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살아 있는 정치문화와 죽은 정치문화

입력 2016-02-23 19:07:08

국회 입문에 목적을 둔 정치 인사들의 몸놀림이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모두들 간절함을 짙게 묻혀낸 표정이 역력하다.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반응은 지극히 냉소적이다. 냉랭하다 못해 짜증 섞인 얼굴이 다반사다. 선거를 통한 축제 분위기는 상상할 수 없고 이젠 죽은 정치문화가 일상이 된 듯싶다. 정치도 문화라는 가피를 덧씌운다면 살아 있는 정치문화와 죽은 정치문화로 나눌 수 있다. 살아 있는 정치는 유권자의 몫으로 권리와 책임이 느껴지는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반대로 죽은 정치는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는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시체를 파헤쳐 먹고사는 기생충과 숙주들만 득실거린다. 여기서 유권자가 없다는 말은 진정한 의미의 한 표 한 표가 없다는 뜻이다. 유권자를 임의대로 묶어 팔아먹는 거간꾼과 거래만 난무한다.

살아 숨 쉬는 정치문화는 평등한 의식을 앞세우고 유권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정치문화의식을 권리와 엄중한 책임으로 느끼며 새로운 정치인물과 기반에 대해 의미 있는 토론을 표출한다. 그리고 선택받아야 하는 간절함을 표현하는 출마 당사자들은 이 같은 유권자들과의 집단적 거래를 거부하고 유권자 개개인을 존중하는 정치문화를 앞장서 실행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제대로 된 정치문화는 몇 개월 만에 생겨날 수 없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유권자들을 만나 희로애락을 함께하면서 토론하고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순서를 세우는 과정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죽은 정치문화는 이와 반대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살아 숨 쉬는 정치문화를 감당하고 있는 출마자들을 선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작업은 아닐 듯싶다. 먼저 오랫동안 지역민들과 살을 부대끼면서 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후보자가 누구인가를 가려내면 된다. 어느 날 갑작스레 나타난 한량들은 일단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죽은 정치문화를 끌어 오는 장본인이라고 낙인찍어도 무방하리라 생각한다. 이들은 거의 대부분 유권자를 앞세워 패거리를 형성하고 있는 거간꾼들의 등쌀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손쉽게 타협하고 거래한다.

살아 있는 정치문화와 죽은 정치문화의 변별점 하나는 선거가 축제인가 아니면 피비린내나는 혈투의 장인가 하는 것이다. 죽은 정치문화가 판치는 지역은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살 떨리는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공정한 시도는 찾을 수 없다. 이 같은 지역에서 썩은 감초 같은 존재는 항상 등장하기 마련이다. 선거라는 축제의 반사이익만 기대하는 존재들이다.

유권자들은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생각조차 멈추고 침묵하는 것은 아니다. 두 눈은 언제나 노력하는 정치인들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