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구의 서울생활, 어떻습니까] 변찬우 변호사

입력 2016-03-27 22:30:02

"검찰은 갑질하기 좋은 집단…경찰에 일부 업무 과감히 줘야"

▷1960년 경북 안동시 평화동 출생 ▷경북 상주 상산초
▷1960년 경북 안동시 평화동 출생 ▷경북 상주 상산초'남산중 졸업 ▷대구 대건고, 경북대 법학과 졸업 ▷사법시험 28회(사법연수원 18기) ▷울산지검 부부장검사'청주지검 영동지청장 ▷대검 형사2과장'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 ▷대구지검 포항지청장'2차장검사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수원지검 성남지청장'울산지검장'광주지검장 ▷대검 강력부장 ▷변호사(현) 사진'이성근 객원기자

세무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안동, 상주, 대구를 돌며 유년과 학창시절을 보낸 변찬우(56) 변호사. 고교와 대학은 큰형과 형수 집에서 다니는 등 형제애가 남달랐다.

사법시험 이후 포항과 성남지청장, 울산과 광주지검장 등 기관장과 대구지검 2차장, 서울중앙지검 1차장, 대검 강력부장 등 지난해까지 24년 동안 검찰에서 핵심 요직을 두루 거쳤다. 지난해 검사복을 벗은 변 변호사는 검찰에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도 늘 '겸손하고, 배려하고, 경청하는' 자세로 일관했다. 불의에는 단호했고, 약자에는 관대했다. 후배 검사들로부터 존경받는 변 변호사의 검찰관과 삶의 철학을 들어봤다.

-검사 시절 기억에 남는 사건은.

▶세월호 사건 수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또 2014년 불거진 황제노역사건, 2003년 청와대 부속실장 몰래카메라사건 등도 잊을 수 없다.

-세월호 수사의 초점은 어디에 뒀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관련은 인천지검이 담당하고, 내가 지검장으로 있던 광주지검이 안전사고 원인규명과 해양경찰의 대처 등에 대한 수사를 벌였다. 수사를 하면서 안타까웠던 것은 평형수 부족과 화물 과다 등 사고선박 자체의 문제도 컸지만, 구조 등 사후대처가 너무 미흡했다는 점이다.

수사팀은 팽목항을 수차례 오가며 참상을 직접 보면서 사고원인과 대응방식에 대해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사고 신고를 받은 해경이 가장 먼저 도착했을 때 배는 기울어져 있었지만 완전히 침몰하지 않은 상태였다. 사건 조사결과 해경 경비정이 처음 도착해 배 안으로 들어가 대피방송만 했더라도 절반 이상의 인명을 구조할 수 있었다는 점이 너무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 경비정은 세월호에 접근조차 하지 않고 주변에 물에 빠진 사람에만 관심을 갖는 등 구조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났다.

-해경의 대처방식에 대한 수사는 어떻게 진행했나.

▶사고 대응과 관련해 최초 출동한 해경 경비정에 대해 수사를 집중했다. 세월호 선장이 도망간 상황에서 해경도 구조에 적극적이지 않아 엄청난 피해를 불렀다. 해경 책임도 도망간 선장 못지않게 크다고 판단했다. 경비정 정장에 대한 구속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지만, 청와대와 법무부는 달랐다. 사고나 재난 구조자에 대한 처벌 전례가 없는데다, 해경 정장에 대한 처벌을 할 경우 책임이 국가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게 법무부의 판단이었다.

해경 경비정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려고 했지만 청와대와 법무부는 기소조차 꺼려했다. 사표를 낼 각오로 상부를 설득했고, 결국 구속은 하지 못했지만 기소는 할 수 있었다. 대법원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해경 정장에 대해 징역형을 선고해 우리 판단이 맞았다는 것을 인정했다.

-해경 경비정장에 대한 구속을 강하게 주장한 이유는 무엇인가.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안전과 관련해서는 세월호 이전의 대한민국과 이후의 대한민국이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공무원들은 목숨을 내걸고라도 국민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가장 힘들었던 사건은.

▶청주지검 2부장검사 할 때 사건팀장을 맡아 수사한 '청와대 부속실장 몰카사건'이었다.

사건수사가 거의 1년이 걸렸고, 특별검사제까지 도입됐다.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느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수사팀 회의를 매일 자정을 넘겨 0시 30분에 할 정도였다. 또 구속된 현직 검사의 범죄행위를 파악하면서 검찰 조직에 이런 검사가 또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괴로웠다.

당시 사건의 발단은 현직 A검사가 특정사건을 내사하던 중 다른 사람을 시켜 술집에 있던 청와대 부속실장을 몰래 촬영하면서 시작됐다. 몰카 촬영과 사건 관련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된 A검사는 '권력 비리를 캐려고 하자 청와대 하명을 받은 검찰이 나부터 구속시켰다'고 검찰과 전면전을 선언했다. 처음에는 권력의 부당한 압력이 실제로 개입됐지 않았느냐는 의구심을 갖고 치밀하게 수사했다. 하지만 권력의 개입은 드러나지 않았고, 오히려 직권을 이용한 A검사의 비리가 다수 포착됐다.

-황제노역사건의 실체는.

▶광주지검장 하던 2014년 3월 불거졌다.

