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20대 총선 선거 결과가 나오면 어느 한쪽에서는 '아! 대구' 같은 장탄식이 나올 것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와! 대구' 같은 환호가 터질 것이다.
돌이켜보면 대구 사람들은 이번 선거 기간 참 행복했다. TV에서나 볼 수 있었던 거물들과 인기인들이 대구로 대구로 몰려왔다. 그냥 왔다만 간 게 아니다. 실세도 거물도 모두 나서 시민들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바닥에 조아리고, 연일 용서를 빌었다. 선거 때마다 등장할 정도로 실현이 어렵다는 공약들도 모조리 해결해주겠다는 말들의 성찬도 이어졌다. 대통령 선거로도 안 된 일을 총선에서 다 해 준다고 하니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실현 가능성을 떠나 기분은 괜찮았다.
압권은 10대 대기업 유치 건의였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얼마나 대구 판세가 답답했으면, 상황이 어느 정도 좋지 않았으면 씨알도 먹혀들지 않던 대기업 유치까지 공약이라고 들고 나왔을까. '실세', '좌장'이라는 이가 투표일에 임박해서 대구에 두 번씩이나 제발로 찾아와 "청와대로부터 대기업 대구 유치를 여러모로 검토하겠다는 답을 들었다"는 말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라면서도 안 된 일인데. 지금이 어느 때인데 기업을 정부가 끌고 온다는 말인지. 사정이 어지간히 급하긴 급했나 보다.
한쪽에서 이렇게 물량 공세와 함께 거창하게 나오니 상대 후보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더 머리를 조아리고 허리를 더 굽혔다. 한 명이라도 더 만나려고 손을 내밀었다. 목이 터져라 인사를 했다. 딱히 줄 게 없으니 몸만 더 혹사시켰다.
경쟁이 뜨거워질수록 유권자들은 신이 났다. 유권자다운 대접을 제대로 받았다. 얼마만의 일인가 기억도 없다. 선거가 끝이 나면 다 헛일이 되겠지만 그래도 며칠간 유권자라는 게 좋았다. 이런 선거라면 매일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서울 사람들이 너도나도 내려와 대구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시늉이라도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평소 소식이 뜸하던 전국의 친지들로부터 "대구는 어떠냐"는 질문도 여러 차례 받을 수 있어서 더 그랬다. 전국이 온통 대구, 대구만 쳐다봤다. 신문 방송에서도 대구는 단골 메뉴였다. 언제 대구가 이렇게 각광을 받았던가.
1번이라면 무조건 지지, 100% 당선이라고 했으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아마 없었을 것이다. 선거기간 전국이 피 터지게 싸워도 대구만은 적막했을 것이다. '공천 끝=선거 파장'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표를 까봐야 승패를 알 수 있는 곳이 속출했다.
대구가 총선에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은 건 1996년 15대 총선 이후 20년 만의 일이다. 당시에도 대구 표심은 무서웠다. 13개 선거구 가운데 2곳에서만 여당인 신한국당 후보를 살려 놓았고, 나머지 11개 지역에서는 자유민주연합과 무소속 후보들을 당선시켰다. 참패한 신한국당도 놀랐고, 압승을 거둔 자민련과 무소속 후보들도 놀랐다. 좀처럼 잘 움직이지 않지만 한 번 움직이면 큰일을 내고 만다는 대구 민심에 대구도 전국도 깜짝 놀랐다.
20년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무난해 보이던 선거를 새누리당이 스스로 망쳐놓았다는 점이다. '공천=당선'이라는 등식을 새누리당이 내팽개쳤기 때문이다. 17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의 공천심사위원을 지낸 소설가 이문열은 이번 공천을 '역대 최악의 공천'이라고 했다.
이유야 어찌 됐든 대구 사람들은 새누리당의 마구잡이 공천 덕분에 아주 특별하면서도 뿌듯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표심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후보들이 피 터지게 경쟁을 하면 유권자들은 상전 대접을 받는다는 것도 똑똑히 알았다. 그 공은 전적으로 새누리당의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고마운 일이다. 전국의 눈과 귀를 대구로 향하게 만든 대구와 대구사람들도 만세다.
땡큐 새누리! 비바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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