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도 제품 인정…"100년 쓸 수 있는 물처리 화공약품 만들고 싶어"
"쉽게 요행만 바라면 안 됩니다. 성실히 노력하면 반드시 기회와 행운이 따라옵니다."
경북 영덕 동해안에서 어려운 집안의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김승겸(60) ㈜유니테크 대표.
숱한 역경을 딛고 맨몸으로 성공을 일군 사업가다. 공고를 졸업한 뒤 취직했지만, 3교대로 밤낮없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해 업무 이후 짬을 내 공부에 매진했다. 뒤늦게 대학을 졸업하고 화공약품 회사에 취업해 영업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약품 개발에 뛰어들었다. 대학 시절 학비를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와 힘든 역경이 성실함과 열정의 바탕이 됐고, 결국 사업 성공으로 이어졌다. 광개토대왕의 뜻을 기리는 모임인 영락회에서도 왕성한 활동으로 인적 네트워크를 다지고 있는 김 대표로부터 사업 성공 스토리와 사회 활동에 관해 들었다.
◆위험한 학구열, '오토바이 영어'
군 제대 후 포항종합제철에 입사한 그는 공장에서 약 3㎞ 떨어진 독신용 기숙사(2인 1실)에서 생활하면서 자전거로 출퇴근했다. 쇠를 높은 온도로 가열해 늘이는 '열연'과 갑자기 식혀 조직을 단단하게 하는 '냉각' 중 냉각 공정 파트에서 일했다.
새벽부터 오후, 오후부터 밤,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하는 3교대 근무가 5일마다 순환됐다. 이 같은 생활이 반복되면서 '이런 생활을 평생 해야 하나'는 회의가 들었다.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대표는 "단순 반복되는 삶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공부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교대시간 이후에는 기숙사에서 공부에 매달렸다. 9급 공무원 시험을 쳐 합격하면 야간 대학에 갈 요량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도 영어사전을 들여다볼 정도였다. 결국 출퇴근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전거 대신 중고 오토바이 한 대를 구했다. 오토바이는 출퇴근 시간도 줄이고, 타고 가면서 영어사전을 보기에도 자전거보다 훨씬 나았다. 그러나 이것이 큰 사고를 부를 뻔했다.
하루는 기숙사 인근 식당에서 밥을 먹고 공장으로 출근하던 중이었다. 영어사전을 보면서 오토바이를 몰고 있는데, 갑자기 '쿵' 하면서 몸이 공중으로 떴다 바닥에 떨어졌다. 책가방도 나뒹굴었다. 앞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가다 반대편에서 오는 승용차에 부닥친 것이다. 승용차 운전자는 차에서 내려 "앞도 안 보고 신호도 안 지키느냐"고 호통을 쳤다. 잠시 뒤 승용차 뒷좌석에서 회사 임원이 내렸다. 임원은 대다수 군 장성급이었다. 교통법규도 지키지 않고 사고를 냈으니 '혹시 회사에서 해고되는 것은 아닐까'라고 걱정했다. 다행히 그 임원은 어깨를 툭툭 치면서 "목숨보다 공부가 더 중요하냐. 다친 데는 없느냐"고 위로했다.
◆사업 밑거름, 알바 '5분 스피치'
공무원 시험을 앞두고 실력 테스트를 위해 대학 예비고사를 쳤는데 합격 통지서가 날아왔다. 등록금도 없는 상황에서 직장에 계속 다닐 것인지, 대학에 갈 것인지를 고민했다. 결국 포철을 그만두고 대학을 선택했다. 이때부터 고생길이 시작됐다. 등록금은 물론 생활비도 빠듯했지만, 그렇다고 부모님에게 손을 벌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우선 급한 대로 은행에서 융자를 받았다. 그리고 방학만 되면 아르바이트(알바)에 나섰다. 돈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수익이 많은 알바를 찾았다. 대상은 회사 CEO와 전문직 등 상대적으로 부유한 라이온스나 로터리클럽 회원, 판매할 물건은 고급 안마의자였다. 이들 회원이 전국적으로 매주 모임(주회)을 가진다는 점에 착안했다. 주회가 열리는 날이면 화물차에 물건을 싣고 호텔로 가 모임 회장이나 총무를 찾았다.
김 대표는 "대학생인데, 학비 마련을 위해 알바를 하고 있다. 회원들에게 필요한 이 물건을 설명하기 위해 '5분 스피치' 기회를 달라"고 읍소했다. 그러면 대다수 시간을 내줬다. 처음과 달리 시간이 갈수록 경추, 요추 등에 미치는 영향을 비롯해 안마의자의 장점을 전문가처럼 술술 풀어냈다. 어떤 때는 한참 설명한 뒤 회원 중에 외과 전문의 등 의사들도 포함돼 있는 것을 알고 뜨끔하기도 했다. 의자 1개를 팔면 23만원이 남았지만, 운송비'화물 대여비 등을 제외하면 그렇게 수익이 높은 것도 아니었다. 융자 원금과 이자 등에 짓눌려 수차례 고비도 있었지만, 결국 4년을 힘겹게 넘겨 졸업했다.
