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을 이끈 '철혈재상' 비스마르크(1815~1898)가 멋진 군복에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외교석상에 나타났다. 그가 문관 출신임을 알고 있는 한 외교관이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질문을 던졌다. "어느 전쟁에서 딴 훈장입니까?" 비스마르크는 천연덕스럽게 "이건 외교전에서 딴 것이요"라고 했다나.
비스마르크가 위대한 재상으로 남아 있는 것은 외교전을 전쟁보다 더 치열하고 교묘하게 구사했기 때문이다. 자국의 안정을 위해 이웃인 프랑스를 고립시키고 영국, 러시아와 동맹을 맺은, 그 유명한 외교술은 전국시대 진나라의 '원교근공'(遠交近攻) 전술과 무척 닮았다.
또 다른 전설적인 외교관은 오스트리아의 외무장관 메테르니히(1773~1859)다. 그는 빈 회의를 주재하면서 절묘한 협상력으로 유럽 질서를 재창조했다. 5개국이 공동보조를 취한다는 점에서 전국시대 외교술인 합종연횡(合從連衡)과 맥이 통하는 방식이다. 반동 체제라는 비판이 많았지만, 약소국 오스트리아가 유럽 외교의 주도권을 장악한 점만 보면 외교의 전설로 불리기에 충분했다. 이 때문에 역사 교과서에는 19세기 전반 유럽을 '메테르니히 체제', 19세기 후반 유럽을 '비스마르크 체제'라고 부른다.
합종연횡은 전국시대에 소진(蘇秦)과 장의(張儀)가 제안한 탁월한 외교술이다. 소진과 장의가 합종설과 연횡설을 앞세워 부귀공명을 이루자, 이를 부러워해 본받는 자가 많았다. 입으로만 먹고사는 종횡가(縱橫家)의 황금기였다. 종횡가의 시조는 귀곡선생(鬼谷子)이었다. 소진과 장의도 그의 제자였다. 귀곡선생의 전공은 천하의 제후들을 만나 책략을 구사하는 것인 만큼 좋게 말하면 국제외교이고, 나쁘게 말하면 권모술수(權謀術數)였다. 외교가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굴복시키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권모술수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지 모른다.
우리나라는 외교력으로 위기를 극복하기는커녕 도리어 주변 강대국의 권모술수에 농락당하며 참담한 지경에 빠졌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그렇게 정성을 쏟은 중국이 등을 돌렸고, 일본은 위안부 협상 이후에도 여전히 태도 변화가 없다. 박근혜정부가 유일하게 치적으로 내세울 만한 외교 문제가 파탄 상태에 놓인 것이다. 냉엄한 국제 현실에서 우리의 존립을 지켜내려면 외교력이 가장 절실한데도, 어디에도 귀곡선생 같은 분이 보이지 않는 것은 큰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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