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 2학년 때, 교실이 특이했다. 한쪽을 잘라낸 둥근 케이크 모양의 건축물이었다. 중국 푸젠성의 하카(客家)인의 전통 살림집인 '토루'와도 닮았다. 백남준의 '다다익선'이 있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처럼 건물 가운데가 천장까지 하나의 빈 공간이어서 우리는 계단 대신 나선형의 비탈진 복도를 오르내렸다.
아이들은 이를 '원형 교실'이라고 불렀다. 건물 좌우에 자리한 길쭉한 사각형 건물들과는 좋은 대조를 이뤘다. 어린 생각에도 공간의 효용성 문제는 있다고 봤지만 격을 깬 둥근 건축물에서 받은 인상과 충격은 컸다. 정확한 건축 시기도 모르지만 이미 반세기 전 원형의 학교 건물을 구상하고 설계한 건축가의 머릿속이 늘 궁금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네모꼴 각진 건물만 보이던 시절이다.
공간이 인간 정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에게 공간의 의미는 절대적이다. 온통 벽으로 둘러싸인 칙칙한 교실에서는 사람의 사고가 갇힌다. 지나온 시간보다 나아갈 시간에 대한 꿈과 희망이 더 큰 청소년에게 좁고 폐쇄적인 시멘트 공간은 그늘이자 족쇄다. 특출한 사례를 빼고는 우리의 학교 건축은 이런 폐쇄성과 획일성에 갇혀 100년을 꼼짝하지 않았다.
경기도 남양주 한 고등학교의 삼각형 교사가 화제다. 낡은 학습동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새 교실을 신축하면서 젊은 부부 건축가가 흔치 않은 삼각꼴 건물을 설계했다. 면학 분위기나 집중력에 문제가 될 수도 있는 큰 유리창에다 중정(中庭)으로 이뤄진 이 건물은 분명 기존의 학교 건축과는 동떨어졌다.
무엇보다 설계자의 아이디어에 공감하고 특별한 교실을 선택한 학교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교육청은 '불가'였다. '삼각형? 듣도 보도 못했다'는 반응이다. 허가까지 3년이 걸렸다. 뿌리 깊은 고정관념과 상투적인 교육행정의 현주소다.
건축가가 인터뷰에서 밝혔듯 학교 건축에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폐쇄된 구조와 획일성이 지배하는 교실 건축은 아파트 문화의 연장이다. 요즘 들어 다양한 공간 디자인에 대한 고민과 시도가 활발하다. 그럼에도 이를 이해조차 하지 않으려는 이들에게서 공간의 혁신은 성가신 일이다. 하지만 건축은 단순히 재료의 집합이나 유행이 아니다. 다양한 공간에 대한 이해이자 이질적인 것에 대해 공감하는 포용력, 그리고 안목이다. 눈에 가득해야 조금씩 달라진다면 한참 뒤처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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