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장례 단상

입력 2016-03-22 18:05:05

요즘 친척이나 지인들이 가끔 세상을 떠난다. 부모님이 80대이다 보니 당신 지인들의 부고장도 수시로 날아든다. 고향 친구, 고교 동창, 사회에서 알게 된 사람들의 부모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이제 일상처럼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로 저장된다. 산 자는 죽은 이를 위한 행사인 '장례'에 동참하며 죽은 이에 대한 예의를 표시한다. 응당 그래야 하지만, 바쁜 일상은 현대인에게 그럴 수 있는 여유를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바빠 죽겠으니 남의 죽음은 일단 좀 밀쳐 둬야 한다'는 식으로 자신에게 최면을 걸며 하루하루를 지내야 한다.

어린 시절 시골 마을에서 접했던 장례는 좀 달랐다. 어린 눈에 비친 장례는 꽤 엄숙했고 한편으로는 축제 같기도 했다. 죽은 이의 주검을 모시는 공간은 대부분 당신이 평생을 산 집이었다. 가족과 친척들이 망자를 위해 곡을 하고 눈물을 흘리면, 그 자리에서 주검도 함께 곡을 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누군가의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은 금방 온 동네에 퍼졌다. 소식을 전해 들은 마을 사람들은 말과 몸가짐을 조심스럽게 하며 곧 장례를 치를 집을 위해 뭔가 하나 둘 차분하게 준비했다.

이윽고 장례가 시작되면 온 마을 사람들이 망자의 집에 모여들었다. 이때부터 죽은 이의 집은 순식간에 마을의 축제 장으로 변한다. 마당 한쪽에는 장작불이 타오르고 솥에는 물이 끓기 시작한다. 며칠 동안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장례라는 축제 속에서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는 뒤섞인다. 그리고 장례의 마지막 날 아침, 꽃상여가 망자를 태우고 산으로 향한다. 이때 상여를 멘 이들은 대부분 망자와 함께 생활하고 미웠든 고왔든 정을 나눈 사람들로 구성된다. 장례는 망자의 마지막 유품까지 불에 태워 하늘로 올리는 절차까지 합쳐 대략 일주일 내지는 열흘 넘게 이어진다. 이렇게 산 자들은 죽은 자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이런 체험을 하고 자란 내 또래 50대 이상 중년들에게 요즘의 죽음은 가볍고, 망자를 떠나보내는 절차는 너무나 간소하다. 누군가의 죽음을 예상하고 미리 준비하는 절차도 이제 마을 공동체의 몫이 아닌 병원과 장례업체의 일거리가 돼 버렸다. 그리고 내가 어린 시절 고향에서 경험했던 축제 같은 장례는 이제 역사책 속에서나 접할 수 있을 뿐이다. 역사책을 보고 과거의 추억까지 떠올릴 수 있는 나 같은 세대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아마도 현대인은 죽음을 점점 삶과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죽음을 삶의 연장 선상에 두는 것이 아니라,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 던져 놓는 것 같다. 그래서 산 자와 죽은 자가 어우러지던 그때 그 시절의 장례는 다시는 접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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