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 초선 국회의원들에게

입력 2016-05-10 20:33:04

오는 30일 금배지를 가슴 한쪽에 달고 국회의사당 로비를 지나 본회의장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이름이 적혀 있는 자리에 앉아 국회의장석을 응시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을 132명의 초선 국회의원들에게 한마디 당부의 말을 하고 싶다.

팔자 고치고, 택호를 바꾸고, 제삿날 쓸 지방을 그럴듯하게 장식하는 것이 국회의원이 된 목적은 아닐 터이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지금의 각오를 임기가 끝나는 2020년 5월까지 가져 달라는 것이다. 듣기에는 쉽지만 4년 임기 내내 실천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다수의 국민은 국회의원 세비가 너무 많고 제공되는 편의(특권)도 200가지가 넘는다며 대폭 줄여야 한다고 한다. 하라는 일은 안 하면서 돈과 권리만 챙긴다는 생각에서다. 없어도 될 국회의원 숫자는 100명도 많다는 혁명적인 의견도 있다. 7명이나 되는 비서진도 너무 많다고 야단이다. 의정의 조력자가 아닌 개인 비서나 선거운동원으로 전용한다는 이유에서다.

국회 출입 기자를 10년 가까이 한 필자는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돈과 특권을 축소하고 숫자까지 줄이자는 데 결코 찬성할 수 없다. 이유는 이렇다.

국회의원들이 받는 돈은 월급에 해당하는 세비 1억3천800만원, 의정활동 지원 경비 9천300여만원을 합해 연간 2억3천여만원이다. 4급부터 9급에 이르는 보좌진 7명의 인건비는 3억6천여만원이다. 인턴직 2명까지 포함하면 4억4천500만원에 이른다. 결국 국회의원 한 명을 위해 지원되는 예산은 연간 6억7천여만원이다. 국회의원 전체 숫자 300을 곱하면 1년에 국회의원 300명과 그 주변에 지급되는 예산은 2천억원을 조금 넘는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각종 편의까지 포함한다면 국회의원에게 주어지는 돈과 편의는 많고 또 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해야 하는 일의 무게감으로 잰다면 절대 과한 게 아니다. 공룡처럼 비대해지고 힘이 세진 행정부에 맞서 싸우고 견제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원되는 돈과 편의는 결코 많다고도 크다고도 할 수 없다. 400조원 가까운 돈과 그에 따른 권력을 주무르는 정부를 상대하려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살인'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4년 동안 물고 늘어지며 이슈화한 이는 비례대표 초선인 장하나 의원이다. 정부도 기업도 깔아뭉개고 감추려 하고 외면했던 이 문제에 대해 그녀는 집요했다. 장 의원마저 눈길을 거두었다면, 결과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또 한 사람. 참여연대 출신인 김기식 의원도 초선이다. 돈 만지는 정부 사람들에게는 저승사자로 통한다. "행세하기로는 국회의원만 한 직업이 없고, 일을 하기에는 국회의원만큼 할 일이 많은 직업도 없다"는 김 의원이 없었다면 많은 사람이 춤이라도 출 정도였다니 저간의 사정은 짐작이 간다.

대한민국은 국민을 위한 나라가 아니라 정부와 대기업과 극소수 특권 계급을 위한 나라라는 비아냥에 마음 아파지는 요즘이다. 김기식 의원같이 눈에 불을 켜고 정부를 감시하고 잘못은 추상같이 꾸짖고, 장하나 의원처럼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임기 4년을 모두 걸고서라도 물고 늘어지는 끈질김을 보인다면 허투루 새는 나랏돈은 적어질 것이고 억울해하는 국민들은 줄어들 것이다. 국회의원의 진정한 존재감은 이런 것이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도 있다. 정부와 기업의 잘못 때문에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실기업 구조조정 자금이 10조원도 넘을 것이라고 한다. 전국 대학생의 학자금 대출액을 모두 합한 규모가 이와 비슷한 12조원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밑 빠진 독 같은 곳에 혈세를 쳐넣어야 할 국민들만 답답하다. 탈 난 곳은 도처에 널려 있다. 제2, 제3의 장하나'김기식 의원도 많이 나올 수 있다.

자, 이를 꽉 물고 한 번 열심히 싸워볼 만하지 않은가.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