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메고 세계 속으로] '중동의 파리' 레바논 베이루트

입력 2016-02-05 17:01:00

비블로스 유적 금발 미녀 안내원, 베이루트 해변 '황홀한 비키니'

비둘기 바위 해안 도로의 노점상 모습. 레바논을 지금도 전쟁이 벌어지는 곳으로 알기 쉽지만 거리는 매우 평화롭다.
비둘기 바위 해안 도로의 노점상 모습. 레바논을 지금도 전쟁이 벌어지는 곳으로 알기 쉽지만 거리는 매우 평화롭다.
레바논 고대 도시 비블로스의 십자군 성터.
레바논 고대 도시 비블로스의 십자군 성터.
레바논 고대 도시 비블로스의 반원형 극장.
레바논 고대 도시 비블로스의 반원형 극장.

레바논은 이슬람 국가로 생각하기 쉬운데 인종은 대부분 아랍인이지만, 이슬람인들이 약 65%, 기독교인들이 약 35%로 구성되어 있는 공화국이다. 외교부의 여행 제한 지정 나라로 한때 메르스가 유행했던 지역이라 지인들의 만류가 있었지만, 나의 중동 여행 계획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이스라엘과의 전쟁, 내전의 흔적으로 도심 곳곳에 총탄 자국이 선명한 건물들이 남아 있다. 시내 중심가에 흉측하게 남아 있는 몇몇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데 당시 상황들이 얼마나 처절했는지 아픈 기억들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아직도 간간이 도심에 폭탄이 떨어지는 중동의 화약고로 생각하기 쉽지만, 전쟁이 끝난 지 10년이 지난 평화로운 곳으로, '중동의 파리'라 불릴 만큼 아름답고 활기찬 나라이다.

아랍 여느 나라처럼 여성들에게 히잡을 강요하지도 않고, 오히려 유럽처럼 속살을 훤히 드러내 보이며 터질 듯한 몸매를 자랑하는 여성들로 넘쳐난다. 레바논은 세계서 백인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이며, 미인이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주변 많은 아랍국가 사람들이 주말만 되면 베이루트로 넘어와서 환락의 밤을 보내고 돌아간다고 한다.

레바논 사람들이 과장스럽다 할 정도로 큰 동작과 높은 톤으로 대화를 하는 것을 종종 볼 수가 있다. 다른 아랍인들은 대체로 체면과 겉치레를 중시하며, 아집과 자존심이 강하다고 한다. 아랍 속담에 '수치보다는 죽음' '허기보다는 자존심이 먼저'라는 말이 있다.

여행 중 결혼식 장면을 몇 번 목격했었는데, 성대하고 화려하게 식을 치르며 아마 동네 고급 차는 다 모아 놓은 듯 유명한 외제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빚을 내서 성대한 결혼식을 치른다고 한다. 하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과 애착은 매우 강하며, 외부인에 대한 친절과 호의도 대단하다고 한다. 필자도 미리 예약한 호텔을 찾지 못해 헤맨 적이 있었다. 날씨가 너무 더운 데다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이 거의 없기에 아무 호텔 로비에 들어가서 도움을 요청했다. 손님인 듯한 남성이 지도를 자세히 보더니 싱긋 미소를 지으면서 앞장서더니 따라오라고 한다. 꽤 먼 거리의 호텔까지 데려다주고는, "즐거운 여행 돼라"고 하면서 돌아간다.

이번 여행은 중동지역의 더 많은 나라를 둘러보기 위해 주로 현지 항공편을 이용했었는데, 가족여행을 하는 아랍인들 중 아기가 있는 경우 보모를 데리고 여행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는 승객이 보모를 데리고 함께하는 모습이 왠지 특이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모는 대부분 스리랑카인이라고 한다. 스리랑카가 영국 식민지로 있었기에 사람들이 대부분 영어를 구사할 줄 알며 임금도 싸기 때문이라고 한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제일 먼저 베이루트 랜드마크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비둘기 바위로 갔다.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와 시민들의 휴식처로 많이 이용되는 곳이다. 길옆 깎아지른 듯한 U자형 절벽을 한 오목한 해안에, 개선문처럼 중간에 사각형 구멍이 뚫린 바위가 서 있다. 그 바로 옆에도 바위 하나가 형제처럼 우뚝 서 있다. 비둘기가 많아서 '비둘기 바위'라고 이름 붙여졌는데, 오랜 내전으로 비둘기는 떠나고 지금은 볼 수가 없었다.

그 해안을 따라 바로 옆으로 길게 이어진 해수욕장은 베이루트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해변이다. 가슴에는 털이 수북하게 나 있고 배만 불룩 나온 남성들과 콜라병 같은 몸매에 비키니를 걸친 아가씨들로 넘쳐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고대 도시 중 하나인 비블로스로 향했다. 베이루트에서 북쪽으로 약 40㎞ 거리에 있는 비블로스는 페니키아시대와 로마시대 유적이 공존해 있는 곳이다. 십자군시대에 지은 성과, 청동기시대의 오벨리스크 신전, 로마시대의 반원형 극장 등 많은 유적이 산재해 있으며, 세계서 가장 오래된 항구 도시이기도 하다.

십자군 성 위에 올라가니 비블로스 유적들이 한눈에 펼쳐지며, 탁 트인 바다 풍경과 시원한 바람이 나그네의 발길을 잠시 붙잡는다. 건물 옥상에서 보는 석양은 바다를 온통 주홍빛으로 물들인다. 그 풍경을 잡으려는 카메라의 찰칵이는 소리가 연신 바쁘다. 카메라 방향을 약간 돌리는 순간, 몸에 착 달라붙는 파스텔풍의 반소매 하늘색 티셔츠를 입은 늘씬한 금발의 미녀가 렌즈 속에 들어온다.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다가온 그녀가 상큼한 미소를 지으면서 하는 말, "곧 문 닫을 시간이니 서두르세요." 그 금발의 미녀는 이곳의 안내와 관리를 맡은 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연재를 시작하며…

평소 배낭 하나 둘러메고 여기저기 여러 나라를 기웃거려왔다. 여행하는 곳에서는 그 나라의 풍광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많이 보려고 한다. 여행지에서 문화재나 유적지를 구경하는 것도 물론 즐거운 일이지만, 사람 냄새 나는 곳을 찾아가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또한 그에 못지않은 기쁨이라 생각한다. 지난해 중동의 레바논, 요르단, 러시아, 미얀마, 라오스 등을 다녀왔다. 올해는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중국, 러시아(캄차카반도) 등을 계획하고 있다. 매일신문 독자들과 그 경험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부족하더라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황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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