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나쁜 전통

입력 2016-03-01 20:40:30

대학 2학년 때였으니 30년도 더 전의 일이다. 계열별 모집으로 1학년 교양과정을 거쳐 학과로 들어갔다. 3월이 얼마 지나지 않아 통과의례식이 열렸다. 선배들이 후배에게 '한잔' 베푸는 신입생 환영회였다. 나무 계단 소리가 삐걱거리는 2층의 허름한 술집에서 열린 환영회는 간단한 자기소개와 무지막지하게 술을 퍼넣는 시간으로 흐르다가 파장쯤이 됐다. 두 명의 선배가 오더니 밖에서 좀 보자고 했다. 한 명은 바로 1년 선배였고, 다른 한 명은 4학년 복학생으로 기억한다.

갓 들어온 신입생의 노는 꼴이 마음에 안 든다며 이른바 '빳다'를 치겠다고 했다. 그들로서는 예정한 순서였겠지만, 대대로 내려온 과 전통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다 그렇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의 일부 과는 '빳다'의 전통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했다.

속으로는 겁을 내면서도 선배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때리는 것이 전통이든, 아니든 내가 알 바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선배에게 맞으려고 과에 들어온 것이 아니고, 개인적으로도 맞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래도 때리면 맞을 수밖에 없겠지만, 내일 아침은 집이 아닌 파출소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협박에 가까운 이 말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환영회는 '빳다' 없이 그럭저럭 끝났고, 아침에 눈을 뜨니 파출소가 아닌 집이었다.

몇 년 전부터 새 학기만 되면 여러 대학에서 터져 나오는 나쁜 전통의 답습이 뉴스거리다. 알게 모르게 계속된 일이지만 SNS가 보편화한 최근 들어 두드러졌다. 그나마 '빳다 문화'는 좀 사라졌다. 그러나 '빳다'보다 더 치욕적인 성추문이 대부분이다. 선후배, 또는 동기 사이의 친밀도 높이기를 빌미로 성(性)과 관련한 게임이나 농담 등이 판을 치는 것이다.

이의 심각성을 알고 각 대학도 꾸준하게 관련 교육을 하지만, 아직도 일부 대학이나 일부 과에서는 버젓이 지속한다. 최근 건국대 생명환경과학대 OT에서 벌어진 '사건'도 참가 신입생이 SNS에 글을 남겨 뒤늦게 알려졌을 뿐이다.

신입생 때의 이런 기억은 세월이 흐르면 누구에게는 추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 어떤 이에게는 큰 상처로 남는다. 중요한 것은 이런 부류의 사건은 추억거리가 되는 다수보다는 상처받는 소수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전통도 시대가 바뀌면 빛이 바래고, 고쳐야 할 부분이 생긴다. 하물며 나쁜 전통은 아무리 빨리 없애도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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