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는 책이라는 문화상품을 통해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다. 하지만 출판사를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산업으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지역의 출판업은 더 그러하다. 지역 문화발전의 가장 핵심적인 요체는 출판이다. 대구에서 출판업을 한다는 것은 수도권보다 불리한 점이 많지만 결정적인 장애는 아니다. 남해의 작은 도시에 있는 작은 출판사가 우리나라 출판시장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을 보면 노력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
출판 일을 하다 보면 '작품집 하나 만드는 비용이 얼마냐'는 전화를 자주 받는다. 30년을 출판업에 종사했지만 나는 아직 그 답을 모른다. 원고도 보지 않고 책 한 권 만드는 데 얼마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앞으로 30년을 더 일해도 답해줄 수 없다.
이렇게 내 콘텐츠를 싼값에 팔러 다니지 마시라. 나무에게 미안하다. 독자도 여기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지역에서 출간된 책은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공짜로 얻어야 자존심이 선다는 독자들이 많다. 내가 남의 글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데 누가 내 글을 귀하게 여기겠는가. 촌에 산다고 촌사람이 아니라 이게 문화 촌사람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촌놈이 촌놈 무시한다'고 한다. 지역의 콘텐츠는 수준이 낮다는 인식, 그래서 지역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은 돈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공짜로 얻어야 한다는 생각. 잊자, 제발 이제부터라도 잊자. 글을 쓰고 책을 만들어 함께 읽는다는 것, 얼마나 경이롭고 아름다운 일인가.
대구시내에 181개 출판사가 있다. 숫자로 보면 출판 문화도시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최근 3년간 납본 경력이 있는 출판사는 24개에 불과하다. 대구 출판산업의 실체는 이토록 허약하다. 출판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책을 만든다고 다 출판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출판은 작가의 우수한 콘텐츠를 출판사가 만들고, 서점을 통해 독자에게 전해져야 한다. 여기서 한 단계만 빠져도 제대로 된 출판물이 아니다. 서울에서는 출판 경력을 가진 인력들이 옮겨 다니며 그 노하우를 퍼트린다. 대구에는 이런 경력을 쌓을 출판사도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도 없다. 우리 출판사도 마찬가지다. KTX 타고 다니며 서울에서 교육을 받고, 찜질방에서 잠잔다. 그것도 퇴근 후의 교육을 종일제로 개설해 달라고 부탁을 해서 이루어진다.
이런 환경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에 지역의 몇몇 출판사들이 의미 있는 책을 발간하며 성장하고 있어 반갑다. 대구에는 경기도 파주 외에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출판단지가 있다.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출판단지가 생긴 후 여러 기관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는다. 그렇지만 지역 출판사가 진정 원하는 것은, 어떤 물건을 하나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만들어 많은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자 하는 것이다. 재교육, 훈련 시스템이 필요하다. 대구시가 이 부분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지역의 우수 콘텐츠와 우수 도서를 선정해 격려하고, 지역 도서관에서 지역 출판물을 일정 비율로 구매할 수 있도록 권고한다면 더 신나게 일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올 하반기에 지역 출판업에 큰 바람을 일으킬 출판지원센터가 문을 열고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위탁 운영을 한다고 한다. 진흥원의 풍부한 경험으로 지역 작가, 지역 출판사가 전국의 독자를 찾아갈 수 있는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한다. 출판 인력을 양성하고, 도서전을 개최하고, 학생들의 현장학습 장소로 저자와의 대화 등을 개최한다면, 출판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은 물론 책 읽는 도시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여기에 국립한국문학관이 우리 대구에 유치된다면 그 가치는 상상 이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