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명희(대구시 달서구 성서서로)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경험을 통하여 깊은 의미를 배우게 된다. 인생은 고통과 즐거움의 씨실과 날실을 엮어가면서 삶의 틀을 만들게 되는지도 모른다. '효'란 어떤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지 모르면서 살아왔다. 하나의 커다란 장애를 뛰어넘으면서 효라는 말이 정말 마음을 다듬어야 할 책임이자 의무이기도 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순박하고 아름다운 행동, 부모를 섬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 어른의 존재에 대한 각별한 존경의 표시를 알게 되었다.
부모님의 곁을 지키면서 옛 어른들의 말씀 '울'이라는 뜻을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어렸을 때에 우리 집 울타리는 싸리 대나무로 얼금얼금하게 엮어 놓았다. 길 가는 나그네가 보아도 모든 사생활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래도 거리감이 없이 이웃들이 정을 나누면서 웃음으로 마음을 통할 수 있었다. 도둑이 그 낮은 싸리 담을 넘지 못할까? 그런 마음의 위안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옆에 인생의 테두리를 많이 두른 어른이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마음으로 의지할 수 있고 뭔가 튼튼한 기둥이 되어 주었다. 부모님의 존재란 마음의 울타리였다. 이제 나도 나이를 먹었는지 그 울타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느낄 수 있다.
나에게는 뼈저린 과거가 있었다. 거의 수십 년 동안 아파 누워서 생활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처절한 고통이었다. 흘린 눈물만 해도 강물이 되었을 정도였다.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면 개미들이 줄을 지어 선두 주자 대장 개미의 뒤를 따라 질서정연하게 기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새삼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았다. 모든 생명은 고귀하다는 것을 하찮은 미물을 통하여 알 수 있었다. 그때 개미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면서 세상의 모든 것이 질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부모님의 자리, 자식의 자리, 물이 아래로 말없이 겸손하게 흐르듯이 자기 자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50대 중반이 되어서야 완전하게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인생의 반 고개를 거의 병마와 싸워야만 했다. 아니 살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만 했다. 아직은 결혼을 하지 못한, 남들이 말하는 노처녀이다. 결혼은 나에게 사치로 다가왔다. 하루 일과, 숨을 쉬면서 살아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노란 은행잎이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생명의 끈이 두려워서 사투를 벌인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길 가는 엄마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것을 보면 결혼에 대한 너무나 큰 그리움이 있었다. 어머니께서 50이 넘도록 힘을 실어준 것처럼 나도 그런 어머니 같은 엄마가 절실히 되고 싶었다.
80이 넘도록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해주신 어머니 덕분에 나에겐 인생관에 대한 큰 변화가 있었다. 어찌 그 고마움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물질적, 정신적인 것을 계산하자면 하늘과 땅을 다 합해도 그 넓이를 충족시킬 수 없을 것 같다. 초점 없이 누워 있는 나에게 한없이 부어주는 사랑의 눈빛이 절망의 늪에서 신비롭기까지 했다. 세상에서 제일 값진 보물이 '사랑'이라는 것을 난 너무 늦게 알았다. 늦게 철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것도 아픔을 통해서 말이다. 사랑은 아무리 부어도 넘치지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힘과 용기는 사랑을 통해서 반사작용이 일어난다는 것도 알았다. 연로하신 부모님께서 끝없이 보내주시는 그 보살핌이 가슴에, 뼈에 사무칠 정도로 미안했다. 내가 부모님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건강한 몸으로 일어나서 세상을 멋지게, 여러 사람의 희망의 빛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없는 에너지가 마음의 창을 뚫고 솟아올랐다.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마음이 메어져 왔다. 어떻게 이런 깊은 수렁에서 벗어나 활기찬 삶을 살 수 있을까? 미래는 절망의 까마득한 밤하늘이었다. 어머니께서 가끔씩 위로해주시는 "건강도 회복할 수 있고, 좋은 사람 만나 결혼도 할 수 있을 거야"라는 큰 말씀이 나에게는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절망이 희망으로 가는 지름길 역할을 해주셨다.