◆열정, 새로운 도전
대학 졸업 후 전공(화학공학)을 살려 포항의 화공업체인 유니코정밀화학에 입사했다. 생산보다는 영업이 적격이었다. 화공 관련 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전국 판매망 확충에 나선 것이다. 포항을 중심으로 대구, 구미 등지로 화공약품 공급지를 넓혔다. 대학 때 알바로 한 '5분 스피치'가 영업활동에 상당한 도움이 됐다. 울산, 부산, 광양, 전주, 서울 등 각 지역 영업소(대리점 체인)를 개소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대리, 과장, 부장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회사의 신임도 두터워졌다.
이럴 즈음 먹는 물과 공업용수의 사용 후 폐수를 처리하는 약품 개발에 직접 나서게 됐다. 전국의 공장을 다니며 영업을 하다 보니 각 공장에서 들려준 애로사항이 계기가 됐다. '공업용 특정폐기물을 직접 처리하지 못해 위탁하니 비용이 너무 비싸다' '이 물이 COD, BOD가 너무 높고 중금속이 많은데, 이를 기준치보다 낮게 할 수 없느냐' 등등의 문제점을 듣고는 해당 물을 직접 가져와 연구를 시작했다.
◆창업과 시련, 그리고 성공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환경 분야가 각광받겠다고 생각할 무렵 획기적인 폐수 처리 약품까지 개발했다. 다른 회사를 통해 대기업 반도체회사에 납품해 보니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결국 1990년 경기도 용인에 작은 무허가 공장을 빌려 제품 생산에 나섰다. 창고 같은 공장에 직원은 고작 5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제품 경쟁력과 마진율이 높아 벌이는 꽤 쏠쏠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제품 판매가 상승곡선을 그릴 때 엄청난 재앙이 불어닥쳤다. 창업 3년째인 어느 날, 직원이 울산에서 가져온 원료를 다른 화학약품 탱크에 잘못 주입하는 바람에 해당 직원과 원료를 운송한 운전기사가 모두 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그날 출근하던 김 대표도 무색무취한 가스에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코뼈가 부러졌는지도 몰랐다. 병원에서 20일 동안 깨어나지 못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는 그동안 모은 돈을 몽땅 숨진 이들에 대한 보상금으로 사용했다.
다시 맨손이었다.
그는 "사고 후 처음엔 막막했지만, 다시 일어서야 했다"며 "제품의 기술경쟁력을 바탕으로 판로를 뚫었다"고 말했다.
대기업 반도체 회사가 김 대표가 개발한 약품을 다시 찾았고, 이후 경기도 평택의 산업단지에 허가 난 공장을 임차했다. 이후 특정폐기물을 안정화시키는 약품, 공업용 배관이 녹슬지 않게 하는 방식제, 미생물 발생을 억제하는 약품 등등을 잇달아 개발했다. 반도체회사에서 제철회사 등지로 판로도 크게 넓혔다. 1년 만에 10억원이 넘는 평택 공장을 사들였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회사는 지금까지 약품 300여 종을 개발하고 15개의 특허를 등록했으며, 전남 여수에도 공장을 추가로 설립했다. 무엇보다 창업 초기 무허가 공장에서의 사고 이후 화학제품에 대한 철저한 공정관리로 지금은 다른 화공약품 회사들이 벤치마킹을 할 정도다. 거래업체인 포스코는 이 회사 제품에 대해 '명품', 공장에 대해서는 '명가' 인정을 하고 있다.
◆또 다른 꿈을 꾸다
김 대표는 지금까지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그는 "행복에 익숙해지려면 꿈과 비전을 가져야 한다"며 "그것이 없으면 내가 왜 사느냐에 대한 존재감이 희박해지고 무력감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성공의 바탕을 ▷'5분 스피치 알바' 등 젊은 시절 고생과 경험 ▷지속적인 연구를 통한 기술경쟁력 확보 ▷끈끈한 인간관계를 꼽았다.
그는 앞으로 100년간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물처리 화공약품 개발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금은 길어도 10년, 짧으면 3개월 만에 효율성을 잃고 사라지는 약품이 상당수다. 특히 이 약품도 핵심원료는 대다수 해외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국내 원료로 대체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우리나라 원료만을 사용해 최고의 효과를 나타내는 환경 관련 제품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새 약품 개발과 함께 베트남, 브라질, 인도 등 해외 진출도 꾀하고 있다.
현지에 생산 시스템을 만들어주고 우리나라 직원이 해당 공장에 취업하는 등 해외 기술마케팅 및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겠다는 생각이다.
※영락회는…
김승겸 회장은 7년 전 포항의 친구 권유로 영락회에 발을 들여놓았다 지난 1월 말 영락회 서울포럼 회장에 취임했다.
영락회는 우리 민족사에서 광활한 영토를 확보하며 웅비했던 광개토대왕의 업적과 얼을 기리고 그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1973년 창립된 민간모임으로, 그의 연호를 따 이름 지었다. 영락회는 중앙회와 함께 대구, 포항, 서울 등 3개 지역에 포럼을 두고 있다. 현재 전체 회원은 200명가량이다. 영락회는 ▷광개토대왕의 업적 연구 및 정신 계승 ▷우리 역사와 문화의 정체성 확립에 관한 활동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 용기를 주기 위한 활동 등을 표방하고 있다.
김 회장은 "개척'포용정신 등 영락회의 정체성을 굳건히 세우고, 대구경북인들이 주축인 영락회 서울포럼을 더 활성화시키겠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취임하면서 영락회 서울포럼에 1천만원을 선뜻 내놓았으며, 분과위원회를 신설하고 사무국을 강화하는 등 포럼 활성화를 위해 열정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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