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고치 이야기

입력 2016-04-10 19:12:00

벽초 홍명희가 쓴 소설 은 연산군 시대부터 명종 시대까지의 정사와 야사를 집대성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임꺽정이 태어나기 전인 연산군 시절의 이야기는 최근에도 영화 '간신'이나 드라마 '인수대비'로 만들어졌으며, 중종과 명종 시대의 궁중 암투에 관한 이야기들은 드라마 '여인천하'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상당히 익숙한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이 소설의 '양반편'에는 수렴청정을 하던 문정왕후의 오라비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윤원형의 악행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권세를 보여주는 이야기의 하나로 자린고비의 아들 고치(高致)가 나오는데, 그 이야기가 이렇다.

고치의 아버지 고비는 (지난주 이야기한) 자린고비로 불리면서도 근검절약을 해서 충주 최고 부자가 되었는데, 그 아들 고치는 아버지와는 딴판으로 달라서 잘 먹고, 잘 입고, 기생집 출입까지 하였다. 재물은 유한한데, 씀씀이는 한없이 커지기만 하니 재산이 줄고 줄어서 나중에는 거지가 다 됐다는 소문까지 돌게 된다. 고비가 모은 재산이 워낙 많아서 먹고살 정도는 되었지만, 재물이 빠진 뒤에는 사람들이 업신여기고 함부로 고비에 대해 조롱하는 말을 했다. 그런데다 근방에 김개라는 사람이 재산이 늘어 충주 최고 부자 행세를 하는 것도 보기 싫어서 고치는 벼슬을 구한다는 핑계로 서울에 가서 내려오지 않았다. 충주 부자 김개는 부자로 만족할 수 없었던지 자식에게 말단 벼슬이라도 주려고 윤원형에게 누에고치 200석을 뇌물로 바치고 청탁을 한다. 이때 이조판서인 윤원형은 능을 관리하는 관리인 능참봉 빈자리에 새로 임명을 해야 했다. 좌랑이 붓을 들고 윤원형이 부르는 이름을 받아 적는데, 윤원형은 전날 밤일이 과했던 탓에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좌랑이 "양주 현릉을 누구로 내시렵니까?" 하자, 윤원형은 고치를 뇌물로 받은 것이 생각나서 "응, 고치."라고 답한다. 어디 사는 '고치'냐고 물으니 여전히 졸면서 "응, 유신현(충주)."이라고 답한다. 그래서 고치는 영문도 모르고 관리가 되었는데, 나중에 고치가 인사왔을 때 윤원형은 자기가 실수한 것을 알았지만 뇌물을 받은 것을 발설할 수도 없어서 임명한 것을 물리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고치의 입장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부자인 아버지도 얻지 못했던 관직을 얻었으니 아주 재미있고 행복한 결말을 가진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비극 그 자체이다. 실력은 부족한데 힘있는 사람을 통해 부정한 방법으로 관리가 된 사람은 본전을 찾는 일에만 몰두하고,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오로지 자신을 등용한 사람에게만 충성을 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고치 이야기는 그저 운 좋게 성공한 사람의 익살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라 조선사회가 왜 망해갔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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