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달 급여 명세서를 받아든 직장인들의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한다. '13월의 보너스'를 기대하고 받아든 명세서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억대 연봉 직장인이 전국에 52만 명이나 된다는 소식에 박탈감마저 든다. 봉급쟁이 100명 중 3명꼴로 억대 연봉이고, 특히 울산에는 100명 중 8.5명이 억대 연봉을 받는다고 한다. 이런 소식을 듣고 이어지는 대화는 대충 이런 정도다.
"세금 떼고 나면 실수령액은 칠팔천 정도일 거야." "그래 실수령액으로 따지면 차라리 조금 덜 받는 게 낫지." "세금 많이 떼도 좋으니 한 달에 천만원쯤 벌어봤으면 원이 없겠네." "만날 월급쟁이만 봉이지. 세금을 빼돌릴 방법이 없잖아. 세금만 똑바로 거둬도 속이 덜 상할 텐데."
저녁 퇴근길에 소주 한잔 기울이며 애꿎은 담배만 뻑뻑 피워댈 쯤이면 술값, 담뱃값 얘기까지 나와서 결국 서민들만 살기 힘들어졌다고 푸념하는 자리가 돼 버린다.
청년 실업이 사상 최악이라는 요즘 세상에 꼬박꼬박 월급 받고 사는 것도 복에 겨운 줄 알라고 면박을 준다면, 딱히 반박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세상에는 '룰'(rule)이라는 게 있고, 적어도 그 룰이 공정해야만 불필요한 자괴감, 불신, 불행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노동의 가치가 똑같다는 말은 아니다. 엄동설한에 하루 12시간 넘게 일해야 간신히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는가 하면, 쾌적한 공간에서 몇 시간만 일하고도 남부럽지 않은 월급을 받는 일자리도 있다. 단위 시간당, 아니 단위 노동당 생산하는 부가가치는 다를 수 있다. 그게 세상의 이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공정한 룰은 공정한 징세를 뜻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상당수 국민은 조세가 공평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시장이나 식당에서 돈을 지불할 때 카드와 현금을 놓고 갈등해 본 경험은 누구나 있다. 가게 주인은 값을 깎아줄 테니 현금을 달라고 대놓고 요구한다. 심지어 애초 제시한 가격을 카드로 결제하려 하자 고객에게 부가세 10%를 더 내라고 윽박지르는 주인도 있다. 약삭빠른 주인은 아예 가격을 부풀려놓고는 현금 결제 시 깎아주는 척 꼼수를 쓰기도 한다. 사람 마음이란 게 간사하기 짝이 없다. 공평한 과세와 징수가 되려면 당연히 카드로 결제하거나 아니면 현금계산서를 끊어달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당장 눈앞의 이익 때문에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카드로 결제해달라고 호기롭게 말해놓고는 가게 문을 나오기 무섭게 후회하기도 한다.
현금을 냈건 카드로 결제했건 씁쓸한 뒷맛이 남기는 마찬가지다. 가게 주인은 "내라는 세금 다 내면 대한민국에서 장사 못한다"며 푸념하고, 손님은 "저런 사람들이 세금을 제대로 안 내니 결국 내 지갑에서 세금만 더 나간다"며 뒤통수에 대고 욕한다.
누군가는 세금을 아낄 수 있고, 누군가는 물건값을 아낄 수 있는 썩 괜찮아 보이는 거래인데도 이처럼 쓴 앙금이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끼리 공정한 척 거래해 봐야 결국 서로 손해를 볼 뿐이고, 결국 가진 자들이 위에서 다 장난칠 텐데 서로 '윈-윈'하는 따뜻한 이웃 간의 정이나 간직하자는 소박한 위로를 하는 것이다.
대기업과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교묘한 탈세는 워낙 진부한 얘기라서 언급할 필요도 못 느낀다. 그런데 그들이 세금을 빼돌리는 방법은 나날이 눈부신 진화를 거듭하는 만큼 이들을 찾아내는 방법도 그에 못잖게 기발해지고 있다. 그러니 수천만원 세금을 빼돌리는 사람은 죽일 놈이고, 현금가로 주고받아서 단돈 몇만원 아끼는 것은 상부상조라는 생각부터 버리면 좋겠다. 그래야 허구헌날 세금 빼돌리기에 눈이 벌게진 사람들 면전에다 욕도 할 수 있고, 조세정의 실현 못 한다고 정부를 비난할 수도 있다. 정의로운 사회는 누군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당신이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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