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진학 상담실에서] 묻한 꿈

입력 2016-04-10 22:30:02

신입생과의 진로 상담 중.

"저는 진로 목표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쎄, 진로 목표를 정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네, 고등학교에 오니 진로 목표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상담 1호인데, 이 '고객?'의 만족도에 따라 올해 신입생들에 대한 진로 교사로서의 내 평판이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다. 대개 이런 경우 상담이 여러 번 필요한데, '고객님'은 뭔가 한 번에 뚝딱 해결책이 나오리라 기대하는 눈치이다. 수업 중에 대단한 진로진학 전문가인 듯 떠들었던 것이 후회스러운 순간이다.

진로교사 6년차이지만 신입생과의 진로상담은 언제나 긴장된다. 질문 하나하나가 호락호락하지 않다. 경력 초기엔 열심히 설명, 아니 설교를 했다. 어떤 때는 상담 온 학생과 싸우다시피 한 적도 있고, 수업이 만족스럽지 못했을 때 느끼는 '뒷골 당기는' 경험은 또 얼마였는지…. 상담(相談)이라는 말이 서로 말하기라는 것, 담(談)이라는 말이 화롯불 옆에서 평온하게 말하다는 의미를 새기는 것처럼 상담은 먼저 마음에 다가가야 한다는 기본적인 교육을 체득하는데 너무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셈이다.

상담은 계속된다.

"그래, 갑자기 자기소개서에 진로 목표를 적어라 하니 답답했겠구나?" 아이는 조금 기가 살아난다. 막상 쓰려니 막연해서 그렇지 한때는 이러이러한 꿈이 있었단다. '옳거니, 이놈이 날 살려주는구먼.' 이제는 내담자 얘기만 잘 들어주어도 거의 성공이다. 문제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다.

진로상담실 문을 두드리는 학생 중에는 진로 목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부터 표현을 못 하다 보니 있었던 자신의 꿈이 묻혀버린 아이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주로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자기표현의 기회와 자신감이 점점 줄었을 것이다. 여러 회차에 걸쳐 상담을 하면서 '자기 얘기'를 들어 주다 보면 아이들 스스로 자기 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바람직한 해결에 이르는 많은 사례가 그 반증이라 생각한다.

학생들은 어리지만 신통하게도 인정과 공감이라는 맞장구만으로 스스로 놀라운 변화를 보이기도 한다. 또한 아이들은 복원력이 탁월하여 과거 수축되었던 자신을 회복하는 속도도 빠른 것 같다. 갈망과 고민에 차서 그 돌파구를 간절히 원하면 그 변화와 복원의 과정은 더욱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우리 진로교사들이 보다 많은 학생에게 자기 얘기를 할 기회를 만들어 주고 공감과 인정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것으로 언젠가부터 '묻혔던 꿈'을 끌어내고 그 변화와 복원을 촉진할 수 있는 역할을 톡톡히 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럭저럭 상담이 끝나고 학생이 "선생님, 감사합니다. 좀 도움이 된 거 같습니다."라며 인사한다. '어라! 이놈이 나를 격려하네!' 어설픈 처음의 질문에 내가 움찔했던 것을 눈치 채고 있었던 것일까? 어쨌든 신입생의 첫 상담이 성공적이었다고 스스로 위안하며, 올 한해 상담도 자신 있게 임하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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