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기개·정신 면면히 이어 온 독립운동의 성지
정겹고도 아련한 고향,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안동의 전통마을 몇 곳을 앞으로 찾아본다. 먼저 이중환의 택리지에 삼남(경상, 전라, 충청도)의 4대 길지(하회마을, 달실마을, 양동마을, 내앞마을) 중 '말간 비단 사이로 밝은 달이 비치는 형국 같다'는 뜻인 '완사명월형국'(浣紗明月形局)의 의성 김씨 집성촌인 내앞마을(川前: 반변천 앞마을)이다. 안동에서 영덕 방향으로 반변천과 나란히 달리는 34번 국도를 10여 분 정도 달리면 임하보조댐이 나오고 왼편으로 고가가 즐비한 마을이 내앞마을이다.
◆백운정…미수 허목 전서체 현판 예술적 가치
먼저 미수 허목(許穆'1595~1682)의 전서체 현판으로 잘 알려진 백운정(白雲亭)으로 향한다. 귀한 보물을 깊숙이 숨겨 놓듯이 우리나라 정자 중 찾아가기가 가장 힘든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간신히 찾아간 정자는 울창한 송림으로 둘러쳐져 있어 마치 고요한 절집 같은 분위기이다. 하늘빛 반변천과 한옥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내앞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진정 물 좋고 산 좋은 정자이다. 어버이를 그리워한다는 당나라 적인걸의 시(詩) 등고산망백운(登高山望白雲) 사친재기하(思親在基下) '높은 산에 올라 흰 구름 바라보며 어버이 그 아래 계신가 그리워하노라'라는 구절을 따 백운정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백운정의 현판은 꼭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특이한 전서체이다. '미수 허목이 90 노인에 쓰다'라고 되어 있다. 그의 말년인 90세 가까이에 쓴 글씨일 것이다.
◆내앞마을…'파락호' 독립투사 김용환 선생 터전
백운정을 나와 내앞마을 가기 전 왼쪽 반변천 물 가운데 한 폭의 그림 같은 솔숲이 보인다. 이 솔숲이 개호송(開湖松)이다. 개호송은 개호금송완의(開湖禁松完議)라는 문중규약에서 따왔으며, 마을에서 물길이 빠져나오는 천(川) 입구가 넓게 터져서 넓은 물길을 따라 마을의 좋은 기(氣)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소나무를 심고, 심혈을 기울여 관리했다고 한다.
내앞마을 의성 김씨는 신라 제56대 경순왕의 아들인 석(錫)을 시조로 한다. 석은 고려 태조 때 의성군(義城君)에 봉해졌기 때문에 본관이 되었다. 고려 말 이 마을에 정착한 김만근은 임하면 오씨에게 장가들면서 처가인 내앞마을로 왔으며, 이후 내앞은 의성 김씨의 동족마을이 되었다. 내앞마을에서 꼭 가봐야 할 건물은 김만근의 손자 청계 김진(靑溪 金璡'1500~1580)이 터를 잡은 대종가이다. 아들 5형제 중 학봉 김성일(鶴峰 金誠一'1538~1593'조선 중기 문신'외교관) 등 셋이 문과에, 둘은 소과에 급제하였으므로 이 집을 '오자등과댁'(五子登科宅)이라고도 불렀다. 꽤 규모가 큰 한옥은 솟을대문이 있는 행랑채, 안채, 사랑채, 사당채를 기본으로 하며 몸 기(己)자 형태의 55칸 한옥이다.
학봉 김성일 종가의 13대 종손인 김용환은 노름꾼, 주색잡기 등 온갖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자기 가족에게도 철저히 함구하며 많은 재산을 독립운동 군자금으로 보냈다. 이런 일화에서 보듯이, 내앞마을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성지라 할 수 있다. 내앞마을 입구에는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이 건립되어 있다. 내앞마을, 하회마을, 군자마을, 온혜마을, 소호마을 등 전통마을이 있는 안동은 추로지향일 뿐만 아니라 애국'애족의 고장이다.
◆군자마을…"행실 바른 곳" 전통, 고택체험 가능
안동의 전통민속마을 한곳을 더 가보자. 안동에서 35번 국도를 따라 청량산 방면으로 16㎞ 정도 가면 군자마을(君子里)이 나타난다. 예안에 터를 잡은 김효로(金孝虜)를 입향시조(入鄕始祖)로 하는 광산 김씨 집성촌이다. 안동댐으로 마을이 물에 잠기게 되자 예안에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예쁜 한옥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군자마을은 자손들이 번창하고 인근의 진성 이씨, 봉화 금씨, 안동 김씨와 통혼함으로써 영남 명문 사림의 한 일가를 이루었다.
이 마을은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행실이 바른 사람이 많아 한강 정구(寒岡 鄭逑)가 '한 마을의 모두가 군자(君子)'라고 말한 후로 군자마을이라 불리고 있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후조당 대종택을 비롯하여 웅청정, 설헐당, 탁청정, 낙운정, 침락정 등 일곱 채의 사랑채와 정자가 있고, 그 외 재사와 사당도 다수 있다. 유물관인 숭원각(崇遠閣)에도 역사적 가치가 높은 교지, 호구단자(호적), 토지문서 등 고문서 1천여 점과 각종 문집 2천여 권이 소장되어 있다. 이 마을은 고택체험이 가능하다. www.gunjari.net 054)852-5414, 010-2715-2177.
★TIP
*가는 길: 대구~중앙고속도~남안동IC~안동대학교~34번 국도~영덕 방향(소요시간 약 1시간 40분)
*백운정에는 차량이 갈 수 없다. 임하보조댐에 주차 후 15분 정도 걸어야 한다.
*백운정, 내앞마을, 안동독립운동기념관, 군자마을 모두 입장료는 없으며 주차공간이 넉넉하다.
*안동간고등어: 바다를 끼고 있지 않은 안동은 특이하게도 '안동간고등어'가 유명하다. 이는 인근 동해바다에서 잡힌 고등어를 내륙인 안동으로 운반 시 고등어가 상하지 않도록 염장을 적절히 한 것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안동간고등어 양반밥상'은 담백하면서 짭조름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1인분 1만2천원(구이+찜+안동식혜)이며 월영교 앞에 식당이 몇 곳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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