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 기계에 의한 전체주의 도래…인문학적 사유로 극복해야"
지난 3월의 '위대한 1주일'이 아직도 뇌리에 선연하다.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I) 알파고의 바둑 대결. 인공지능에 충격을 받고 사람에 경탄했다. 인공지능이 바꿔놓을 미래를 경험한 한 주 였다. 두려움이 낙관을 압도했지만, 덕분에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깨달았다. 얼마를 줘도 아깝지 않을 '미래에 대한 비전'을 한국 사회는 얻었다.
세기의 대국이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따로 있다.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이다.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인공지능의 발전은 인간의 위기인가 기회인가, 포스트 휴먼의 정의는 무엇인가 등 엄청난 질문의 씨앗을 알파고는 뿌리고 갔다. 인문학자인 경북대 김석수 교수(철학과)를 만나 이번 인류와 인공지능의 바둑 대결을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들여다봤다.
◆기억 의존도의 교육에서 벗어난 인문학적 사유가 절실
김 교수는 이번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이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로 교육 시스템의 변화를 꼽았다.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너무 기억 의존도의 교육을 해온 점입니다. 이번에 알파고를 보면서 앞으로 기억에 관계된 문제는 모두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지요."
근대사회에 인간이 노동을 하면서 육체노동의 고단함을 줄이기 위해 기계를 개발했는데, 오히려 이 기계가 인간들의 일자리를 빼앗으면서 혁명이 일어난 것과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앞으로는 인간의 기억노동을 해방하기 위해 급속도로 기계의 기억 능력이 향상될 것이고, 다음에는 정신노동을 대신하는 기계에 대한 반감이 커질 것"이라며, "청년실업 증가도 상당수 전문직이 인공지능 로봇으로 대체되기 때문에 더욱 심각해진다. 육체노동은 물론 정신노동까지 기계와 로봇이 맡을 경우 인간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래서 김 교수는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기술 습득보다 인문적 사유가 훨씬 필요하다는 화두를 알파고가 던져주고 갔다고 강조했다. "인간이라는 종(種)이 자연, 기계와 조화를 이루며 사는 체제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모색하는 것이 인문적 사유다. 인공지능을 갖춘 기계는 인간의 일자리를 상당 부분 대체할 것이다. 인간이 기계에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뛰어난 사고력과 창의성을 지녀야 한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세상의 변화에 맞게 새롭게 창출해야 한다. 기존 지식을 반복 학습하는 방식이 주류인 우리 교육 체계를 혁신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인공지능 발달은 위기일까, 기회일까?
인공지능의 발달은 인류에게 위기 혹은 기회의 양면성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위기 쪽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판단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영역인 창조적 작업에까지 뛰어드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 교회권력이 자본과 손잡고 중세를 뒤흔들었던 것처럼, 앞으로 인공지능 개발자들은 자본가들과 손을 잡을 것이다. 이들 기술지배세력이 하늘을 찌를 것이라는 말이다. 많은 학자들이 절대 기계는 인간을 못 이긴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김 교수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이 인공지능이라는 '절대신'을 만들 것이고, 결국엔 인공지능에 종속되는 시대가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칸트는 '인간의 자유와 인간 존엄성을 위해 지식의 한계를 꺼야 한다'고 말했다. 근대과학이 발달하면서 신의 세계가 무너지는 시대에 살았던 칸트는 과학의 한계를 설정하고 인간 존엄성을 지키려고 순수비판을 쓰게 된 것이다. 인간의 미래는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자본과 권력을 쥐려는 집단에서 인간이 창조한 물질을 도구로 사용하고자 하는 일들, 인간의 결실물이 인간을 지배하는 상황은 역사적으로 반복돼 왔다."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기술 전체주의 도래
일부에선 인간의 도덕적 가치, 미적 가치를 인공지능에 심는 등 '착한 로봇'을 만들면 미래사회가 아름다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견해도 나온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인간 진화 과정에서 신의 영역까지 도전했던 것처럼 기계도 어디까지 진화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인간의 도덕성을 심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다"면서 "하지만 자본가들이 그런 제어 프로그램을 넣은 착한 로봇에 대한 투자를 할까, 생산이나 이윤 창출에 유리한 로봇에 더 투자를 할까? 바로 답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인공지능이 바꿀 미래사회에 대해 비관적인 입장을 취했다.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사람과 그에게 돈을 대는 자본가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것이다. "전체주의가 도래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 유한성을 드러낼 때 나타납니다. 종교가 불멸의 약속을 해서 인간이 종교를 통해 겸손해졌을까요? 아닙니다. 그냥 거대 권력이 만들어졌지요. 지금도 똑같습니다. 영생을 위해 기술이 개발되는 등 종교가 기술로 옮겨진 것일 뿐이지요." 그는 "앞으로 기계, 기술이 권력을 가지고 자본을 쥐게 될 것이다. 미셸 푸코가 말했듯 권력이 교회에서 기관으로 이어진 것일 뿐"이라고도 했다.
김 교수는 알파고의 탄생이 두렵다고 했다. "역사를 보면 고대가 멸망할 때 많은 학자들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지만, 결국 자본의 뜻대로 진화하다 멸망했어요. 인간이 무엇을 완벽히 통제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의심이 됩니다. 인간이 만든 종교도 인간을 통제하지 못해요.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에서 한나 아렌트는 기술의 위기에 대해 현대사회에서 전체주의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기술이라는 옷으로 갈아입었다고 했어요."
◆알파고가 던져준 인문학의 중요성
이번 대국이 낳은 가장 중요한 역설은, 우리 사회에 인문학에 대한 소중함을 던져줬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예에서 보듯 엔지니어도 정보기술의 미래를 열기 위해선 인문적 사유를 해야 한다. 실제로 애플, IBM 등의 기업엔 엔지니어와 인문학도 출신이 협업하는 전통이 있다. 이번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을 주최한 구글도 얼마 전 엔지니어 비율이 높다는 지적을 받자 인문학도 채용 비율을 크게 늘리기도 했다.
김 교수는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이번 대국을 보면서 인간 삶의 존엄함에 대한 고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포스트 휴먼,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이때 문제는 없을 것인가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김 교수는 인간의 소중함을 길러주는 인문학에 대한 교육 당국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 정책이나 교육기관이 삶 전반에서 인간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인문학적 가치를 인정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인문학은 창조력과 공감력이 중요하지요. 인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창의력과 공감력을 길러야 합니다. 대다수 공학도들은 사람 간의 소통이 부족하지요. 사람을 관리하는 것은 기계 관리와 달라, 공학자들이 기업이나 기관에서 관리층으로 승진할 때쯤 되면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김 교수는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인문학적 상상력과 소외받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력을 키우는 교육을 해야 한다"면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후에 기술을 가르친다면, 인공지능의 거대한 권력이 세상을 뒤흔드는 미래는 마주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석수 교수는?
1960년 경남 창녕에서 출생. 서강대를 졸업하고,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2001년 경북대 철학과 교수로 임용, 현재까지 15년째 재직 중이다. 현재 대구경북인문학협동조합 총괄이사, 경북대 상상과 치유의 인문인재 양성 사업단장, 한국철학상담학회 부회장 등을 맡아 인문학을 지역 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사회와 철학연구회 회장과 동서사상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칸트와 현대사회철학' '한국현대실천철학' '요청과 지양'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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