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愛함께 누리다] ②인성이 중심이 되는 협력수업

입력 2016-04-10 22:30:02

"선생님, 오늘 뭐 배워요?" 학생들 삶에 대한 설렘 키워준다

학생들에게 사랑, 감사, 배려와 같은 밝고 긍정적인 정서를 일깨우기 위한 인성교육을 대구의 각급 학교들은 다양한 수업방식으로 진행한다. 교과와 학년을 넘나드는 확장된 협력수업을 통해서 수업의 교훈이 학생들의 삶 속에 뿌리내리도록 유도한다. 대구시교육청 제공
학생들에게 사랑, 감사, 배려와 같은 밝고 긍정적인 정서를 일깨우기 위한 인성교육을 대구의 각급 학교들은 다양한 수업방식으로 진행한다. 교과와 학년을 넘나드는 확장된 협력수업을 통해서 수업의 교훈이 학생들의 삶 속에 뿌리내리도록 유도한다. 대구시교육청 제공
경서중학교 학생들의 협력수업 결과물 보고서.
경서중학교 학생들의 협력수업 결과물 보고서.
경서중 3학년들은 16살 자신의 생애에서 의미 있는 물건을 하나 선정하고, 그 물건에 담긴 의미를 간단한 쪽지에 써서 학교 공터에 파묻는다. 2학년은 선배가 묻어 놓은 물건을 발굴하고 쪽지를 근거로 유물 발굴 보고서를 작성하게 된다. 경서중 제공
경서중 3학년들은 16살 자신의 생애에서 의미 있는 물건을 하나 선정하고, 그 물건에 담긴 의미를 간단한 쪽지에 써서 학교 공터에 파묻는다. 2학년은 선배가 묻어 놓은 물건을 발굴하고 쪽지를 근거로 유물 발굴 보고서를 작성하게 된다. 경서중 제공

"선생님, 이거 왜 배워요?" "이거 배우면 뭐가 좋아요?"

아이들의 이런 질문 앞에 교사는 씁쓸해한다. 질문들은 공통적으로 상대에게 '배움의 효용성'만 묻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은 이 질문에 담긴 함축적 의미를 생각하고 물었을 리 없다. 우리 사회가 물질 교환의 가치를 중요시한 나머지 아이들마저 이러한 의식에 젖게 만든 것이 아닐까.

위 질문은 "선생님 제가 이것을 배우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저는 무엇을 얻게 되나요?"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교사는 해맑은 눈의 아이들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고 싶어 한다. "선생님, 오늘 뭐 배워요?" "이거 배우려면 저는 뭘 해야 할까요?"

◆대구 경서중, 인성교육 우수모델학교 지정…교사 동아리 '아름드리' 눈길

대구 달성군 옥포면에 있는 경서중학교는 전교생 8학급 139명, 전체 교원도 25명에 불과한 미니학교다.

경서중은 지난해 교육부 인성교육 우수모델학교로 지정됐다. 이 학교의 자랑은 교사 동아리 '아름드리'. 학생들을 아름드리 소나무처럼 키우고 싶다는 교사들의 소망을 담았다. 교사들은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선생님, 오늘 뭐 배워요' 하며 배움에 대한 설렘과 기대를 갖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으로 동아리를 만들었다.

'아름드리' 교사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육 철학은 '함께 성장하며 소통의 행복을 누리는 협력수업'이다. 교사가 가장 잘 알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수업 속에서 배움에 대한 기대와 배움을 통한 성장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바람이다.

교육 경력 21년 차 동아리 회장인 전미숙 교사는 "수업에 모든 답이 있다. 배움-앎-성장으로 이어지는 협력수업을 하고 싶어서 선생님들과 같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고 밝혔다.

경서중학교의 협력수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

교사들은 갓 입학한 1학년 학생들에게 '학교를 사랑하라'는 말 대신 학교를 사랑할 수 있는 수업을 기획한다. 국어, 수학, 사회, 영어, 과학, 기술 교과의 선생님들이 함께 모여 우리 학교가 학생들과 학부모의 삶 속에 얼마나 뿌리깊게 자리 잡고 있는 소중한 곳인지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수업을 설계한 것이다.

학생들에게 자신의 가족 가계도를 만들게 하고 그중에서 우리 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보게 한다. 이 작업을 통해 학생들은 우리 학교가 나의 학교인 동시에 우리 가족들의 모교임을 알게 된다.

