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 쓰레기 이웃집에 버리기

입력 2016-04-05 21:04:17

파릇파릇한 채소밭을 보면서 자연의 싱그러움을 생각하겠지만, 농사는 그 자체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적대행위다. 단위면적당 농토만큼 오염이 심한 땅도 드물다. 농약과 비료 때문이다. 그렇다고 농사를 비판할 수는 없다.

농사를 도입하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문명을 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아가 20세기 후반 '녹색혁명', 즉 품종 개량과 각종 농약, 비료의 개발이 없었다면 오늘과 같은 번영을 누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녹색혁명' 덕분에 단위면적당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었고, 인류는 단백질 부족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960년대 이후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번영의 바탕에는 '녹색혁명'이 있었다. 아프리카 지역이 빈곤에 허덕이는 이유 중 하나는 아직 그곳에 '녹색혁명'의 물결이 닿지 못했기 때문이다.

4월, 텃밭을 가꾸는 도시 농부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텃밭 농부와 전업 농부는 농사짓는 목표가 다르다. 전업 농부는 이윤이 목표고, 도시 농부는 가족과 이웃이 먹을 야채 수확과 여가 생활이 목표다. 까닭에 전업 농부들은 농약과 화학비료, 기계를 투입하는 반면, 텃밭 농부들은 호미와 퇴비, 미생물 발효액 정도로 밭을 가꾼다. 텃밭 농부가 늘어날수록 환경오염은 줄어든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래에는 '멀칭용 검정 비닐'을 사용하는 텃밭 농부들을 흔히 본다. 채소가 서 있는 지표면만 남기고 나머지 지표면을 검정 비닐로 덮음으로써 잡초를 막고, 수분 증발과 토양에서 옮아오는 병균을 막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심에서 텃밭을 발견하고 싱그러움을 느끼던 사람들도 밭에 덮인 검정 비닐을 보는 순간 인상이 구겨진다. 찢어진 비닐이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기라도 하면 꼴불견이다.

도시인들이 자기 마을에 텃밭을 조성하는 데 반대하는 큰 이유가 검정 비닐이다. 파릇파릇해야 할 들판이 검게 덮여 있으니 보기 싫은 것이다. 수성구청은 최근 도심텃밭 확대를 추진했다가 폐비닐에 대한 민원 때문에 포기했다. 텃밭 농부들은 텃밭이 건강과 정서에 큰 도움이 된다며, 타인에게도 권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데 검정 비닐을 사용하고, 방치하는 바람에 시민들의 반감을 키우고 만다.

대부분의 텃밭 농부들은 화학비료나 농약을 꺼린다. 환경을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정 비닐에 대해서는 오염물질이라는 생각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외려 '비닐 멀칭' 덕분에 살균제나 제초제를 안 쓸 수 있으니 친환경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비닐을 생산하고 폐기하는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환경오염이 동반된다. 다만 그 비닐이 내 텃밭 채소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 뿐이다. 말하자면 검정 비닐 사용은 내 텃밭이 아닌 다른 장소에 오염을 전가하는 행위인 것이다. 우리 집을 깨끗하게 하려고 이웃집에 쓰레기를 버리는 격이랄까.

텃밭을 가꾸는 목적이 유기농 채소를 얻는 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풀을 뽑는 일, 땀 흘리며 물을 퍼다 나르는 일, 병균을 막기 위해 직접 발효시킨 미생물 희석액을 자주 뿌려주는 일 역시 텃밭 가꾸기의 즐거움이자 목표다. 비닐멀칭은 텃밭 가꾸기의 즐거움 중 하나를 빼앗는다.

'푸드 마일리지'는 음식물이 산지에서 식탁까지 이동하는 거리에 운반된 음식물 무게를 곱한 것으로 음식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요소다. 멀리, 많은 양을 이동시킬수록 환경에 더 해롭다. 집 근처에서 텃밭을 가꾸면 '푸드 마일리지'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니 '이동 거리 줄이기' 이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이처럼 친환경적인 도시 텃밭을 확대하자면 사회 구성원들의 지지가 필요하다. 그러자면 우선 텃밭이 보기에 좋아야 한다. 도시 농부들이 비닐멀칭을 삼가야 하는 이유다.

2014년 현재 세계적으로는 약 8억 명, 우리나라는 약 200만 명이 텃밭을 가꾸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농약과 비닐을 쓰지 않고 텃밭을 가꾸는 일, 세상을 가꾸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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