틀에서 본다는 생각이 든다. 인류역사 전체를 보는 것 같고,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을 보는 것 같다.

최재천: 그래서 윌슨 교수도 나도 통섭을 이야기한다. 이 분야, 저 분야 모두 합쳐서 볼 줄 알아야 한다. 또 넓고, 크게, 길게도 봐야 한다. 인류역사 전체를 보는 유발 하라리(Yuval Harari) 교수의 '사피엔스'(Sapience)와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교수의 '총균쇠'(Guns, Germs, and Steel) 같은 책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시각이 중요하다.

김병준: 국립생태원 첫 원장을 맡고 계시다.

최재천: 노무현 전 대통령 때 결정된 사업이다. 서천, 장항 사람들이 왜 군산은 새만금을 만들어주면서 우리는 갯벌을 못 건드리게 하느냐고 데모를 했다. 그때 대통령이 나서서 "갯벌을 논으로 만들어 쌀을 얻는 것보다 갯벌에서 바지락 캐는 게 더 경제적일 수 있다"며 설득을 했다. 필요한 작업들을 한 뒤 2013년 문을 열었다.

김병준: 서천군수가 앞장서 데모를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잘 되고 있나?

최재천: 지난 2년 연속 100만 명씩 다녀갔다. 서천 같은 지역에 100만 명이 방문한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김병준: 그만큼 볼 게 많다는 이야기 아닌가?

최재천: 야외 부지가 총 991㎡(30만 평) 정도 된다. 논을 개조해서 만들었는데 생태학자인 나도 그렇게 빨리 늪지로 복원되는 줄 몰랐다. 그리고 실내 돔이 있는데 여기서 열대 정글, 사막, 온대와 극지 등 세계 5대 기후 생태계를 볼 수 있다.

김병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최재천: 많은 사람들이 "어, 저거 봐라. 공장을 짓지 않고 생태를 보전해도 뭐가 되네"라고 한다. 이런 게 기분이 좋다. 지금은 전국에서 벤처마킹하러 온다.

김병준: 문과 졸업생들을 위한 무동학교 교장도 맡고 계신다. 정보통신기술(ICT), 경제경영, 생명과학 등 다양한 분야를 가르친다고 들었다. 그야말로 담을 뛰어넘는 '월담'과 영역을 파괴하는 '통섭'을 몸소 실천하신다.

최재천: 고사를 하다 결국 맡았다. 한때 고등학교를 돌아다니며 문과 학생들에게 왜 이렇게 문과 공부만 하느냐고 나무랐다. 말하자면 많이 괴롭혔다. 그래서 이제는 보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문과, 이과 가릴 때가 아닌데 왜 우리나라 학교는 아직 이러고 있나 답답하기도 했다.

김병준: 글도 쓰고 있으시다. 베스트셀러 책들이 있고 신문 칼럼도 인기가 높다.

최재천: 얼마 전에 오랫동안 쓰고 있는 칼럼이 365회를 맞았다. 일주일에 한 번을 썼으니 365주를 쓴 셈이다. 감회가 깊었다.

김병준: 보통 글이 아니다. 특히 과학자로서는.

최재천: 어려서 시를 쓴다고 긁적거리기도 했고, 찬바람만 불면 신춘문예병에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니다. 치열하게 쓸 뿐이다. 자식도 나가 놀 때는 아비가 누구인지 모를 수 있다. 하지만 글은 늘 내 이름을 달고 있다. 그래서 세상에 함부로 내놓을 수가 없다.

김병준: 하시는 일에 자부심이 남다른 것 같다.

최재천: 그렇다. 다시 태어나도 지금처럼 살고 싶다.

김병준: 마지막으로 예민한 질문 하나 하자. 신을 믿나? 진화론자에게 묻는 질문이다.

최재천: 고 강원용 목사께서 묻곤 하셨다. "진화학자가 어떻게 교회는 이렇게 열심히 다니냐?" 그러면 "운전기사로 다니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면 껄껄 웃으시며 "공부하면 돼"라고 말씀하셨다. 독실한 신자인 아내에게 교회 다니겠다고 약속했고, 이걸 지키고 있다.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죽을 때까지 공부하고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김병준: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 아니냐?

최재천: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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