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식민 지배는 많은 젊은 문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잃은 조선의 빛을 되찾는 광복(光復)을 위해 삶을 마치기도 했고 변절과 친일(親日)에 맞서 버티다 세상을 등져야 했다. 짧은 삶을 산 다섯 시인이 그랬다. 이장희(1900~1929), 이상화(1901~1943), 이육사(1904~1944) 그리고 송몽규(1917~1945)와 윤동주(1917~1945)가 그들이다. 이들의 활동 무대는 달랐지만 생각은 같았다.
대구에서 태어난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와 감옥의 고문도 불사하는 행동으로 일제에 저항하며 피를 토하듯 절규했다. '광야'라는 시에서 조국 광복을 향한 뜨거운 마음을 노래한 안동 출신 이육사 역시 끝까지 지조를 지키며 이역만리 중국 북경의 찬 감옥에서 생을 마쳤다. 일제 말기 즈음 숱한 문인이 절개를 버릴 때도 끝까지 버텼다. 반면 두 사람과 같은 시대를 산 대구 출신 이장희 시인은 다른 이유로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일제 앞잡이가 된 부자 아버지 이병학의 친일에 거스르며 '봄은 고양이로다'라는 시를 남기고 서른의 한 많은 생을 자살로 마감한 탓이다.
이들과 달리 송몽규와 윤동주는 특별한 인연의 삶이었다. 1917년 같은 해, 중국 연변 즉 길림성 용정시 명동촌의 윤동주 집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태어났다. 송몽규 어머니가 윤동주 고모여서 송몽규가 난 윤동주 집은 외갓집으로 두 사람은 사촌 간인 셈이다. 송몽규는 9월 28일, 윤동주는 12월 30일 태어났다. 세상을 뜬 해도 1945년 같다. 불과 스물아홉. 윤동주 2월 16일, 송몽규 4월 18일로, 나중에 태어났지만 윤동주가 먼저 숨을 거뒀다. 모두 독립활동으로 갇힌 같은 일본감옥에서다. 사망 원인도 일제 생체실험 때문이다. 함께 자라고 공부하고 죽어서도 고향 마을 뒷산에 나란히 묻혔다('유서깊은 명동촌', 연변인민출판사, 2001년).
네 시인의 적극적 항일과 이장희의 소극적 삶의 차이는 있지만 일제에 빌붙지 않은 뜻은 닮은꼴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을 기리는 방법은 다른 듯하다. 죽음으로 맞선 네 항일 시인은 시비, 행사, 생가 보존 등 다양하게 기린다. 특히 20대에 요절한 송몽규와 윤동주 삶은 영화로도 나왔다. 바로 '동주'다. 지난달 18일 개봉, 이달 12일로 관객 100만 명도 돌파했다. 두 사람을 추모하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하다. 반면 같은 요절시인 이장희는 쓸쓸하다. 시비를 빼면 그의 흔적은 망각에 가깝다. 대구 서성로 생가는 찾기조차 어렵다. 친일 아버지가 남긴 죄업의 대속(代贖)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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