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의 야단법석이 오늘로 그 유통기한이 끝난다. 내일이면 누가 되든 한 표라도 더 많이 움켜쥔 주인공이 가려진다. 선거구 획정을 둘러싼 여야의 이전투구, 누더기가 된 공천 파동, 유권자의 성난 목소리도 뒤로 한 채 그들은 여의도로 달려갈 것이다. 묵직한 금배지가 가슴팍에 보란 듯 얹힐 것이다. 그리고 '당선사례'를 끝으로 4년이라는 긴 시간을 그냥 흘려버린 뒤 유통기한 1개월짜리 선거용 점퍼를 걸치고 또다시 구차한 공약과 멘트를 덧댄 꼬질꼬질한 손을 내밀 것이다.
흔히 공무원을 철밥통이라고 부르지만 정당과 정치인은 티타늄밥통이다. 말로는 공당이라고 우기지만 국민 눈에는 사당(私黨)과 다름없다. 정당 정치에 대한 깊은 이해나 공동체 이익, 국가 경영에 대한 고민과 열정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있다면 권세를 쫓는 동물적인 감각과 치열한 전투력, 일신 영달에 대한 집착뿐이다. 그들은 표심을 자극하기 위해 아스팔트 위에 기꺼이 무릎을 꿇고 백구머리를 친다. 표에 대한 본능은 국민을 깔아뭉개고, 계파 이해는 동지마저 스스럼없이 쳐낸다. 이익단체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그저께 수도권 후보 지원 유세에서 "철밥통 거대 양당은 선거 때만 되면 왜 이러는지 묻고 싶다. 평소에는 국민이 안중에도 없고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지 않다가 선거 때만 돼서야 죄송하다고 한다"며 일침을 놓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정치판은 이런 벼랑끝 전술에 이골이 났다. "우리 당, 내가 아니면 지역 발전은 없다"며 상투적으로 협박해댄다. 하지만 결과는 뻔하다. 4년마다 유권자를 거수기로 만들고 정파 간 권력 다툼으로 국민의 밥솥을 엎을 것이다. 이를 미국 언론학자 로버트 맥체스니의 표현대로 비틀어보자. '그들은 시민이 아니라 (정치) 소비자를 만들어내며 공동체가 아니라 쇼핑센터를 만들어낼 뿐이다.'
헌법 조항을 들먹였다고 잘라내는 새누리당의 정체성은 그야말로 초헌법적이다. 이런 졸렬함은 새누리당이 공당이 아니라 권력과 계파 이익에 눈이 먼 사당이라는 강력한 증거다. 야당도 여당을 욕하면서 닮아가는 꼴이다. 바른 정당 정치의 목표는 두말할 것도 없이 안전한 시민사회다. 서민 살림살이와 복지, 인권을 온몸으로 일으켜 세워야 한다. 하지만 우리 정당 정치는 그런 목표도 의지도 실종한 지 오래다.
선거는 과거와 현재에 대한 평가이자 미래에 대한 인적 투자다. 정당과 인물이 사회 발전과 개혁에 얼마만큼 기여했고 그 몫을 해나갈 것인지 가능성을 계산하고 표로 자기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다. 지난 4년간의 공에 대해 지나치게 인색하게 평가하는 것도 문제지만 실정(失政)을 눈감고 마냥 후하게 쳐주는 것은 더욱 옳지 않다.
대구경북이 바른 방향으로 진화하는데 열정을 쏟은 인물과 정당에게는 차별 없이 주단을 깔아주자.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거친 멍석도 냉큼 걷어치워야 우리 정치가 앞으로 나아간다. 표심이나 자극하고 선거 바람만 일으키는 정당, 무임승차를 노리는 인물에 대해서는 체로 모래 치듯 골라내고 논의 피처럼 솎아내야 한다. 만약 때때마다 유권자를 우롱하는 정당과 인물에 감투를 또 얹어준다면 조선조 말기 곡식이나 돈으로 벼슬을 산 '보리동지(同知)' 꼴과 무엇이 다른가.
지금은 그런 보리동지가 넘쳐나는 시대다. 그들은 많이 가졌다고, 많이 배웠다고 특권층인 양 으스댄다.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이들을 향해 욕설을 퍼붓고 "아저씨, 머리는 그냥 들고 다니세요?"라는 말로 핍박한다. 우리 정치는 이처럼 살 떨리는 사회 불평등을 방치해왔고 뿌리를 더 깊고 어지럽게 만들었다.
투표를 통한 선거혁명은 말처럼 거창하지 않다. 유권자 한 명 한 명의 손끝에서 나온다. 그것이 정치에 채찍을 가하는 힘이자 사회와 국가 변화의 출발이다. 13일, 20대 총선은 손가락의 힘을 보여주는 날이다. 정치 바람을 잠재우고 한국 정치를 교체하는 날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