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근교 산의 재발견] 동구 봉무토성-화담산-가람봉

입력 2016-02-19 20:15:39

보일 듯 말듯, 금호강 S라인 훔쳐보는 짜릿함

봉무토성-가람봉 능선이 최근 대구 북동부의 새로운 생태, 역사, 인문학 탐방로로 인기를 끌고 있다. 가람봉에서 내려다본 금호강 풍경.
봉무토성-가람봉 능선이 최근 대구 북동부의 새로운 생태, 역사, 인문학 탐방로로 인기를 끌고 있다. 가람봉에서 내려다본 금호강 풍경.
위남재에서 내려다본 공산 쪽 풍경.
위남재에서 내려다본 공산 쪽 풍경.

여기에도 산길이 있었어? 몇 년 전 한 산꾼이 블로그에 소개한 길을 따라 동구 쪽 한 야산 산행에 나선 적이 있다.

소나무가 우거진 호젓한 산길을 가볍게 걸을 수 있어 좋았고 금호강, 연경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조망이 무척 시원해 그 후로도 몇 번 올랐던 코스다. 별생각 없이 오르던 이 오솔길이 요즘 새롭게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지역의 한 기초의원이 '가람봉 일주 역사탐방로'라는 새로운 코스로 개발해 구정(區政)으로 구체화시켰기 때문이다. 대구 동북의 생태 탐방로, 역사 답사로, 인문학의 산실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봉무토성-화담산-가람봉 코스를 돌아보았다.

◆불로동 고분군 세력의 요새 봉무토성

산행 들머리는 봉무동 청구새들마을, 이시아폴리스 앞 봉무토성이다. 왕건이 패주 도중 홀로 앉아 탄식했다는 '독좌암'(獨坐巖), 조선시대 마을 주민들의 문회(文會), 풍속교화의 공간이었던 봉무정(鳳舞亭)이 있는 곳이다.

봉무정 왼쪽으로 난 산길로 접어들면 봉무토성이 나타난다. 학계에서는 3, 4세기 금호강, 팔공산을 배경으로 거주하던 불로동고분군 세력이 도피용으로 쌓은 성으로 추측하고 있다. 아직 국가 체계를 갖추지 못했던 불로동집단이 주변의 신라, 압독국의 침입에 대비해 구축한 요새로 이해하면 쉬울 듯하다. 토성에서 북쪽 능선을 타다가 직진하면 과수원, 경작지를 거쳐 작은 산길로 접어든다.

20분쯤 걸으면 봉무동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쳐지고 길은 이내 위남고개에 이른다. 느티나무 옆에 큰 돌무더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옛 성황당 자리가 분명해 보인다.

◆금호강, 연경들은 대구 강안문학 산실

고개에 이르면 오른쪽으로 연경들이 펼쳐지고 삼국시대 '공산전투' 현장이었던 파군재, 공산(公山), 신숭겸 장군 유적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기병(騎兵) 중심의 왕건 군대가 정예 보병이 매복해 있던 협곡(파군재)에 갇혔으니 왕건은 '갑 속에 든 칼'이었다. 초반 연전연승을 거두며 사기가 충천해 있던 견훤의 군대를 당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비운의 전쟁터 옆으로 한가로운 목가적 풍경이 펼쳐진다. 연경들이다. '가람봉 일주 역사탐방로'를 기획한 북구의회 이헌태 의원은 "연경엔 지금은 남아있지 않지만 대구 최초의 서원인 연경서원이 있었다"고 말하고 "당시 선비들이 금호강변의 세심정(洗心亭), 압로정(狎鷺亭)에서 시회(詩會)를 즐기며 대구의 강안(江岸)문학을 꽃피웠다"고 설명했다.

대구의 유학 르네상스를 열어간 서거정도 이곳에 자주 들러 경치를 감상하며 '대구 십경'을 남겼는데 '금호범주(琴湖泛舟, 금호강의 뱃놀이)'를 제1경으로 꼽을 정도로 이곳 풍광을 아꼈다.

◆금호강을 대구시민 휴식, 레저 공간으로

위남고개를 지나 가파른 등로 끝에서 만나는 화담산은 이 산의 멋진 조연(助演)으로 손색이 없다. 산 자체는 크게 매력이 없지만 산 아래 깃든 '화전담'(花田潭)이 봉우리의 매력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화전담이 자리 잡고 있는 무태-검단동 구간은 금호강 전체 구간 중 절경으로 꼽힌다. 봄이면 진달래가 밭을 이루었다고 해서 화담(花潭)마을, 꽃밭소라고 불렸다.

대구시 북구청에서는 2013년 이곳에 화담마을 누리길을 만들어 동변에서 연경서원터에 이르는 누리길을 조성했다. 이 의원은 '금호강 르네상스'를 제안하면서 무태, 검단지역에 수변공원을 건설하고 주변 경관을 아우를 수 있는 구름다리를 설치해 시민들의 휴식, 레저공간으로 조성하자는 주장을 펼쳐 왔다.

◆금호강 S라인 조망처 가람봉

화담산에서 가람봉으로 오르는 길도 쾌적한 숲길로 이어진다. 가람봉 경사로 직전 조그만 삼거리와 만난다. 화담마을과 연경들을 잇는 고갯마루다.

옛날 연경서원으로 가는 학동(學童)들이 책보를 메고 가던 길이고 무태장으로 가던 장꾼들이 수다를 떨며 잠시 숨을 고르던 곳이다.

고개를 넘어 20분쯤 오르면 오늘의 주봉 가람봉이 나타난다. 학봉(鶴峰), 또는 가남봉, 갈봉(葛峰)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며 산꾼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가람봉은 망일봉과 함께 동서변을 동서로 나누며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가람봉의 미덕은 뭐니뭐니해도 앞자락에 펼쳐진 시원한 조망이다. 북쪽으로 함지, 도덕산길과 팔공산 주능선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펼쳐진다.

아쉽게도 가람봉에서는 금호강 풍경이 가려져 있다. 잡목에 남쪽 조망이 막힌 탓이다. 정상에서 동쪽으로 200m쯤 내려가 오른쪽 비탈길로 접어들면 시원한 금호강 물결을 렌즈에 담을 수 있다. 금호강의 환상적인 S라인을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포인트다.

팔공산 스카이라인과 금호강, 연경들 조망까지 갖춘 특색 있는 코스지만 동구 봉무동 쪽 초입 등산로는 거의 정비되지 않은 상태다. 동구 쪽 관광지 정비가 봉무토성에서 끝나있기 때문이다.

북구, 동구 두 지자체가 협의해 우선 표지판이라도 정비한다면 동서로 등산로가 열리고 그 길을 따라 생태, 역사, 인문학 탐방도 물꼬를 트게 될 것이다.

▶교통 안내=급행1번을 타고 이시아폴리스 앞에서 하차한 후 봉무정을 끼고 왼쪽으로 난 등산로로 오른다. 봉무토성에서 위남고개에 이르는 구간이 흐릿해서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다. 리본을 보고 북쪽으로 진행하면 주등산로와 쉽게 만날 수 있다.

급행2번을 타고 무태 조야동 동변교에서 내려 유니버시아드 선수촌 1단지에서 화담길로 진행하거나 가람봉으로 올라 화담산-봉무토성으로 진행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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