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 스승과 제자 '유쾌한 콜라보'

입력 2016-03-28 18:22:20

제자들 조미료 역할 '감칠맛'…강의가 더 맛있어졌네

'배우학교'

한 분야의 전문가나 셀러브리티 1인을 내세운 프로그램은 해당 출연자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시들해질 때를 즈음해 내리막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대체로 이런 프로그램의 경우 '웃음'이라는 예능의 기본요소를 우선으로 내세우는 게 아니라, 전문지식이나 정보 전달 등의 목적을 가지는 경우가 많아 재미를 담보로 할 수 없다. 해당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방송에 최적화된 감각의 소유자가 아닌 이상 장기전으로 승부를 본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상황을 보완하기 위해 '주인공'과 상반되는 이들이 투입돼 균형을 맞추기도 한다. 조화만 잘 이룬다면 전문성과 재미를 동시에 끌어내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으니 긍정적인 시도라 할 만하다. 이를테면, tvN '집밥 백선생' '배우학교', 또 JTBC '차이나는 도올'과 같은 프로그램을 유사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세 프로그램은 '스승과 제자'라는 구도로 출연자들을 구성해 눈길을 끈다.

◆'집밥 백선생', 전문 요리쇼에 아마추어 실습 과정까지 보여줘

요식업계 스타 CEO 백종원을 타이틀롤로 내세운 '집밥 백선생'은 최근 출연진을 전면 교체하고 시즌2를 시작했다. 바뀐 출연진은 백종원을 제외한 제자 전원이다. 시즌1에서 함께했던 김구라-윤상 등을 '졸업'이란 이름하에 하차시키고 김국진-이종혁-장동민-정준영 등 뉴페이스로 출연진을 꾸렸다. 이들은 시즌1에서와 마찬가지로 백종원의 지도로 요리 실습을 하게 된다.

'집밥 백선생'에서 제자들이 보여주는 역할은 제한적이다. 주로 타 예능 프로그램에서 패널들이 웃음을 끌어내며 감초 역할을 하는 반면, '집밥 백선생'의 제자들은 백종원이 만들어내는 '집밥'의 맛에 감탄하며 리액션을 보여주거나 그 맛을 따라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데 집중한다. 존재감으로 따져 어디에서도 쉽게 밀리지 않는 김구라마저도 이 프로그램에서는 뒤로 물러서 요리 실습에만 충실했다. 시즌1 초반에만 해도 백종원과 은근히 기 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재미를 끌어내려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말 잘 듣는 학생'으로 변했다. 이 프로그램이 보여주고자 하는 게 결국은 백종원의 요리 실력과 실생활에 활용 가능한 레시피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들 개인의 인지도와 관계없이 이 프로그램에서는 백종원을 부각시켜 주는 조연으로 활약했다. 물론, 빼놓고는 설명이 불가능한 주연급 조연들이다.

◆'배우학교' '차이나는 도올' 예능과 교양, 예능과 다큐 결합해 시너지

'배우학교'에서는 연기파 배우 박신양이 스승으로 나서고 장수원-이진호-유병재 등 연기력이 썩 좋지 않은 연예인들이 제자로 나와 연기수업을 받는다. 이 프로그램은 현직배우 박신양이 연예인들의 연기 지도를 해준다는 설정만으로 관심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연기에 재능이 없어 보이는 연예인이 제자로 나섰다는 점에서 이들의 성장 과정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냈고, 이 제자 중에 포함된 베테랑 연기자 이원종의 존재 역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박신양의 혹독한 지도 방식, 그리고 이에 당황하면서도 어쨌든 따라가 보려 노력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방송 초반 화제가 됐다.

'차이나는 도올'은 학자 도올 김용옥을 내세운 강연쇼다. 흔히 강연쇼가 강사 1인의 강연 자체에 집중하며 관객의 리액션 정도를 보여주는 데 그치는 게 일반적인데, '차이나는 도올'의 경우 제자들을 객석에 두고 함께 프로그램을 끌어나가는 방식을 택해 눈길을 끈다. 제자들은 가수 호란, JTBC 아나운서 장성규, 개그맨 박수홍, 개그우먼 신보라 등 연예인 또는 방송인들과 매회 일반인 청강생 1명을 더해 10명으로 구성한다. 출연진 구성을 보면 알 수 있듯 이 프로그램은 단순 강연쇼의 범주에서 벗어나 예능과의 결합을 꾀한다.