서서히 나에게도 몸과 마음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걷기 연습부터 했다. 어머니께서 옆에서 항상 부축해주셨다. 내가 어머니의 삶의 지팡이가 되어 주어야 할 일들이었지만. 나도 언젠가는 지금처럼 버팀목이 되어준 어머니처럼, 고목나무 같은 큰 둥치로 어머니의 삶의 날개를 달아줄 것 같은 날이 올 것 같았다. 걷기 연습을 하고 또 하고 되풀이되는 연습들….
어쩌면 산다는 것은 고통 속에서 강인함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모진 고통은 너무 많은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사랑, 사랑, 사랑 이러한 것은 나에게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 없는 가르침을 주었다. 지금까지 병원비로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부자라는 느낌이 든다. 백만장자가 부럽지 않다. 어머니께서 끝없이 부어주신 사랑으로 저축한 액수가 헤아릴 수 없으니 말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에게는 황금의 도가니였다.
받은 사랑을 하나도 빠짐없이 이제는 누구보다 나누어 주는 삶을 살고 있다. 갑 속에 든 칼은 쓸모가 없듯이. 받은 것을 유용하게 잘 활용해야 할 것 같다. 너무 오랫동안 기나긴 외로운 마라톤이었다. 넘어지고 달리고 인생은 이렇게 살아가는가 보다. 나누는 삶을 통하여 모든 것을 가진 듯이 너무 행복하다. 행복은 너무나 큰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작고 사소한 것에서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절망의 벼랑에서 희망의 꽃을 피우게 해주신 어머니의 그 넘치는 사랑, 못난 딸이 어머니께 어쩔 수 없이 너무나 큰 죄를 지었지만 그렇게 희생해주신 어머니에 대한 보답으로 요즈음 봉사하는 데 나의 몸을 바친다. 주위를 돌아보면 나약하고 병든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내가 제일 힘들고 어렵다는 생각의 틀도 벗어나게 되었다.
불효라는 말은 너무나 많은 교훈을 안겨 주었다. 세상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주었다. 모든 것을 낮추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지난날 나처럼 힘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비추는 등대가 된 기분으로. 어머니께서 항상 해주시는 말씀,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 가지 체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못난 것을 잘난 체, 모르는 것을 아는 체, 없는 것을 가진 체." 이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겸손의 미덕으로 살라고 하시는 말씀인 것 같았다. 마음이 부쩍 성숙해진 것 같다.
세찬 비바람이 몰아친 후 바다가 잔잔한 상태인 것처럼, 나의 마음도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그 헌신적인 뒷바라지로 이렇게 건강하고 튼튼한 딸이 되었다. 어머니 너무 감사드립니다. 어머니 너무 미안합니다. 어머니 너무 사랑합니다. 당신이 세상을 작별하는 날까지 그 신세를 갚는 마음으로 아니 영원히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오래오래 만수무강하시길 바랍니다. 그 은혜의 대가로 그늘지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서 저의 몸을 바치겠습니다. 건강한 딸이 되고 건강한 마음을 가지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멋진 삶을 살겠습니다.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그 마음 주춧돌 삼아서요….
어머니께서 늘 강조하시는 말씀, 사람은 책을 가까이해야 한다는 가르침 덕분에 늦게 박사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꼭 교단에 서서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가장 소중한 것이 나에게 있다. "서로 시기하지 말고, 사랑하라"라는 보편적인 진리를 학생들의 마음에 담아주는 스승이 되고 싶다. 진정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 사랑의 힘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어머니께서 말없이 베풀어주신 그 넓은 마음을 하나하나 가슴에 새겨주고 싶다. 무엇보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말 '사랑'의 위대함을 가르치는 스승. 불효를 저지른 내가 그동안 얻은 교훈을, 어머니께서 해주신 것처럼 몸과 마음으로 보여주는 영원한 스승으로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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