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취업 경력단절 여성 80% "전공 포기"

입력 2016-03-28 19:10:27

대구의 한 중소 전자제품 제조사에서 근무하다 출산 및 육아를 이유로 퇴직했던 이수향(가명'39) 씨는 지난해 대구시 여성새로일하기센터(이하 새일센터)를 통해 9년 만에 재취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씨는 자신의 전공을 포기하고 화장품회사 영업사원의 길을 택해야 했다.

이 씨는 "5곳이 넘는 기업에 지원해 봤으나 수년 새 기술 트렌드가 변했다는 이유로 입사를 허락지 않았다. 돈벌이도 중요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한 직장을 찾고 싶었지만 여건이 허락치 않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새 적성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대구의 경력단절 여성 대부분이 자신의 전공'경력을 포기하고서 취업하기 쉬운 곳을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경우 재취업자의 소득 수준이 전 직장보다 낮아질 확률이 높은 만큼, 전문가들은 재취업자의 전직을 되살려 줄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 새일센터를 통해 재취업에 성공한 경력단절 여성은 4천244명으로 나타났다. 집계를 시작한 2009년 1천525명에서 꾸준히 증가해 첫해 대비 2.8배 늘었고, 정규직 취업자도 전체의 79.3%인 3천367명에 달했다.

하지만 과거 경력을 살려 재취업한 구직자는 5명 중 1명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추산됐다. 대구시 관계자는 "구직자 관리 시스템의 한계로 인해 옛 직업과 새 직업을 정확히 비교 집계하기는 어렵지만 자체 파악한 바로는 구직자 약 80%가 옛 직업을 포기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실제 재취업 직종을 보면 사무'회계'관리직이 774명(17.5%)으로 가장 많았고, 보건의료(716명, 16.2%), 이'미용'조리사(541명, 12.2%), 경비'청소'가사도우미(418명, 9.5%) 순으로 높았다. 반면 교육'연구(168명, 3.7%)와 건설'기계'화학(160명, 3.6%) 전기'전자(98명, 2.2%) 직종의 재취업률은 낮은 경향을 보였다.

대구시는 자격증 보유자를 우대하는 회계직과 보건의료 직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재취업자가 직종을 바꿔 취업했다고 설명했다. 경력을 살리고자 했으나 취업에 실패했거나, 아이를 키우면서도 근무하기 수월한 곳을 찾아 직종을 바꾸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여성 직장인의 직업적 성취를 낮출 뿐 아니라 일자리의 질적 저하, 지역의 경제 기반 약화까지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성학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고졸 이상 고학력 여성들이 출산 이후에는 저임금 직종에 종사하는 경향이 큰 탓에 남성에 비해 낮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갖는 현상이 고착화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구시 여성정책관실 관계자는 "전문성을 요하는 많은 기업이 경력단절여성의 고용을 꺼리다 보니 구직자 입맛에 맞는 재취업 지원이 쉽지 않다. 정부에 '구직자 경력 관리 시스템' 도입을 제안하고 더 많은 기업에 여성 재고용을 유도해 경력을 살린 재취업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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