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주민들, 핵실험을 美 침공 막는 '자기 방어용'이라 생각합니다"
최근 연이은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남북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가운데, 북한에 직접 들어가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든 사람이 있어 화제다. 계명대 조현준(35) 언론영상학과 교수는 지난 2013년 북한 함경북도 나선'청진시와 경성군을 1주일간 여행하면서 만난 북한 주민들을 인터뷰했다. 조 교수의 생생한 인터뷰 장면은 다큐멘터리 영화 '삐라'로 만들어져 지난해 경기도 고양'파주시 일원에서 열린 '제7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처음 일반에게 공개됐다. 조 교수는 "처음엔 북한의 인권 실상을 파악하려 했는데, 취재 과정에 삐라 살포가 남북 간에 긴장을 초래하는 면이 있다는 점을 알게 돼 거기에 초점을 맞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북한 현지에서 찍은 다큐멘터리
'삐라'는 우리나라에서 날려 보내는 삐라에 대한 북한 주민의 생생한 의견은 물론 핵무장에 대한 생각, 생활 모습 등이 고스란히 담긴 영상이다. "이 다큐는 간략하게 말해서 3차 핵실험 이후 임진각에서 벌어졌던 사건, 그리고 북한 주민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준비는 2012년 말부터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탈북자 중심으로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제작했는데, 당시 삐라 관련 논란이 불붙으면서 방향을 틀었지요. 우리나라 탈북단체에서 북한으로 날려 보내는 삐라에 대해 국내에서도 찬반양론이 맞서고 있는데, 정작 북한 주민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했지요."
그래서 조 교수는 지난 2013년 11월 중국 여행사를 통해 북한에 들어갔다. 조 교수는 캐나다 국적을 가지고 있어서 북한행이 가능했다고 했다. 영국'호주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 5명과 함께 한 여행이었다. 그는 "원래 외국인이라도 남한에서 일을 하거나, 살고 있는 사람은 입국 허가가 나오지 않는다"며 "저도 계명대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안 되는데, 신분증을 위조했다. 캐나다 경영학과 대학생으로 속이고 들어갔다"고 했다.
그는 1주일 동안 함경북도 나선'청진시와 경성군 등지를 여행하며 영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함경북도를 한 바퀴 다 돌았습니다. 북한의 여행 상품은 대부분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데, 평양을 제외한 도시를 갈 수 있는 상품은 제가 다녀온 상품이 유일하지요. 아마도 이때 처음 개발된 상품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북한에선
영화 '삐라'에는 10여 명의 북한 주민이 등장한다. 대부분 조 교수가 북한 인솔자 몰래 찍은 사람들과의 대화로 구성됐다. 조 교수는 "삐라에 대해 대부분의 북한 주민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면서 "김정은 체제는 일단 종교다. 결국 김정은은 신적인 존재인데, 그 사람을 화형시키고 돼지로 만든 내용이 담긴 삐라이니 싫어할 수밖에 없더라"고 했다.
다큐멘터리에서 교사 출신이라는 40대 한 남자 주민은 남한 탈북자단체의 삐라 살포를 강하게 비판했다. "(풍선에) 좋은 것, 쓸 수 있는 것을 넣어 날린다지만 그 사람들이 왜 보내느냐"면서 "인도적인 차원이라면 차라리 적십자를 통해 공식적으로 해야지, 왜 상대방이 인정할 수 없을 만큼 불법적인 방법을 택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좋은 것, 쓸 수 있는 것'이란 삐라 풍선에 함께 든 의약품 등을 말한다.
조 교수는 "삐라에 대한 북한 사람들의 반응은, 한국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에게 하느님 욕하는 것과 같은 상황으로 이해됐다. 이 사람들은 모두 세뇌당해 있으니까, 안 통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핵실험에 대해서는 '자기 방어용'이라는 주장이 많았다고 했다. 나선시의 한 북한 주민은 "핵이 있기 때문에 미국이 우리를 치지 못한다. 예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이라크에 핵이 있었다면 그렇게 못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은 핵이 훨씬 많고 힘이 가장 센 나라인데, 우리한테만 핵을 만들지 말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우리가 핵이 있기 때문에 전쟁이 안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도 했다. 조 교수는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포기할 수 없는 마지막 보루였다"고 말했다.
◆잘사는데 왜 자살이 많아요
이 다큐멘터리 영화에는 삐라에 대한 얘기 외에 남한에 대한 북한 사람들의 솔직한 얘기들이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한 북한 주민은 "삼성을 잘 알고 있다. 또 중국 사람들로부터 들어서 남조선이 잘사는 것도 안다"면서 "그런데 왜 그렇게 자살하는 사람이 많은가. 잘사는데 자살하는 이유가 뭔가"라고 조 교수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는 또 "우리도 발전하게 되면 가까운 미래에 남조선 생활수준의 중간급 정도는 될 것"이라고 했다.
관광지에서 근무하는 30대 여성들은 "남조선에 가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제주도를 첫 번째로 꼽았단다. 이들은 "서울보다 제주도 경치가 좋잖아요. 빨리 통일이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경성군의 한 마사지업소에서 일하는 20대 후반 여성은 조 교수에게 "남한에서는 어떻게 연애를 하느냐. 우리는 주로 공원에 가는데"라고 질문했다. 조 교수는 이 여성에게 자신의 휴대폰에 저장돼 있던 우리나라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들려줬더니 "노래가 너무 시끄럽고, 정신이 없다. 남한은 이런 노래를 부르느냐"면서 별로 안 좋아했다고 웃었다. 조 교수는 "주민들 모습에서 활기가 느껴졌고, 식량이 부족하다곤 하지만 큰 고통을 겪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고 전했다.
