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通] '팔공산 지킴이' 사진작가 채희복 씨

입력 2016-02-13 00:01:00

"팔공산, 전국적 종주 코스-세계적 순례길 가능성 무궁무진합니다"

"팔공산에 한티재 대피소가 세워져야 전국 등산객, 순례객들이 대구경북으로 모여듭니다." 채희복 사진작가가 자택 벽에 전시된 팔공산 사진들 앞에서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대구 올레길(58㎞), 팔공산 왕건길(35㎞), 동구 녹색길(27㎞), 이음길(120㎞), 에움길(200㎞)….

팔공산 주변엔 수많은 테마길이 있다. 대구권 외 경산, 영천, 군위, 칠곡까지 합치면 그 수는 배로 늘어난다. '걷고 달리고 오르는' 열풍에 맞춰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둘레길 조성에 나섰기 때문이다.

모든 길에 기준점과 균형추 역할을 하는 산이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팔공산이다. 최근에 팔공산을 바라보는 시각에 큰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산을 전국적인 종주코스로, 더 나아가 국제적 순례길로 개발하자는 구상이 제기되고 있다.

이 주장의 중심에 한티재가 있다. 이곳에 대피소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면 지리산, 덕유산처럼 숙박형 종주산행이 가능하고,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알베르게(Albergue, 순례자 숙소)가 생겨 전국의 산꾼, 순례객들을 불러 모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몇 해 전부터 이 밑그림을 구상하고 디자인해온 사람이 있다. 팔공산 지킴이 채희복(72) 사진작가다. '대피소 하나 짓자'는 주장인 줄 알았는데 막상 인터뷰에 들어가니 그가 그리는 '그림'은 훨씬 컸다.

◆"한티재에 버스 개통'대피소 세우자"

인터뷰 일정이 한참 조율될 무렵 '뜨끈한 기사' 한 건이 지면에 올라왔다. 이상구 경북도의원이 본회의 5분 발언에서 "팔공산 둘레길을 등산로와 연계해 종주 등산로를 개설하고 한티재휴게소에 대피소를 운영하자"는 주장을 편 것이다.

채 작가는 이 소식을 듣고 눈이 번쩍 뜨였다고 한다. "이 의원에게 바로 전화를 했어요. 훌륭한 제안을 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사실 산악단체나 NGO들이 이런 제안을 낼 수 있지만,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것은 행정기관입니다. 아마 이 발언 이후 한티재대피소 설치 논의가 본격화할 겁니다."

채 작가는 이 계획이 구체화되면 제일 먼저 대중교통 접근성이 개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시내버스는 칠곡군 동명면 기성리까지만 운행된다. 이 노선을 한티재까지 끌어올리면 여기서 다양한 길이 이어지고 문화, 예술, 종교가 열리게 된다는 것이다.

"지리산 성삼재에 대중교통이 뚫리면서 종주산행객이 매일 지리산을 찾고 백두대간꾼들이 사철 구례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팔공산도 종주길에 대피소를 설치하고 대중교통을 연장하면 전국 산꾼들을 대구로 불러 모을 수 있습니다."

우연이겠지만 지리산 종주길이 25㎞, 팔공산 종주로도 23㎞다. 화대종주(화엄사-진주 대원사)로 진주까지 코스를 연장하면 40㎞, 팔공산도 환성산-초례봉까지 길을 늘리면 100리 길이 넘는다.

◆한티재를 '산티아고 순례길'로 개발

팔공산은 한티재를 경계로 두 종교가 절묘하게 만난다. 동쪽으로 파계사, 동화사, 갓바위(선암사)가 불교 벨트를 이루었다면 한티재에서는 가톨릭이 박해와 순교 속에서 복음을 열어갔다.

채 작가가 종주길, 대피소와 한티재를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왜관수도원-한티재-대구 성모당을 잇는 순례길과 김수환 추기경 출생지 군위에서 한티재에 이르는 길, 여기에 한티재에서 경주 산내, 건천(진목정)에 이르는 순례길이 조성되고 있어요. 이 길들이 모두 재에서 갈래를 열어 갑니다. 한티재를 대구경북 성지순례의 중심축으로 개발한다면 팔공산 일대가 동반해서 가치를 키워갈 수 있을 것입니다."

스페인과 프랑스를 잇는 산티아고 순례길엔 매년 20만 명의 관광객, 순례객들이 몰려든다. 양국을 잇는 800㎞ 종주길 주변엔 수많은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숙식, 쇼핑을 하면서 주민들 생업, 경제에 큰 도움을 주고 있음은 물론이다.

"한티재가 가톨릭 성지 순례의 허브로 부상한다면 그 길을 따라 게스트하우스가 들어서고 농산물 거래도 활발해져 주민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것입니다. 무엇보다 팔공산에 이런 종교, 인문학적 가치들이 깃들게 되면서 산이 더 정신적으로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20년째 팔공산 지키며 테마길 완성

작년 여름 동구의 공산-응해산을 오르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등산로 전체에 카펫처럼 깔렸던 '야자매트' 때문이다. 동구의 오지산에 누가 이처럼 공(功)을 들였을까 궁금했는데 인터뷰 과정에서 이 의문이 풀렸다.

"동구에서 왕건길이 설계되고 8개 구간에 테마길을 낼 때 당시 동구청 김병수 팀장, 이상국(대구한의대 평생교육원) 교수와 제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습니다. 길조차 없던 35㎞ 산길을 일일이 삽으로 괭이로 파내며 길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 바람에 그는 '팔공산 산신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구청에서 팔공산 정책이 입안(立案)되면 제일 먼저 채 작가에게로 달려와 자문한다고 한다.

백안삼거리 입구에 둥지를 튼 그는 그동안 팔공산 봉우리, 재, 봉, 계곡, 암자를 모두 섭렵했다. 5만분의 1 지도를 가지고 다니며 팔공산 주능선부터 자락길까지 모두 훑었다. 2012년 왕건길이 계획되기 전부터 그는 벌써 팔공산 테마길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2007년에 제주 올레길이 막 소개될 때 전 이미 동구 일대에 '텅빈 둘레길'을 개척했습니다. 동네 어르신들 말씀을 들어가며 산 주변의 이야기, 역사를 찾아 다녔죠. 왕건둘레길, 북촌둘레길, 도장길둘레길 같은 테마 코스들이 그때 만들어졌습니다."

어느덧 그가 북지장사 자락에 자리를 잡은 지 20년이 되었다. 그동안 팔공산 테마길 아이디어를 내고 직접 길을 다듬었다. 1억원이 넘는 표지석을 기증하며 둘레길을 꾸미기도 했다.

그는 이 모든 노력의 결실이 팔공산 종주길, 한티재 대피소로 연결된다고 말한다.

"종주길이 완성되면 팔공산도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처럼 숙박형 종주코스를 갖게 됩니다. 우리가 종주코스를 찾아 일본 북 알프스나 중국 쓰구냥산(四姑娘山)으로 가듯 곧 각국의 산악인, 순례객들이 팔공산을 찾아 대구경북으로 오게 될 겁니다. 그 첫 단추가 되는 한티재 대피소가 하루빨리 세워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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