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해부'(解剖)라는 말의 유래

입력 2016-03-02 15:40:58

이승렬
이승렬

요즘 우리나라 한방의료기관에서 주로 많이 사용하는 침은 '호침'(毫鍼)이다. 여기서 '호'(毫)란 터럭을 의미하므로 가느다란 침을 말한다. 이런 침을 늘 자주 보게 되니까 우리 조상들이 사용하던 침도 지금과 같겠거니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사실 오늘날의 호침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침관을 사용하는 일본 전통 침술에서 영향을 받았고, 이런 관침법을 사용하면 침 시술 시 통증이 거의 없으므로 이후 통증에 민감한 현대인들이 가느다란 침을 선호하여 많이 쓰이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웃 중국만 해도 현재 침 시술 시 침관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우리나라의 호침보다 더 굵은 침을 사용한다. 우리 조상들이 주로 사용하던 전통적인 한침(韓鍼)도 지금의 호침보다는 좀 더 굵은 형태였고 침관을 사용하지 않았다.

과거의 침은 지금의 호침 형태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유리 파편에 가까운 형태의 백두산의 화산암석인 '흑요석' 파편이 침의 원류라는 고고학적 고찰에서 보듯이, 원래의 침은 찌르는 침의 형태가 아니라 지금의 메스와 같이 환부를 사혈(瀉血)'배농(排膿)'절개(切開)하는 외과적 수술 도구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지금 전해지는 이런 형태의 고대의 침을 '구침'(九鍼)이라 하는데 참침'원침'시침'봉침'피침'원리침'호침'장침'대침의 9종류이다. 동양의학의 역사에서 편작과 더불어 2대 명의로 일컫는 화타의 외과 수술은 진수가 저술한 중국 역사서 '삼국지(三國志) 화타별전'에도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그 기록에 따르면 화타는 약과 침, 뜸 등에 모두 정통했고, 침과 약만으로 치료할 수 없을 경우에는 환자를 마취시키고 환부를 절개했는데, 창자에 질병이 있는 경우에도 창자를 잘라 씻어내고 봉합해 고약을 붙이면 4·5일 만에 고통이 없어지고 한 달이면 완쾌되었다 한다.

따라서 한의학에 해부학이나 외과 수술의 근거가 없다는 시각은 침술의 발전 역사를 모르는 편견에 불과하다. 사실 '해부'(解剖)라는 용어 자체가 황제내경에 처음 등장하는 한의학 용어이고 동의보감에 나오는 오장과 육부의 묘사는 해부가 아니고는 인식이 불가능한 부분이다.

수년 전 '마의'(馬醫)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이 드라마도 오늘날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역사적으로는 '신의'(神醫)라는 칭송까지 받았던 현종 때의 조선 최고 외과 의사 백광현의 일생을 조명한 것이다.

인체의 질병을 치료하면서 인체를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따라서 현대 한의학은 해방 직후부터 대학에서 오랫동안 해부학 교육을 실시해 왔고, 현재 한의대생들은 침구 임상실습 시간에 초음파진단기로 장기의 위치와 깊이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면서 안전하게 침 시술하는 방법까지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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