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대장정 끝에 종영을 앞둔 MBC TV 월화드라마 '화려한 유혹'은 다른 건 몰라도 '할배 파탈' 하나는 남겼다.
'할배 파탈'은 할아버지를 뜻하는 방언과 치명적인 매력으로 유혹해 파멸에 이르게 하는 사람을 뜻하는 프랑스어 옴 파탈(homme fatal)·팜 파탈(Femme fatale)을 합친 말이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낮은 목소리로 책 구절을 읊조리면서 "날 지켜주는 사람은 바로 자네야"라고 고백하는 은발 '할배'에 괜스레 마음이 동한다는 시청자가 많았다.
68세의 전직 국무총리 강석현으로 등장해 지난 8일 하차하기 전까지 '할배 파탈' 매력을 뿜어낸 배우 정진영(52)을 17일 오전 종로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할배 파탈' 이야기부터 꺼내자 정진영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별명을 얻었어요. 뭔가 강석현 매력을 발산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대본대로 신은수를 향한 사랑에 집중했을 뿐인데 뜻밖에 '할배 파탈' 이야기가 들려서 놀랐어요."
'움직이는 성채'가 원제였던 이 드라마에서 강석현은 돈과 권력으로 이룩한 "더러운 가문의 성주"다. 추악한 욕망이 숨겨진 이 성채에 신은수(최강희 분)라는 여자가 들어오면서 강석현과 그 주변 인물의 삶에 균열이 시작된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강석현은 36살 어린 신은수를 처음에는 경계하지만, 어느 순간 사랑하게 된다. 그 신은수가 강석현 옛 보좌관의 아들 진형우(주상욱)를 놓고 강석현의 혼외딸 강일주(차예련)와 악연이 되면서 이야기는 얽히고설킨다.
정진영은 "강석현이 깊이 있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드라마에서 그의 삶이 비극으로 출발했기 때문"이라면서 "강석현이 시한부 판정을 받지 않았다면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에 대한 반응이 달랐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68세 노인과 딸뻘인 신은수가 결혼까지 이른다는 설정은 갖가지 이야기가 등장하는 요즘 안방극장에서도 파격이었다.
정진영도 처음에는 시청자에게 거부감만 주지 않을까 걱정과 염려가 적지 않았다.
그는 "어쨌든 시청자를 이해시켜야 하고, 저 자신도 이해해야 연기로 표현할 수 있기에 최강희 씨 자체를 신은수로 보려고 노력했다"면서 "정말 열심히, 자연스럽게 신은수를 사랑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분명히 최강희 씨가 신은수로 보였어요. 그녀를 바라볼 때마다 제 눈은 매혹되는 눈이었어요. 그녀를 보면 눈에 하트가 돋았고, 제게 화를 내거나, 저를 배신했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정말 눈물이 났어요."
달콤한 멜로는 기대하지도 않았다는 정진영은 촬영 도중 받아든 대본에 강석현과 신은수의 떡볶이 데이트 장면 등이 등장해 당혹스럽기도 했다고.
정진영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SBS TV 대작 '육룡이 나르샤'에 밀리지 않는 저력을 보여준 '화려한 유혹'에 대한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선과 악으로 양분된 다른 드라마와 달리 우리 드라마 인물들에는 선과 악이 모두 깃들어 있다"면서 "(흥행 면에서) 유리한 부분은 결코 아니지만 그 길을 가겠다는 PD와 작가의 굳은 의지가 있었고, 그 의지가 끝까지 유지됐다"고 강조했다.
"'화려한 유혹'은 제 연기 인생에서 영화 '왕의 남자' 못지않은 작품으로 남았어요. 여행에 비유하자면 전혀 가보지 못한 장소를 갔다 온 느낌이 들어요. 아무 정보 없이 어딘가에 떨어지는 여행이었는데 그래서 더 재미있고 새로웠던 것 같아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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