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다-제1회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 가작

입력 2016-05-11 18:56:24

나는 온 산하가 꽃 등불 잔치에 환장할 함성들로 들떠 있는 어느 가을 밤에 아버님을 찾아뵈었다. 아버지 집을 가는 나의 마음은 어느 때부터인가 무겁고 어두워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버지와 나 그리고 막냇동생이 교대로 밤에 어머니를 간병하기로 약속했다. 어머니를 밤새워 간병해야 하는 나의 순번 날이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병이 발병하여 치료한 12년 동안 우리 가족의 아픈 이야기가 각각의 마음을 만지며 쌓여 갔다. 어머니의 아름다움과 우리 가족들이 지켜온 최소한의 도덕적 양심을 무너뜨리면서 어머니의 병마는 살쪄 갔다. 그렇게 가족들의 관계가 병들어 갈 즈음 이름도 생소한 '파킨슨병'이라는 진단을 어머니는 받았다. 병의 증세가 나타난 후 7년 만이다. 곧은 성품의 아버지께서는 백방으로 다니시면서 어머니의 약을 구입하여 돌봤으며 병명을 안 뒤로는 더 열심히 뛰어다니셨다.

"내가 네 엄마를 저렇게 만들었으니 어떤 일이 있더래도 내 손으로 고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젊은 날 어머니께 무심했던 마음을 용서받기 위함인지 당신의 흰 머리 수보다 더 많이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 저 왔습니다." 그날도 전날 밤 간병으로 보낸 피곤과 짜증 섞인 시간이 흐느적거리면서 누워 있는 아버지 곁을 맴돌고 있었다, 아버지의 모습에서 한계를 넘어서는 내적 갈등이 살을 찢고 나와서 의식을 메말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피곤하고 지친 모습은 마른 나무가 호흡하는 절망감과 삭막함으로 이어져서 나를 너무나 슬프게 했다. 나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밤을 새워 간병을 한다는 것이 무척 힘이 들었다. 회사의 총괄 업무를 맡아야 한다면서 본사의 재촉이 심한 상황에서 나는 고민하고 있었다. 회사를 핑계 대고 서울로 탈출하여 어쩜 다시 오지 못할 승진의 기회를 잡을 것인가 나는 고민했다. 나는 어머니를 간병하며 이 상황을 나의 몫으로 안을 것인가 당연한 선택을 놓고 비열한 방황을 하고 있었다. 나에게 남아 있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게으름과 분노로 변하여 나를 슬프게 하지 말기를 매일 간절하게 비는 마음이었다, 어머니를 간병하기로 한 그날은 계절을 타고 온 단풍의 현란한 손짓을 애써 멀리한 채 내 마음을 아픈 어머니께 기대고 싶은 밤이었다. 가을바람과 함께 어울려 온 뭉클한 엄마 젖내음을 맡고 싶은 밤이었다.

나는 무겁게 드리운 집 안의 밤 공기를 물리치며 책상에 서 있는 어머니의 사진을 보았다. 건강했던 어머니의 사랑을 아쉬움으로 그리며 예쁜 어머니를 보면서 말했다. 두려움을 안고 찾아온 밤에 나는 어머니께서 준 사랑을 품고 내 사랑이 진실이길 바라면서 어머니 방을 찾았다. 어머니는 망부석 같은 몸으로 누워 힘없이 손을 내밀어 아들의 내음을 맡고 싶어 했다.

"엄마, 기분 좋아요, 큰아들 얼굴 보니 기분 짱이겠네." 어머니의 힘없는 옅은 웃음이 얼굴을 보이면서 내 가슴에 웃음을 묻어 버렸다. 나는 따뜻한 어머니의 손을 만지면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젊은 날의 어머니 모습을 생각했다. 나는 며칠 사이에 부쩍 살벌해진 내 마음과 어머니가 미워지는 마음에 대해 어머니께 속으로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예뻤던 어머니의 가슴골을 따라 흐르는 시간을 역류하여 아픔과 그리움 속으로 나를 옮겼다.

이렇게 어머니의 병은 시작이 되었다. 병원 여러 곳을 섭렵하며 검진해 보았으나 병명을 찾지 못하고 증세는 더욱 깊어만 갔다. 가족들은 퇴직 후 집에 계시는 아버지의 관심을 더 받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라고 어머니를 비난했다. 그 후 몇 년간 간병으로 서로 감싸며 위로하던 가족들은 추한 뒷모습만 보이고 허물어지기 시작하였다. 끝을 알 수 없는 곳으로 아름다웠던 인성들이 슬프게 추락하고 있는 가족들을 보면서, 어머니가 미워지며 원망이 내 맘속에서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배워서 지녀왔던 도덕적 지성과 인성의 아름다움은 부끄러운 듯 머리를 숙이고 어머니의 곁을 떠나고 있었다. 나 또한 결코 변해서는 안 될 절대 가치의 아름다움이 흔들리며 불만과 짜증, 괴로움의 세계가 유혹했다.

