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화재로 희망 잃은 김도연 할머니

입력 2016-03-29 22:30:02

"팔십 세월, 내 몸 뉘일 곳 잿더미로 변한 집 뿐이네"

최근 화재로 살던 집이 불에 타버린 김도연(가명
최근 화재로 살던 집이 불에 타버린 김도연(가명'81) 할머니는 갈수록 힘들어지는 삶에 눈물을 지을 때가 많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대구의 한 허름한 슬레이트집에서 8년째 홀로 지내는 김도연(가명'81) 할머니. 할머니는 지난 세월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아 아파 쉽게 잠을 못 이룬다. 늘 함께 다니며 사이가 좋았던 자녀는 돈 때문에 사이가 틀어졌다. 형편이 어려워지자 사소한 다툼은 항상 큰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수년 전 자녀와 사이가 멀어진 할머니는 맏아들을 제외하고는 집으로 찾아오는 이가 없다. "팔십 세월 끝에 기댈 곳은 이 허름한 집밖에 없어요."

◆뿔뿔이 흩어진 가족

대구가 고향인 할머니는 네 남매를 키우며 남편과 시장에서 천과 비단을 팔았다.

부부는 수십 년간 명절에만 쉬며 장사를 할 정도로 성실했다. 덕분에 빠듯한 형편에서도 네 자녀 모두 학교를 보내고 결혼까지 시킬 수 있었다. 20여 년 전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할머니는 일을 놓지 않았다.

그러다 맏아들이 사업을 시작했고, 할머니는 재산을 조금씩 보탰다.

"장남은 오랫동안 고시 공부를 하다가 매번 아깝게 낙방하곤 했어요. 아들이 원했던 꿈을 이루지 못한 게 저도 아들도 늘 한이었어요. 제가 무리해서라도 아들을 큰 공장을 운영하는 사장님으로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그 길로 할머니는 평생 모은 돈은 물론 가게까지 팔아 사업 자금으로 줬다. 할머니의 설득으로 다른 아들, 딸들도 맏이에게 십시일반 보탰다.

이것이 온 가족을 멀어지게 한 불행의 시작이었다.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외환 위기가 닥쳤고 장남에게 투자한 돈은 고스란히 빚이 됐다. 할머니는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릴 상황에 부닥쳤다. 다른 자녀도 모두 수천~수억원에 달하는 빚을 졌고, 어머니와 장남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맏이의 사업 실패로 저는 물론 다른 자녀도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제 설득으로 형의 사업에 돈을 보탰던 남매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싸웠어요. 지금은 남과 다름없는 사이가 돼버렸어요."

◆화마가 앗아간 희망

아들의 부도로 할머니는 담보로 내놓았던 집마저 잃었다. 그러던 중 같은 교회에 다니던 한 성도가 할머니의 형편을 딱하게 여겼다. 적은 월세만 내고 자신이 사는 집으로 들어오도록 했다.

거리로 내몰릴 처지는 면했지만, 여전히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바깥 공기를 피할 수 있는 것은 문 하나뿐이었다. 여름에는 더위에 허덕였고 겨울에는 매서운 추위에 잠을 못 이뤘다. 거기에 화장실, 부엌은 공동으로 써야 해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다 얼마 전 목숨을 잃을 뻔한 사고를 겪었다.

추위를 피하러 방 안에 버너를 가져와 밥을 짓던 중 일어난 사고였다. 불은 냄비에서 벽으로 순식간에 지붕으로 번졌고 온 집을 삼켰다. 마당 정리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일어난 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살림살이가 잿더미로 변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사람은 다치지 않았지만 이불, 텔레비전 등 그나마 갖고 있던 살림마저 불로 다 잃었어요. 좁고 낡은 집이었지만 여기에서도 살 수 없게 돼 너무 절망스러웠어요."

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주인이 사는 집에 딸린 방으로 옮겼다. 불에 탄 집은 아직도 정리하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

할머니는 앞으로 살아갈 일을 생각하면 막막하다. 화재로 타버린 집을 수리하는 데 갚아야 할 돈이 많기 때문이다. 화재로 할머니가 살던 집뿐만 아니라 이웃집 담장, 지붕까지 불에 타버렸다.

기초생활수급자인 할머니가 한 달에 받는 지원금은 40만원 정도. 매달 나가는 월세, 생활비를 대는 것도 빠듯한 상황에, 집 수리비를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늘 마음이 무겁다.

"늘 희망은 잃지 않으려 했는데 삶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자식들도 돌아선 상황에 도움을 청할 곳은 아무 데도 없어요."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주)매일신문사 입니다. 이웃사랑 기부금 영수증 관련 문의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구지부(053-756-9799)에서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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