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대학 입시 절차가 모두 끝났다. 입학을 앞두고 소수는 꿈에 부풀어 있고, 다수는 열패감에 젖는다.
열심히 공부한다고 누구나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는 없다. 열심히 공부했음에도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거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우리 사회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절차'를 만들었다. 그리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절차'가 공격받을 때마다 더욱 '공정하고 합리적인 절차'를 만드느라 머리를 싸맸다.
1945년 '대학별 단독 시험제'를 실시한 이래 2015년까지 입시 제도를 대폭 바꾼 것이 15번, 세부적으로 바꾼 것이 20번이었다. 2017년에는 또 일부가 변경된다. 그럼에도 해마다 다수의 젊은이들이 실패를 맛본다.
절차가 공정하다고 패자들이 결과에 완전히 수긍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절차가 공정하고 합리적일수록 패자의 열패감과 분노는 더 커질 수도 있다. 변명조차 할 수 없는 패배란 비참하기 그지없으니 말이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절차, 그 자체가 목표일 수는 없다. 절차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마련한 장치일 뿐이다. 절차가 공정하기만 하면 사회적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다면 오산이다.
좋은 대학 진학이 절대다수의 목표인 한 아무리 공정한 절차를 마련해도 다수는 패자일 수밖에 없다. 입시제도를 수없이 고쳐왔지만 수험생 다수가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극단적으로 모든 수험생이 명문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입시제도를 마련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진학할 수 있는 대학은 이미 명문대학이 아니니까.
한 사람의 인생에서 10대 사건에도 들지 못하는 대학 입시를 전부로 생각하는 우리 사회 전반의 인식이 끼치는 가장 큰 해악은 아직 어린 학생들이 스스로를 패자로 느끼도록 한다는 점이다. 북돋워도 시원치 않을 판에 기부터 죽여 놓는 것이다.
다수가 승자가 되도록 하려면 절대다수의 학생들이 대학에 매달리는 지금의 방식 말고 다른 길을 확보해야 한다. 입시 과열에 따른 분노, 자살, 체념, 방황 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입시 제도를 개선할 것이 아니라, '명문대학 진학' 말고도 개인의 재능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트랙을 만들고, 사회 구성원들이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
사람은 저마다 취향과 재능이 다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이를 외면하고 오직 주요 학과목 중심으로 사람을 평가해왔다. 손재주가 뛰어난 아이를 책상 앞에 붙들어 앉혀놓고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문제만 풀라고 하니 성과가 높을 리 없다. 올해 대입에서 '명문대학 진학'에 성공한 학생들에게 공부 외에 다른 것을 시켰더라도 수능성적만큼 성과를 거두었을까.
아이 때부터 줄곧 '대학입시'만 바라보게 해놓으니 아이들은 감히 다른 길을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다른 길에서 성공하는 과정에서가 아니라, 다른 길을 시도하는 순간 압도적인 난관에 부딪힌다. 그러니 적성과 능력에 맞지 않는 공부에 매달리느라 애를 쓰지만 성과가 좋지 않거나 삐딱한 길로 빠질 뿐이다.
고등학교 졸업생의 85%가 대학에 진학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 미국, 일본, 대만을 비롯해 거의 모든 유럽 선진국 고교 졸업생들의 대학 진학 비율은 40% 안팎이다. 각자의 취향과 재능에 따라 적절한 길을 찾는 것이다. 성적 최상위권 학생들 다수가 취향과 무관하게 의대에 진학하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모든 사람이 대졸에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구하려는 것은 하나의 날개로 날기를 바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사회가 한쪽에서는 구직난, 다른 쪽에서는 구인난에 시달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공부만 잘하는 아이들과 공부 빼고는 잘하는 게 많은 아이들을 언제까지 하나의 잣대로 재단할 것인가. 슬기로운 한국인이 개인은 물론 공동체에도 해롭기 짝이 없는 고집을 계속 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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