이후 국어과 수업은 나의 가족이자 졸업한 선배를 인터뷰하고, 과학과는 학교에서 가장 변하지 않고 오래 남아 역사를 빛내는 나무들을 살펴보고 수목지도로 완성했다. 또 수학과는 과거와 현재의 생활기록부를 찾아보고, 학생들의 키나 몸무게의 변화 등 통계를 통해 과거의 학생들과 현재의 우리가 어떠한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를 스스로 탐구해 보게 했다. 그 후 영어과와 기술 교과의 도움을 받아 각 반별로 지금까지 탐구한 내용들을 담아 '경서, 우리 학교!'라는 미니북을 발간하는 것으로 협력수업의 대단원을 마무리했다.

◆교과'학년 넘나드는 다양한 협력수업 방식 확장

또 다른 방식의 협력수업 사례도 있다. 학교는 2학년과 3학년 선후배끼리 '사이 좋게 지내라'는 말 대신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수업을 기획하고 실천한다.

3학년에게는 졸업을 앞둔 16살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의미 있는 물건을 하나 정하도록 한다. 학생은 이 물건에 담긴 자신의 의미를 종이에 써서 물건과 함께 학교 공터에 묻고, 그 위치를 지도로 그린다. 그리고 수업에서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이 담긴 글쓰기를 한다.

일주일 뒤 2학년에게는 3학년 선배가 그린 지도 한 장이 배달된다. 2학년은 이 지도를 들고 학교 공터로 나가 선배가 묻은 소중한 물건을 발굴해 보게 했다. 그리고 선배에게 이 물건이 어떠한 의미인지 써 놓은 글을 읽어보게 한다. 이 경험을 통해 선배에게 소중한 물건의 의미를 분석하고 유추해 보는 유물 발굴 보고서를 쓰게 했다. 다시 일주일 후, 2학년은 3학년에게 유물 발굴 보고서를 전달하고, 3학년은 2학년에게 소중한 물건의 의미를 쓴 삶이 담긴 이야기를 전달하게 했다.

이를 통해 두 학생은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닌 2학년과 3학년에서 공통의 경험과 이야기를 가진 선후배로 거듭날 수 있었다. 아마도 졸업 후 동창회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더라도 두 학생은 이 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게 될 것이다.

◆인성교육은 모죽처럼…기다려주는 인내심 필요

사실 경서중의 교과와 학년을 넘나드는 협력수업은 기획도 어렵거니와 수업을 진행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교과별로 수업 진도 맞추기도 힘들고, 또 시험을 통한 평가는 어떻게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이 부분에 대한 경서중 교사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국어과 나혜정 교사는 "해당 학년의 학생이 수업을 통해 도달해야 하는 정도를 성취기준이라고 한다. 수업 기획도 성취 기준을 고려해서 짜기 때문에 진도나 시험에 문제가 없다"면서 "예를 들어 중학교 2학년 성취기준에 보고서 쓰기가 있는데, 이걸 우리 학교에서는 유물 발굴 보고서 쓰기로 수업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고서 쓰기의 과정과 절차를 다 배웠기 때문에 시험 문제를 푸는 데에도 무리가 없다"고 했다.

교사들이 협력수업을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이 무엇일까. 과학과 김민희 교사는 "학교폭력예방 수업, 안전교육 수업, 인성교육 수업처럼 무엇무엇을 위한 수업은 단시간에 효과를 내지만, 또 금세 잊혀진다. 왜냐하면 목적이 앞서서 아이들의 삶과 연계되지 않기 때문이다. 수업은 수업 자체로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삶 속에서 수업의 주제를 가져오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학생에 대한 인성교육을 '모죽'(毛竹)에 비유했다. 모죽은 다른 대나무와 달리 높이가 30m까지 자라는데, 이 모죽은 심은 지 5년이 될 때까지는 거의 성장에 변화가 없다가 5년 뒤부터는 하루에 70㎝씩 자란다.

영어과 전미숙 교사는 "모죽처럼 크게 자라기 위해서는 땅속 깊이 뿌리내릴 수 있는 5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인성교육도 마찬가지다. 물론 학교와 가정, 지역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가시적인 성과에 조급해하지 말고 우리 아이들과 학교와 선생님, 수업을 좀 더 믿고 기다려 주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높이 자라기 위해 오랜 시간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깊숙하게 뿌리내려야 하는 것처럼, 학생들의 삶 속에서 함께 생각해 봐야 할 수업 주제를 가져오고, 이를 통해 교사와 학생이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수업이야말로 학생들을 더욱 크게 자라게 하는 원동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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