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대 동산병원은 점점 평온을 되찾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폐결핵 확진 판정을 받은 지 20일 만이다. 영'유아 접촉자 중 검사 대상자 218명 가운데 96%인 210명이 흉부 X-선 검사를 받았고, 모두 정상 판정을 받았다. 아직 검사를 받지 않은 8명은 연락이 되지 않거나 해외 거주, 타 병원에서 검사 예정 등으로 사실상 결핵이 발병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 상황이 마무리됐다고 말하긴 이르다. 잠복 결핵 여부를 검사하는 투베르쿨린 피부 반응 검사(TST)에서는 영'유아 21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들은 잠복 결핵일 수도 있고, BCG 접종에 따른 양성 반응일 수도 있다. 의료진은 양성 판정을 받은 영'유아 20명과 음성 반응이 나온 70명에게 예방적 차원에서 결핵약을 처방했다.
그동안 의료진과 직원들이 겪은 고충은 상당했다.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접촉자와 보호자들을 일일이 안내하고 결핵과 관련된 각종 문의에 응대했다. 이들을 더욱 괴롭힌 건 입원한 일반 환자들이었다. 일부 환자들은 해당 전공의와 접촉한 적이 없는데도 병원 의료진이 결핵에 걸렸다는 이유로 막무가내로 검사와 교통비를 요구했다. 고성을 지르며 항의한 이들 중에는 끝내 5만~10만원의 교통비를 받아간 경우도 있었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생후 100일도 안 된 아이에게 6개월 이상 독한 결핵약을 먹여야 한다는 불안감이 큰 데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희는 의학적 지식이 없는, 그저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접근하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병원의 잘못으로 마음을 졸이게 된 사람들에게 질병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해줘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병원의 구체적인 계획에 대한 설명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병원은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잠복 결핵 양성 판정을 받은 생후 80일 된 아이 아버지의 얘기다.
부모들의 불안감의 뿌리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불투명한 정보 공개로 불필요한 오해를 샀기 때문이다. 전공의 폐결핵 확진 판정 이후 안팎에서는 공개 설명회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검사 대상과 대응 과정 및 향후 계획, 결핵과 잠복 결핵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설명하는 자리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병원 측은 "환자마다 감염 가능성이나 치료 방법 등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설명회 등을 통해 일괄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공개 설명회를 거부했다. 또 잠복 결핵 검사에서 몇 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는지도 공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온갖 소문이 번졌고, 불안감이 증폭됐다.
음성 판정을 받은 영'유아에게 예방적 차원에서 결핵약을 처방한 병원의 대처가 잘못됐다고 보긴 힘들다. 약물 복용에 따른 부작용이 있더라도 결핵에 걸리지 않는 게 더욱 이익이기 때문이다. 특히 영'유아의 경우 결핵에 감염되면 결핵성 뇌막염이나 중증 결핵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간 손상은 호전될 수 있지만 결핵이 지나가면 폐에 고스란히 흔적이 남는다.
필요했던 건 말 못하는 아기에게 6개월 이상 약물을 먹여야 하는 부모들을 위한 배려다. 현재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한 뒤 잠복 결핵의 위험성과 결핵약 복용의 이점, 예상되는 부작용 등에 대해 설명을 했다면 불안감은 훨씬 줄었을 것이다. 의학적으로 옳다 하더라도 치료를 받는 건 결국 어린 아기이고, 아기를 돌봐야 하는 건 부모이기 때문이다. 항의에 시달려야 했던 직원들의 고충도 덜었을 것이다.
이번 결핵 사태는 추가 감염 없이 지나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한 번 자리 잡은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불완전한 정보는 불안감에 불을 지핀다. 타오르는 불안감은 '공포'라는 연기를 피운다. 피어난 연기는 시야를 가리고 판단력을 흐리며 불신을 낳는다. 불신은 타협과 소통, 문제 해결을 막는 가장 높은 장애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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