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검은 바다

입력 2016-04-15 22:30:02

지난 13일 본당 신자들과 함께 부활절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우리 가톨릭교회에서는 부활절을 지내고 나면 '엠마오'라고 해서 삼삼오오 혹은 단체로 가벼운 나들이를 하곤 했는데, 이제는 거의 전통이 된 듯합니다. 그 유례는 예수님의 죽음에 절망한 두 제자가 엠마오로 낙향하던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힘을 얻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는 성경 말씀에 따른 것입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한 날이 부활절 다음 날이니, 대부분의 경우에 신자들은 부활절 직후에 이 엠마오 나들이를 합니다. 저희 본당이 나들이 날짜를 4월 13일로 잡은 이유는 국회의원 선거일이라 임시공휴일이니 사전투표를 하거나 일찍 투표를 하면 참가자가 많겠다는 신자들의 의견이 모아졌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나들이 출발을 했는데 전날 밤부터 비가 내린 탓인지 빠진 사람도 몇몇 있었고 출발한 버스 안의 분위기도 떠들썩하기보다는 차분했습니다. 그래도 비가 오는 바다도 낭만적일 것이라는 기대에 신자들의 표정들은 밝았습니다. 목적지인 포항 호미곶에 도착하니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바람까지 불어 우산이 뒤집힐 정도가 되어서 그런지 임시공휴일인데도 방문객은 적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바다 쪽으로 걸어가는데 일행 중 한 분이 제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신부님, 비 오는 바다는 색이 검네요." 그분은 비 오는 바다를 본 느낌을 가볍게 말씀하신 것일 터인데, 바다색이 검다는 표현이 귀의 신경을 타고 머리를 돌아 가슴으로 내려와 멈추었습니다.

바다를 보면 먼저 과거의 힘들었던 해군 복무 시절이 떠오릅니다. 갓 스무 살에 입대하여 5년을 바다와 함께 살았으니 저에게 바다는 낭만보다는 고난이었습니다. 오늘 보았던 검은 바다는 또 하나의 기억을 불러왔습니다. 열일곱 살의 꽃다운 아이들과 여행자들을 품고 바다 아래로 가라앉은 세월호 참사입니다. 검은 바다와 세월호, 검은 바다와 팽목항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은 아마도 4월 16일이 가까워서였을 테지요.

이 글이 실린 신문이 인쇄되어 읽히는 날은 세월호가 침몰한 지 2년이 되는 날입니다. 2년 전 우리는 참 많이 울었고 많이 안타까워했습니다. 이 엄청난 참사를 잊지 않겠다고, 희생자들을 기억하겠다고 노란 리본을 달았습니다. 리본을 옷깃에 달고 차에 달고 휴대전화 메신저 대문사진에 달면서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슬며시 염려가 됐습니다. 나들이를 간 날이 국회의원 선거일이니 당분간은 이 나라 대부분의 언론매체들이 글로, 말로, 화면으로 선거 관련 기사들을 주로 다룰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세월 속에 묻혀서 우리들의 기억에서 사라질까 봐 조바심이 났습니다. 이런 글을 쓰는 저 역시도 성무가 바쁘다는 핑계로, 취미생활을 하느라고 세월호 참사를 잊고 산 적이 많았습니다. 만일 오늘 날씨가 화창했다면 봄바다의 아름다움에 빠져 이런 생각마저도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에게 오늘 검은 바다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선물인 듯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추기경 시절에 부에노스아이레스 크로마뇽 화재 대참사 1주년(2005년) 미사 때 하신 강론 말씀을 기억합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눈물을 흘릴 필요가 있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아직 충분히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일을 하고 직장을 찾아 나서고 장사를 하고 여행과 관광에 대해 걱정을 하지만, 정작 이 충격적인 참사에 대해서는 충분히 울지 않았습니다. 더는 여기에 없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충분히 울지 않았습니다." 교황님은 2009년 5주년 미사 때에도 한 번 더 강조하셨습니다. "우리는 194명의 희생자뿐 아니라 그 이상을 위해 울고자 여기 모였습니다. 우리는 아직 울고 있지 않은 도시를 위해 울어야 합니다. 이 도시는 절대 울지 않습니다. 아니, 울 줄 모릅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갖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도시가 사람을 죽이는 대신 생명을 낳을 수 있도록 함께 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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