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 이한구를 위한 변론

입력 2016-03-29 20:31:53

송중기'송혜교의 '태양의 후예'도 유아인의 '육룡이 나르샤'도 경쟁 상대가 아니었다. 지난 50일 동안 새누리당이 만들어낸 공천 드라마는 공전(空前)의 히트작이었다. 관객들의 예상을 항상 뛰어넘었기에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한 종편 출연자는 매일매일 말도 안 되는 '상상 그 이상'의 장면이 집권여당 한복판에서 현실로 나타났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새누리당을 역대 최악의 '막장', '끝판' 공천 드라마 촬영장으로 만든 이는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이다. 그의 뒤에는 친박계 실세도 있고 청와대도 있다는 게 정치권의 정설이다. 그는 주연배우가 아니었다. 주연 보호용 대역이었다. 친박이 주도했다는 4년 전 19대 공천 때는 탈락 위기에 빠질 정도로 친박 핵심에는 끼어 본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가 새누리당을 '순도 높은' 친박당으로 바꾸는 대업(大業)에 주인공을 맡을 수는 없었다.

이 위원장은 기자들 사이에서 독불장군이고, 하고 싶은 말은 꼭 하고, 그것도 모진 말만 골라서 하는 '기피 인물'로 유명하다. 누군가 이 위원장의 그런 점을 높이 산 게 분명했다. 그가 비박계 찍어내기 활극판의 대역 배우로 제격이라는 이유 아니었을까. 새누리당 내에서 그 말고 누가 이런 '험한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그의 맹활약 덕분에 많은 이들이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 비박계는 이를 차도살인(借刀殺人)이라며 반발했지만 결과를 뒤집지는 못했다.

그를 조폭 '행동대장'에 비유하는 이도 있었다. 대통령 눈 밖에 난 자, 평소 미운털이 박힌 자, 친박 인사들의 권력 가도에 걸림돌이 될 만한 자, 그리고 평소에 밉보인 자, 괜히 미운 자 등을 국회의사당에서 찍어내기 위한 제거 작전을 '청부' 받은 행동대장이라고 했다. 그들이 찍혀나간 빈자리에는 칼자루를 쥔 이들과 더 친하고, 더 말 잘 들을 것 같은 새로운 구역 책임자를 내려 보냈다. 조폭들이 구역 책임자를 내려 보내는 것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이 위원장은 이 '부여받은' 역할을 충실하게 해냈다.

전과(戰果)는 혁혁했다. 김무성 당 대표도 이 위원장 앞에서는 면박당하기 일쑤였고 결국 '바보' 취급을 당했다. 쟁쟁한 비박계 제거 작전도 단칼에 쉽게 해냈다. 윤상현 급 막말을 입에 달고 있어 사람들을 열 받게 했지만 그의 폭풍 질주를 막을 자는 없었다. 누군가 장막 뒤에서 박수치며 그를 응원했을 게 분명하다. "이한구 잘 한다"라고.

공천은 끝이 났다. 그런데 이제 와서 친박계 일각에서 이 위원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고 한다. 친박당 만들기가 결과적으로 실패한 게 이 위원장 때문이라는 걸까? 대통령이 콕 찍었다는 유승민 의원 문제를 질질 끌다 결국 망쳐버렸기 때문일까?

말은 똑바로 하자. 어찌 그게 이 위원장의 탓인가? 무리한 작전에 부실한 전력, 결정적으로는 민심의 뒷받침이 없었기 때문이다. 맹자가 말한 천시(天時)와 지리(地利), 인화(人和)가 모두 친박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지 이한구 위원장 개인 탓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당판이라고 냉혹한 세상사 이치와 다를 게 없다. 대역은 대역일 뿐 주역이 될 수 없고, 행동대장은 작업이 끝나면 용도가 폐기되는 '소모품'일 뿐이다. 언제든 대역 배우나 행동대장은 넘쳐난다. 충실하게 지령을 따른 대역 배우, 행동대장도 쓰임이 다 끝나면 사라지는 법이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 괜히 고사성어가 됐겠나? 흔히 있는 꼬리 자르기다. 자칫 불어올지도 모를 여론의 역풍이 '몸통'에 까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바람막이다.

물론 이성, 상식, 논리보다 우격다짐과 억지 그리고 무리수가 난무한 난장판이었으니 뭐랄 것도 없다. 이한구 위원장도 어차피 이런 판에서 한바탕 잘 놀았으니 무슨 험한 말을 듣고 기대와 다른 대접을 받는다고 그리 서운해 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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