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세계평화를 위하여 우리가 있다

입력 2016-03-20 19:45:52

평양고등보통학교·연세대(영문학)·보스턴대 대학원(철학박사) 졸업. 전 연세대 부총장. 현 태평양시대위원회 명예이사장
평양고등보통학교·연세대(영문학)·보스턴대 대학원(철학박사) 졸업. 전 연세대 부총장. 현 태평양시대위원회 명예이사장

시련은 있어도 무너질 수 없는 나라

대한민국의 사명은 세계평화에 있어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 꿈은 어디에

허망한 꿈이라고 생각하기는 아까워

한국의 근대사를 보면 위험한 고비가 참 많았다. 보기에 아슬아슬한 때가 여러 번 있었던 게 사실이다. 물론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일이 1910년에 꼭 한 번 있었지만, 생활 불능의 위기에 직면해도 번번이 살아남은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것을 '기적'이라고 하기보다는 이 겨레의 '저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가끔 임진왜란을 상기한다. 조정이 율곡의 '십만양병설'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선조(宣祖) 입장에서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처지였을 것이다. 국론이 갈리어 있었다. '국론'이라 함은 오늘의 '여론'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선조 주변 나리들의 의견을 말하는 것뿐이다. 그들의 의견이 두 갈래였다는 말이다. "일본은 쳐들어올 것이다"라는 의견이 있고 "일본은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다"라는 의견이 있는데 서로 맞서 있어서 타협점을 찾기 어려운 국가적 중대사라 성상의 마음도 결론에 도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임진왜란 2년 전인 1590년 황윤길을 정사로 하고 김성일을 부사로 하여 일본에 통신사로 보낸 일이 있었지만 돌아와 정사'부사의 견해가 정반대였으니 선조도 난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사 황윤길이 "장차 병화(兵禍)가 있을 줄로 아뢰오" 하였으나 조정은 그의 '경고'를 귀담아듣지 아니하였다. 율곡의 '십만양병설'이 제출되고 꼭 9년 만인 1592년 4월, 15만 일본군이 한반도로 몰려오는데 조정은 동서(東西) 당쟁에 여념이 없었다. 고시니 유키나가를 선봉장으로 하는 제1군이 이미 부산에 상륙, 가토 기요마사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리하여 '7년 전쟁'이 시작된 것이었다.

임진왜란 동안 선조는 의주로 피란가고 백성은 완전히 버림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서민 대중의 참상은 말로 다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만일에 이순신 장군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하늘이 그를 이 땅에 보내지 않으셨다면, 한반도는 아마도 일본 영토의 일부가 되어 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 쵸센이 되어 영구히 일본에 속한 땅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순신은 조정을 둘러싸고 선조의 올바른 판단을 불가능하게 만들던 측근의 등쌀에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꺾이지 않았다. 백의종군하라는 조정의 명령을 두 번이나 받았지만 매번 순종하고 거역하지 않았다. 3도(道) 수군통제사의 계급은 3성(星)장군은 된다던데 해군 중장을 졸병이 되어 전투에 참여하라는 해군본부나 국방부의 지시에 순응할 장군이 있을까?

1900년대 들어서 일본은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외교로 우리를 삼켰다. 1905년의 보호조약, 1910년의 합방이 모두 그런 수순을 밟아 진행됐지만, 1910년의 한국(조선)은 1592년의 한국과는 달리 이미 주체성이 확립되어 있어서 집어삼키려고 해도 일본의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일제 35년이 비록 '압박과 설움'의 기나긴 세월이긴 했지만 그래도 의사 안중근이 나타나지 않았는가! 의사 이봉창이, 의사 윤봉길이 정복자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지 않았는가. 비록 당장에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지는 못하였으나 한국인이 일본인 앞에 무릎을 꿇지는 않았다. 그 정신이 없었더라면 8·15 광복이 과연 있었겠는가? 그 어른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자존심을 지킬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민족의 제단에 희생의 제물이 되신 것이다.

6'25의 기적도 '한반도의 숭고한 사명'이라는 입장에서만 이해가 가능하다. 사명이 있는 개인, 사명이 있는 나라는 망할 듯 망할 듯하여도 죽지 않고 살아난다.

한반도의 사명이 무엇인가? 세계평화가 아니겠는가? 단군이 내세운 국가적 사명이 홍익인간인데 따지고 보면 그것이 '세계평화' 아닌가. 휴전선의 비무장지대(DMZ)에 세계평화를 위한 공원을 조성하려는 대한민국의 꿈은 어디에 있는가? 여태껏 반세기 동안이나 뉴욕에 머물러 있던 유엔본부도 태평양시대가 임박한 오늘 동양 3국 중 어느 나라에 옮겨올 수밖에 없는데 그곳이 한반도의 DMZ가 아니겠는가? 그것이 허망한 꿈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래서 시련은 있어도 무너질 수 없는 나라가 한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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