어머니를 간병하는 마음은 항상 새로운 사랑을 잉태하여 진솔한 마음으로 향하다가 어느새 미움과 짜증으로 채워져 나를 괴롭혔다. 대소변을 치우는 일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으며 그 일을 행하는 나의 마음은 거칠고 난폭했다.

"아들아. 미안하다. 죽고 싶구나." 어머니는 힘없는 눈물로 당신의 괴로움과 참담함을 말했다. 간병에 지친 아버지는 분노와 절망의 늪에 빠져 어머니를 폭행하는 막다른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나 또한 포악해지는 절망 앞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 매일매일을 기도하면서 몸부림치는 생활이었다.

"내가 당신의 배 속에서 생활하다가 울면서 세상에 태어났고. 철이 들 때까지 똥 오줌을 향기로 맡으면서 나를 키우셨습니다." 미안해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말했다. 나는 왜 어머니의 대소변에 사랑으로 접근하지 못하는 불효를 저지르는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달라고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하는 내가 되어가고 있었다. 엄청난 내적 갈등과 싸우던 그날 밤 나는 너무나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나는 분명히 분노하고 있었으며 나를 위한 변명으로 사람 되기를 포기해 버린 파렴치한 타락한 인간이었다.

"얘야, 내 몸 좀 돌려다오." 잠결에 어렴풋이 들리는 힘없이 나를 부르는 어머니의 소리였다. 벌써 열 번은 넘었을 어머니의 부름이다. 나는 아마 십여 분을 잔 것 같았다. 또다시 나를 부르시고 또다시 나를 부르시고, 다시 내가 잠을 자기 위해 자리에 눕는 순간 또다시 나를 부르시며 몸을 반대편으로 돌려주기를 말씀했다.

"이렇게요?" 끓어오르는 화를 아닌 척, 거칠고 무례하게 연약한 어머니의 옆구리를 힘껏 들어 조이면서 침대에 뉘었다. 나는 분명히 팔을 통해 느껴지는 불길한 소리를 들었다, 걱정도 잠시 나는 깊은 잠 속으로 들어갔다.

가을밤으로 차린 저녁상을 받아 놓고 나는 어머니를 기다린다. 와 있는 가을을 성큼 토방 내려 반기질 못하고 내가 저질렀던 아픈 기억 때문에 때꼽 낀 발끝만 쳐다보고 있다. 화려함을 뽐내는 이 가을밤 눈물 머금고 촌색시 웃음 지으며 알 듯 말 듯 멈추어 버린 어머니의 속 이야기가 그립다. 자식 어려워서 입 다무신 엄마의 모습이 내 가슴을 도려낸다.

"엄니, 엄마, 내 엄니. 당신이여." 저를 용서하십시오. 나의 젊은 날의 시간은 세월을 붙잡고 교만과 경솔함으로 채워진 날들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갈지자걸음만 걷던 부끄러운 몸뚱이가 흰 머리카락마저도 등 돌린 늙은이가 되었다. 홀로 방에서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놓지 못하고 나는 어머니를 불러봅니다. 예쁜 엄니는 눈 오는 밤 떨면서 피는 꽃이 되어도 웃음 띤 얼굴로 나를 반길 것입니다. 우리 엄니의 웃음 뒤에 감춘 섧디 서러운 울음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 나는 당신에게 고백합니다. 내 입을 막지 마십시오. 그때 그 깊은 밤 아들의 포옹 그것은 미움을 감춘 위선의 포옹이었습니다. 저급한 인격이 내뿜은 추악하고 방정맞은 투정이었습니다. 나는 나에게 무서운 변명으로 그 위선에 화려한 옷을 입혀 효자로 태어난 척하면서 당신을 간병했습니다. 나의 위선은 더 무서운 변명으로 나의 얼굴을 가렸습니다. 나는 꽃가마 태워 당신이 주신 사랑을 장롱 깊이 던져 버렸습니다. 나는 당신의 부름이 귀찮아 힘껏 껴안을 때 '뚝' 소리 내며 갈비뼈 부러진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없었던 일인 듯 태연히 당신의 침대를 정리하며 당신을 뉘었습니다. 나는 인간 되기를 거부한 추악한 동물이었습니다.

그때 그 깊은 밤, 나의 행위는 당신에게 와 있는 병의 고통보다 훨씬 더 큰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당신은 머룻빛보다 더 검은 슬프디 슬픈 마음이었을진대 말 한마디 없이 모른 척 그 밤을 보내셨습니다. 당신은 왜 이 아들의 천박스러운 불효를 꾸중하지 않으셨나요? "엄니, 울 엄니 당신이여! 정녕 모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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