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필요 없다/제리 카플란 지음/신동숙 옮김/한스미디어 펴냄
동화 '피노키오의 모험'에서 제페토 할아버지가 잣나무를 깎아 만든 피노키오는 요즘으로 치면 인공지능을 지닌 로봇이다. 우리는 제페토 할아버지 말은 도통 듣지 않던 피노키오가 결국 철이 들어 진짜 사람이 됐다는 해피엔딩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원래는 그런 결말이 아니었단다. 작가 카를로 로렌치니는 1881년부터 이 작품을 이탈리아 소년신문에 연재했다. 그런데 15회에서 강도들에게 쫓기던 피노키오를 나무에 목매달아 죽이고 만다. 뭔가 심각한 주제를 다루려고 그랬단다. 하지만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결국 카를로 로렌치니는 4개월 만에 동화 연재를 재개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봉합했다. 파란 요정을 등장시켜 피노키오를 살려낸 다음 36회를 끝으로 동화를 해피엔딩으로 마무리시켰다.
이 동화를 우화로 변주해보자. 인공지능에 대한 인간의 바람 내지는 욕망을 투영시키면 된다. 인공지능은 처음부터 인간을 돕는 존재로 개발돼 왔다. 마치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늘 이타적으로 행동하고 하인처럼 처신하는 로봇 R2D2나 BB-8처럼 말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너무 발달해버리면 피노키오처럼 인간을 속이고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 빌 게이츠는 "인공지능은 초기에는 우리를 위해 많은 일들을 해줄 것이다. 하지만 너무 강하게 발달하면 인류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과학자 스티븐 호킹은 "인공지능의 목표가 우리의 목표와 동일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미래가 아닌 지금 인공지능 규제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행착오를 좀 거치더라도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반려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면, 해피엔딩일 것이다. 반대로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인공지능 군사방위프로그램 '스카이넷'이 핵폭탄을 발사해 인류를 파멸로 내모는 것과 같은 이야기는 아마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로 불행한 결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저 동화의 원래 결말처럼 피노키오를 죽이는, 그러니까 인공지능을 폐기하는 '조금 덜 불행한' 결말이 나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의 저자인 인공지능학자 '제리 카플란' 스탠퍼드대 법정보학센터 교수는 조건부 해피엔딩을 주장한다. 로봇, 자율주행차, 드론, 가상현실(VR) 등 여러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직업을 점점 빼앗을 것은 분명한 불행이지만, 인공지능과 인간은 충분히 공존할 수 있고, 그렇게 만들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예컨대 직업에 대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기술 발전이 너무 빠른 속도로 이뤄지기 때문에 우리가 배우는 기술은 더욱 빨리 사회에서 쓸모없어진다. 그래서 '직업대출'(job mortage) 같은 제도가 필요하다. 고용 약속을 한 기업은 세금을 감면받고, 노동자는 미래에 얻을 수입을 미리 받아 직업기술을 익히는 데 쓸 수 있게 된다.
저자는 미래사회가 인간 대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 대 자산의 투쟁 시대가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인공지능의 가치를 먼저 알아챈 소수의 사람들이 미래의 부를 거머쥐기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투자상담가 '데이브 쇼'는 1980년대 컬럼비아대 조교수 시절 주식 초단타매매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이 인공지능이 세계금융시장에서 쏟아지는 데이터를 재빨리 수집 및 분석해 막대한 수익으로 연결해 온 것이다. 데이브 쇼의 회사에서 일한 적 있는 아마존 창립자 제프 베조스는 20년 동안 2억 명 이상의 실구매자로부터 개인 상세 정보와 구매 이력 및 습관을 아우르는 방대한 통계 자료를 수집했다. 이걸 인공지능과 연동시켜 엄청난 수익을 낸 것은 물론 아마존의 미래 전략까지 짰다.
이런 움직임이 결국 노동시장의 불안과 소득 불평등도 함께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저자는 꼬집는다. 따라서 경제 체계와 사회 정책에 자유시장을 수정한 혁신적인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 제목인 '인간은 필요 없다'가 그래도 인간이 역할을 해야 하는 사회를 가리키는 반어적 표현으로 읽히는 까닭이다. 296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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