법원이 대규모 부도를 낸 B회장에 대해 벌금 200억원을 선고하고,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 구속시키되 수감생활 하루에 5억원씩 벌금을 감하도록 했다. 그런데 B회장이 벌금도 제대로 내지 않은 채 외국에서 카지노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언론에 적발됐다. 비난 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B회장은 구속 수감됐다. 하지만 교도소 수감 하루에 5억원씩 벌금이 감해진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 여론은 급속히 돌아섰다.

청와대는 국민정서를 감안해 법무부를 통해 B회장을 교도소에서 빼내도록 했다. 그러나 법원 판결에 따라 구속된 피의자를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교도소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도 타당한지 의문이 들었다. 결국 본인 의사를 물어본 결과 B 회장은 구속 이틀 만에 '벌금 낼 테니 꺼내 달라'고 하는 바람에 '형집행정지' 처분이 내려졌다.

교도소 수감생활 하루가 5억원과 맞먹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법원 판결에 반해 피의자를 꺼내는 것도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일'이라고 판단한다.

-우리나라 검찰의 경쟁력과 한계점은.

▶우리나라 검찰만큼 권한이 집중된 곳이 잘 없다. 또 검사들의 열정과 사명감도 어떤 나라보다 강하고 뛰어나다. 하지만 지나치게 업무가 과중돼 있는 상황에서 사건을 처리할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개량화해 말한다면 업무의 50% 정도는 정상적으로 해내고, 30%는 야근을 해가면서 겨우 처리하고, 나머지 20%는 대충 처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평검사들이 야근을 해가면서 고생하는 덕분에 검찰 조직이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명예와 열정, 사명감과 책임감 등이 검찰 조직을 지탱하고 있다.

-경찰 수사권 독립이나 현실화에 동의하나.

▶검찰 조직의 힘을 좀 빼야 한다. 권한과 힘이 몰릴수록 조직은 겸손해질 수 없다. 또 일을 줄여줘야 한다. 아동학대, 소년사범, 학교폭력 등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검찰에 주요 임무가 부여된다.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줘야 한다. 워낙 일이 많으니, 피해자 등의 얘기를 모두 다 들어줄 시간이 부족하다. 이는 경찰 수사권 독립과도 연관된다. 경찰에 업무 일부를 과감하게 떼 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검사가 가져야 할 자세와 태도는.

▶검찰에 권한이 워낙 많이 부여됐기 때문에 '갑 중의 갑질'을 하기 좋은 집단이다. 현재 검찰이 가져야 할 가장 큰 덕목은 '겸손, 배려, 경청'이다. 기관장 시절 가는 데마다 후배 검사들에게 강조했다. 건배 구호도 '겸배청'이었다.

-겸손, 배려, 경청으로 어떤 효과를 봤나.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장 할 때였다. 프로그램을 개발한 C씨가 동업자한테 회사를 뺏겼다고 억울하다며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는데, 계속 무혐의 처리돼 헌법재판소까지 간 사건이었다. 헌재가 공소시효를 얼마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 결정이 부당하다고 추가 조사토록 한 사건이 내게 배당됐다. 당시 형사6부장이 사표를 낸 바람에 낮에는 6부와 7부 결재를 하고, 밤에 C씨를 불러 새벽 2시까지 얘기를 들었다. C씨가 5년 동안 고시원에 머물며 이 사건에 매달렸다는 것도 알았다. 조사해 보니 억울한 점이 있다고 판단했다. 피해액은 굳이 따지자면 수백만원에 불과했다. C씨에게 최소한 기소는 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 6부에서 큰 사건이 터져버렸다. 수십 명에게 대형 사기를 저지른 기소중지 피의자가 붙잡혀 초임검사가 조사 중이었는데 피의자가 도망을 가버렸다. 상부에서는 도망간 피의자를 빨리 잡으라고 독려했다. 2주 동안 고생해 겨우 피의자를 잡았는데, 안타깝게도 그 사이 C씨의 고소사건이 공소시효가 지나버렸다.

C씨에게 솔직하게 얘기하면서 "미안하다. 다른 데 신경 쓰다 보니 공소시효가 지나가버렸다. 기소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C씨는 "며칠 밤새워 몇 시간씩 내 얘기를 들어줬고, 부장님이 유일하게 내 편이 돼 줬다. 내 한이 다 풀렸다. 기소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더욱이 내가 피해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고소 취하'까지 했다.

내 실수로 공소시효를 넘겼기 때문에 문책을 당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후배들에게 이 사례를 들며 "경청하고 겸손하고 배려하면 결국 복이 돌아온다"고 조언했다.

-삶의 신조는 무엇인가.

▶'수연무작'(隨緣無作)이다. 억지로 무엇을 하려 하지 않고 순리대로 산다는 뜻이다. 돈이나 권력에 대한 욕심도 없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또 선업(善業)을 하면서 살려고 한다. 검사는 '업'을 많이 쌓는 직업이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억울한 사람의 원(怨)을 한번 풀어주면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한 업을 만회할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이 선업이다. 피해자 등의 얘기를 열심히 들어주고, 고민을 해결해줘야 한다.

검사 시절 이처럼 선업을 하니 나를 위해 평생 기도해주겠다는 할머니도 있었고, 참깨나 참기름 등을 보내는 이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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