분명 도올 김용옥의 지식과 견해를 통해 중국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하는 기획 의도를 가지고 있는데 다수의 제자들이 합류해 스승과 같은 공간에서 공부함으로써 프로그램의 분위기는 한층 경쾌해진다. 김용옥의 가르침에 반응하고 질문을 던지거나, 때로 적당한 시기를 틈타 웃음 욕심까지 내는 제자들로 인해 시청자들은 좀 더 쉽게 강연을 이해하고 재미까지 얻어가게 된다. 예능의 장점을 접목한 신개념 강연쇼로 호응을 얻고 있다.

◆'스승'의 전문성+'제자'들이 보여주는 재미=시너지 효과

앞서 언급한 프로그램들은 백종원, 박신양, 김용옥 등 전문가 1인을 내세우고 그와 함께하는 출연자들로 '스승+제자'의 구성을 가지고 있다. 요리쇼와 강연쇼 등 장르는 다르지만 결국 전문가 1인과 그의 전문성에 의존한다는 건 같다.

사실 스승과 제자라는 구성이 기획 자체만 놓고 봤을 때 그다지 참신하진 않다. 백종원에게 요리를 배우겠다고 뛰어든 연예인들이 열과 성을 다해 수업에 참여하거나 도올 선생의 수업을 듣겠다고 수강생을 자처한 이들이 실제로 머리 싸매고 공부할 리는 없다. 박신양의 치열한 연기지도가 '배우학교'의 초반부 시청률을 견인하며 화제가 됐는데, 그렇다고 해서 단기 수업을 통해 제자들이 일취월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쉽지 않다. 오히려 제자들이 '열정'을 '연기'하고 있다는 모습이 부각되기라도 한다면 자칫 '진실성 논란'을 부추길 수 있으니 오히려 조심스럽다.

그러니 결국 제자들의 존재는 스승의 전문성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좀 더 길게 지속시키기 위한 일종의 '장치'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제자들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과정에서 뛰어난 성장 속도를 보여준다면 좋겠지만 이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으니 제작진도 포기하고 시작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시청자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프로그램의 주인공인 스승의 활약을 보기 위해 채널을 고정했으니 어차피 제자들의 학습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다만, 기대해 볼 만한 건 지루하게 이어지는 스승의 전문적인 강의 속에서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는 '틈'이다. 제자들이 배우려고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유발되는 웃음일 수도 있고, 그들이 자아내는 감동이 될 수도 있다. 또 단순 리액션을 통해 스승의 강의를 좀 더 활기차게 만들어주는 것 역시 제자들에게 기대해 볼 만한 것들이다.

실제로 제자들과 함께 하면서 스승의 활약상도 한층 더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이미 알려준 레시피가 있는데도 제대로 맛을 내지 못하는 제자들로 인해 백종원의 능력은 부각된다. 제자들의 실수를 잡아내고 좀 더 정확하게 자신의 방식을 알려주는 과정을 거치며 요리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 또 그 스스로 요리쇼의 주인공 자리에 설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증명할 수 있게 된다.

'차이나는 도올'의 제작진 역시 프로그램 경쟁력을 고려해 유사한 구성을 택한 듯하다. 2013년 당시 TV 강연쇼의 인기가 높아 각 방송사가 앞다퉈 유사 프로그램을 편성하기도 했었는데, 이미 트렌드가 지나가 버린 데다 주제만 바뀐다고 해서 한층 영민해진 시청자들이 새롭게 받아들이진 못할 게 뻔한 일이다. 어차피 같은 방식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모은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여기에 예능적 재미를 더하니 훨씬 볼만해진다. 심지어 김용옥은 열강을 하다가도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거나 제자들과 농담을 나누기도 한다. 자연스러운 '섞임'이 어려운 강의마저도 즐겁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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