북한 나선시는 경제특구여서 평양을 제외하고 북한에서 어느 정도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조 교수는 "중국과의 경제 교류가 왕성한 도시여서, 사람들이 외화를 많이 가지고 있더라"면서 "대부분 중국 위안화와 러시아 루블화이며, 유로와 미국 달러도 있었다"고 했다.
조 교수는 외화와 관련된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 "한번은 북한 인솔자가 다가오더니 '조 선생, 혹시 빳빳한 100달러 지폐 없소'라고 묻더군요.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미화 100달러짜리가 하나 있는데 구겨지고 약간 찢어져서 바꾸고 싶다고 했어요. 흠집이 난 미화는 은행에서 북한 돈으로 안 바꿔준다고 걱정을 많이 하더군요."
◆영화보다 영화 같았던 촬영
조 교수는 북한 주민들의 솔직한 얘기들을 담기 위해 몰래카메라까지 동원했다. "찍을 수 있는 장소에서는 DSLR 카메라를 사용했고, 촬영 금지 장소에서는 손목시계에 몰카를 장착해 찍었어요. 주민들과의 인터뷰는 대부분 북한 인솔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재빨리 한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듣는 식으로 했지요." 대부분의 인터뷰가 몰래 이뤄지다 보니 영상에서부터 긴박함이 묻어났다.
그는 매일 찍은 영상을 노트북 컴퓨터에 저장하기 위해 서울에서 비밀 폴더 만드는 방법을 배워갔다. "카메라 저장용량이 한계가 있어 매일 그날 찍은 영상을 노트북에 옮겨야 했어요. 노트북은 호텔에 놔두고 가야 해서 비밀 폴더 안에 저장하는 방법을 배워갔지요. 그래도 호텔에 놔둔 노트북을 누군가 열어 검열할까 봐 항상 걱정이 많았어요." 조 교수가 북한에 들어갔을 당시, 한 캐나다인이 북한에 억류돼 있던 상황. 그래서 더욱 조심을 했다고 했다.
한번은 북한 인솔자가 너무 피곤하다며 일찍 잠자리에 든 틈을 타서 밤중에 몰래 호텔에서 나온 적도 있다. 조 교수는 "호텔 인근 큰 가라오케에 가서 북한 식당에서 일하던 여종업원들을 불러 함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면서 "우리나라 노래방 시설과 비슷한데, 다른 점은 김정은과 북한을 찬양하는 노래 일색이었다"고 회고했다.
북한을 나오던 날, 예기치 않은 사건이 터졌다. 취재를 마치고 중국으로 나갈 때 북한 검문소에서 다른 일행의 짐은 다 나왔는데, 조 교수의 노트북만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는 것. "비밀 폴더가 들통날까 봐 정말 심장이 콩닥콩닥했어요. 30분 정도 있으니 겨우 노트북이 나왔는데, 그 시간이 얼마나 길던지. 이제 살았구나 하는 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조 교수는 지난해 말 대구의 한 독립영화관에서 '삐라'를 상영해 일반인들에게 공개할 계획이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그는 "통일부가 상영 금지를 한 것으로 안다. 정말 힘들게 찍은 영상이다. 북한 주민들의 생생한 얘기를 중립적인 관점에서 만들었다. 정치색이 하나도 없는 영화인 만큼 일반인들에게 공개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올 연말쯤 다시 영화관 상영을 계획하고 있다.
◆조현준 교수의 인권 다큐 세계
조현준 교수는 '삐라' 이전에도 여러 편의 인권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했다. 평소 사람들의 얘기를 좋아했던 그는 뉴스에 잘 등장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고, 그들의 삶의 현장으로 달려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삐라' 외에도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했다.
▶원래 '삐라'를 만들기 전에 북한 탈북자들의 삶을 조명하는 작품을 진행하고 있었다. 2012년 말부터 많은 탈북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취재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탈북자들의 이야기가 담긴 다큐멘터리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신문이나 TV에서 볼 수 없었던 유형의 탈북자들의 모습이다.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회주의가 최고라고 외치는 사람도 있고, 자본주의 천국이라고 찬양하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 편집이 끝나 올해 말에 극장에서 개봉을 준비 중이다. 제목은 '황색바람'이다. 황색바람은 북한에서 남한의 자본주의, 즉 미니스커트, 하이힐 등 미제 문화를 비꼬아서 부르는 말이다.
-그 이전에는 어떤 작품이 있나.
▶가장 처음 만든 작품은 2010년 만든 'Alive in Havana'이다. 쿠바에서 태어난 후 3세 때 난민으로 미국 마이애미로 건너가 30년을 살다가 쿠바로 다시 추방된 사람 이야기다. 국적만 쿠바일 뿐 미국에서 더 오래 산 사람이 겪는 좌절이 주 내용이다.
2011년에는 태국의 트랜스젠더가 주인공인 'Transiam'을 만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트랜스젠더와 윤락업소에서 일하는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은 레이디보이, 두 사람의 삶을 비교했다. 태국에는 트랜스젠더가 흔하지만 법적으로 결혼도 할 수 없는 등 제약이 많다. 그런 트랜스젠더의 인권 문제를 담았다.
그해 남미 니카라과 청소년 범죄에 대한 다큐멘터리인 'In the Streets of Managua'라는 작품도 있다. 본드를 불고, 마약을 할 수밖에 없는 남미 청소년들의 삶을 그린 영화다.
-앞으로 하고 싶은 작품은.
▶한국에서 제대로 찍어보고 싶은 다큐가 있다. 성매매 여성들의 문제다. 성매매특별법에 대해 중립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고 싶다. 성매매를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매매 여성들이 왜 성매매특별법을 반대하는 피켓시위를 하는지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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