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의사와 흰 가운

입력 2016-04-26 16:25:15

청바지에 티셔츠 그리고 운동화. 필자가 자주 입고 싶어 하는 옷차림이다. 하지만 병원에 출근하는 많은 의사들처럼 필자도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출근을 한다. 요즘처럼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면 옷차림에 신경이 쓰인다. 한여름에는 과도한 냉방으로 서늘한 느낌으로 지내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는 넥타이를 매고 긴 가운을 걸치고 있으면 땀이 주룩 흐르는 경우도 있다.

병원에서는 1, 2년 전부터 하복을 지급하고 있다. 기존 복장은 겨울에는 두꺼운 소재의 흰 가운을 입고, 여름에는 얇은 소재로 된 가운을 입는 식이었다. 하지만 새 하복은 응급실이나 수술실에서 흔히 입는 짧은 소매에 둥근 목을 가진 옷이다. 넥타이를 맨 셔츠 위에 긴 가운을 입다가, 짧은 소매의 옷을 입으니 시원하고 편했다. 넥타이를 푸니 목이 답답한 것도 덜했다.

그러던 중 새 하복을 꺼리게 된 일이 생겼다. 병원 집담회에서 환자와 의사의 관계에 대한 발표 중에 환자는 의사가 수술 가운을 입고 진료하는 것보다는 넥타이를 매고 흰 가운을 입고 있을 때 더욱 신뢰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날 이후 가급적 진료 시에는 넥타이에 흰 가운을 입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의사의 상징으로 청진기와 흰 가운을 떠올린다. 언제부터 의사들이 흰 가운을 입게 된 것인가? 긴 흰색 가운은 1800년대 후반부터 실험실의 과학자들이 안전을 위해 입기 시작했다고 한다. 반면에 당시 의사들은 검은색 옷을 입었다.

근대 이전의 의학은 미신과 비과학적인 영역이 많은 분야였다. 그러나 의학이 과학으로 발전하면서 의사들도 실험실에서 입던 가운을 입게 됐다고 한다. 즉, 의사들에게 하얀 가운은 과학적 연구와 토대를 바탕으로 체계화된 현대 의학을 기념하는 하나의 기념비이자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의과대학에서는 학생들이 병원 실습을 돌기 직전에 '가운 증정식'(white coat ceremony)을 갖는다. 현대의학을 이뤄낸 과학의 상징이자 의사임을 나타내는 의미의 가운을 입음으로써, 환자를 돌보는 학생의사로서 새로운 다짐을 하게 해주는 시간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이런 전통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미국 내 의사들 중 8분의 1 정도만 긴 가운을 입는다고 한다. 긴 가운은 불편할 뿐만 아니라 환자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영국의학회지에 의사의 가운 속에 포도상구균이 많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고, 팔꿈치 아래로 아무것도 없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병원 내 감염을 줄일 수 있다는 보고가 나왔다. 긴 가운은 의료인의 위생에서 가장 중요한 손씻기를 방해하고, 소매 끝부분은 세균이 번식하는 배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병원 내 감염이나 위생 문제를 긴 가운 탓으로만 돌려선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의사들의 상징이랄 수 있는 흰 가운. 그 운명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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