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녀와의 만남은 내 인생의 황금기로, 어느 드라마에 나오는 명장면처럼 내 삶의 한 단편으로 예술 같은 삶이라 하리라. 길동무의 첫 만남은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었던가, 시도한 지 반세기 만의 꿈 같은 만남이었다. 혼자 좋아하며 그 앞에서는 말 한마디도 못했던 내가 장장 아홉 시간 말을 끊지 않고 팔공산 공산 폭포에서 오월의 신록을 안고 우리는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언제나 시련 속에만 살아왔던 내게도 어찌 이런 능력이 있어서 영광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생각할수록 기적이요 꿈 같다. 청춘이 다시 온 듯 즐겁고 행복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였을 뿐, 남가일몽이었다. 인생 마지막 고종명(考終命)을 잘해야 할 때, 이혼까지 당할 수모(受侮)를 겪을 위기를 맞았다. 나의 운명이 풍전등화(風前燈火)같이 아슬아슬한 찰나였다. 안절부절못하며 이젠 아내의 처분만 기다리는 한심한 신세가 되었다.
그녀와 내가 불륜을 저지른 것도 아니요, 손 한 번 잡지도 못했건만 아무도 믿어줄 사람 없고, 증명할 방법도 없었다. 아이들과 며느리는 어떻게 생각할까? 내 형제들까지 다 알게 되면 얼굴 들고 나갈 수도 없다. 오만 생각이 다 드는데 숨 막히는 정적만 흐른다. 내 인생도 이제 마지막이구나 하니, 담담하게 마음이 바뀌면서 곧 닥쳐올 마지막 운명을 조용히 기다렸다. 아내도 여러 가지로 착잡한 심경인가 보다. 심각한 듯 굳은 표정으로 굳게 닫은 입에선 아무 말이 없었다. 정적이 얼마 동안 더 흘러갔다.
천우신조(天佑神助)인가? 집사람은 내 손을 들어주었다. 처음에는 선물을 받고 의아한 표정으로 몹시 못마땅한 눈치였으나 나의 진실 실토와 길동무의 투명하고 지혜로운 처사에 감동한 듯 내 손을 잡아주었다. 진실은 언제나 통하나 보다. 집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보약을 감사하게 먹었다. 내가 별일 아닌 것을 괜히 섣불리 거짓말을 했다면 아내가 또 속지는 않았으리라. 혹독한 매를 맞을지라도 정면 돌파한 것이 행운이었다.
얼마 후에 서울 갔다가 3차 선물을 또 받았다. 내 등산복 한 벌만 받은 줄 알고 집에 와서 선물 보따리를 아내에게 주었다. 풀어보고 깜짝 놀란다. 여자용 상의 한 벌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더욱 놀랐다. 이번에는 가위로 오리고 난도질하거나 내동댕이치며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리라 생각했다. 아내는 한참 생각에 잠긴 듯, 침묵하더니 옷을 입어본다. 품과 길이가 자로 잰 듯 맞고 색상도 맘에 쏙 든다며 좋아한다. 그 옷이 누가 산 것인지 다 알면서도 이젠 아내도 능청을 떤다.
나는 한 술 더 떠서 "이런 애인은 많을수록 좋지 않소" 했더니. 아내는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이젠 그분에 대한 글 교정까지 다 해준다. 봄가을 산행이나 야외에 갈 때 집사람은 꼭 그 옷을 입었다. 그러나 그 옷은 언제나 새 옷 같고 품위가 있어 아내가 좋아하는 것을 보며 나는 집사람이 한없이 고맙고 행복하다.
나는 그녀와의 외도 성공으로 많은 것을 얻고 깨달았다. 길동무와 만났던 날 나는 승무, 국화, 초혼, 해, 진달래, 산유화 등 긴 시들을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청산유수로 낭송했다. 길동무는 문학에 소질이 뛰어나니 시와 수필을 쓰라고 권하며 애송하던 시집을 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칭찬은 나에겐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듯 큰 힘이 되었다.
그녀를 만난 후부터 나는 중앙도서관 시 창작반과 수필 창작반에 등록하고 문학의 꿈을 키우며 시집으로 공부했다. 또 서실에 등록하여 예술의 꿈도 키웠다. 그녀로부터 사랑을 배웠고 그 힘이 위대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또 2차 외도를 시작했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내가 외도에 재미를, 아니 늦바람이 나도 톡톡히 났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 하더니 내가 바로 그 짝이다. 콩 심은 데 콩 났고, 팥 심은 데 팥 났던 내 성격은 과학교사요, 화학교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문학 공부를 시작한 후부터 하나 더하기 둘은 셋도 되고 넷도 되고 열도 된다는 이치를 깨달았다. 그래서인가 수필 부문에 곧 등단하고 수필집도 냈다. 서예도 초대작가와 추천작가를 땄다. 이 소식을 길동무에게 전하고 싶다. 그녀가 이 소식을 들으면 누구보다도 가장 기뻐하리라. 그녀는 양으로 음으로 내게 큰 선물을 주었으며, 정신적으로도 지혜와 용기와 큰 깨달음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문학과 예술의 꿈을 심어주고 아낌없는 격려로 나의 오늘이 있게 한 분이기 때문이다. 감사인사와 보답도 하고 싶다. 그러나 그녀는 헤어지던 날 갖고 있던 양산을 나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자꾸 만나면 무얼 해. 이젠 만나지 않을래. 이 양산은 내가 아끼고 애용하던 것이야. 나의 사랑과 체취와 내 마음이 담겨 있어 했다.
그녀는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너에게 주니, 내가 그리울 때 이 양산을 생각하고 잘 간직하면서 펴보아.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꿈을 포기하지 말고 꼭 성공해서 건강하게 잘 지내" 하고 서울역 플레이트 홈에 서서 내가 탄 기차가 출발하여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이후 그녀의 소식은 묘연하다. 나는 우울할 때면 그녀가 준 양산을 펴본다. 그녀가 활짝 웃으면서 나타나 "내가 네 곁에 있는데 왜 우울해, 힘내"하면서 항상 격려하고 힘을 실어준다. 내가 어려울 때마다 나타나서 용기와 힘을 주고 내 인생에 비바람을 막아주는 우산이 되곤 한다. 그래서 나의 꿈은 꺾이지 않는다. 내가 죽기 전까지 그녀를 위한 명시 한 편과 명수필 한 편을 써서 세상에 길이 남겨 보답하리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