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대구 시민이 광주 시민께

입력 2016-04-22 20:50:52

계명대(학사)·경북대(석사)·계명대 대학원(언론학 박사) 졸업
계명대(학사)·경북대(석사)·계명대 대학원(언론학 박사) 졸업

지난 4'13 총선을 일주일 앞둔 6일. 대구의 새누리당 후보들은 공원 길바닥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큰절 마케팅의 주제는 미워도 다시 한 번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대통령을 위해서라는 친절한 설명문이 붙었습니다. 진박(진짜 친박) 감별사와 후보들은 반성과 다짐의 진정성을 보이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4년마다 되풀이되는 '윤절'이란 비난이 적지 않았던 걸 보면 유권자들은 되레 자신들을 무시하는 진정성을 본 듯합니다.

대구와 멀리 떨어진 광주에서도 거의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더군요.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첫날에 더불어민주당 광주 후보들이 5'18 민주광장에 모여 큰절 100배를 하였다니 말입니다. 광주의 더민주도 대구의 새누리당만큼이나 절박한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광주가 더민주를 버린 것이 대구에서 새누리당에 등을 돌린 것과 꼭 같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광주에서 더민주 완패로 끝난 선거 결과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옵니다. 무엇보다 싹쓸이한 국민의당이 좋았다기보다 더민주가 싫었다는데 한 표를 던집니다. 말하자면 울고 싶은데 뺨 때려주는 격이었다고나 할까요. 더민주를 탈당해 국민의당으로 나선 후보가 한둘이 아닌데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심판의 대상이 달랐던 셈이지요.

오래전 일이지만 대구에서도 제3당 바람이 거셌던 적이 있습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자유민주연합(자민련) 돌풍으로 13개 지역구에서 8명의 당선자가 나왔습니다. 당시 여당이던 신한국당은 무소속보다 못한 2명의 당선자를 내는데 그쳤습니다. 자민련 바람은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경제 불황과 지역 정치인 수사 등을 둘러싼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적잖은 부분을 차지하였습니다. '우리가 남이가'로 보여줬던 선거 때의 지지를 거둬들인 것입니다. 일부 정치인들이 부추겼지만 지역의 소외감은 시민들의 정서에 콕 박혔습니다.

그때와 근본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지만 이번의 광주도 대구의 데자뷰라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요. 호남 홀대론을 둘러싼 지역 정서의 표출 때문입니다. 호남 홀대론은 노무현정부를 넘어 지난 대선 이후는 반문(문재인) 정서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아 왔다지요. 밀어줘도 소용없다는 반감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닙니다. 그렇더라도 광주와 함께했던 흔적은 온데간데없고 선거구호를 뒤틀 듯 호남 차별의 잣대로 비토하는 의미는 좀체 가늠하기가 쉽지 않군요.

지금껏 선거에서 광주의 선택은 달랐습니다. 어느 순간에는 영남 패권주의와 지역주의의 대립마저 무디게 하였습니다. 이른바 '광주의 정신'이 표심으로 드러난 것이지요. 그것이 전략적 투표였든, 의식적 투표였든 광주 바깥의 유권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존의 지지를 털어내고 제3당을 출현시켰습니다. 김욱 교수가 '아주 낯선 상식'에서 말한대로 세속적 투표를 한 것일까요.

대구에서는 30여 년 만에 명실상부한 야당 당선자를 냈습니다. 그렇다고 고스란히 야당의 승리로 보기에는 주저하게 됩니다. 어느 면으로 보나 김부겸 후보 개인의 역량이 빛났다고 봐야겠지요. 이러나저러나 기운이 나는 것은 대구가 정치적 변화의 걸음마를 뗐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인지 광주의 투표 결과를 이해 못 하겠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그만큼 우쭐해진 거지요.

이번 총선은 야권 분열에도 불구하고 여당을 심판하고 3당 체제를 갖췄다는 점에서 산수를 수학으로 풀었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저는 민주주의는 누구나 쉽게 풀 수 있는 산수가 낫다고 생각합니다. 수학은 어쩌다 푸는 경우로 족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이제 편지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년 큰 선거에서조차 광주의 비토와 대구의 지지가 엉키는 그런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스무날 남짓 뒤면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이군요. 하늘은 여전히 푸를 테고, 그 즈음에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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